어룩, 중요 연설문/교부및 성인들의 강론 263

성녀 제르트루다의 ‘신적 사랑에 대한 권고 말씀’에서- 나에 대해 당신이 지니신 생각은 평화의 생각입니다

+성녀 제르트루다의 ‘신적 사랑에 대한 권고 말씀’에서 - 나에 대해 당신이 지니신 생각은 평화의 생각입니다 주 하느님이시여, 나의 창조주시여, 내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내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고, 나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어도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나를 감싸 준 당신의 그 자비가 나의 내심으로부터 당신을 찬양하게 해주소서. 주여, 나는 이제 내 능력 미치는 데까지 주님이 나에 대해 지녀 오신 무한한 자비에 감사 드리고 주님의 관대하심과 주님의 인내심을 찬미합니다. 나는 유년 시절, 소녀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인 스물다섯 살까지는 앞뒤를 못 가리는 철없는 사람으로 지내 왔습니다. 그때 나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말하고 행동하고 또 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성 대 알베르토 주교의 ‘루카 복음 주해’에서-그리스도의 몸의 진실을 위한 목자와교사

+성 대 알베르토 주교의 ‘루카 복음 주해’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진실을 위한 목자와교사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이 성사를 집행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를 행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둘째로 이것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에 대한 기념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보다 더 유익하고 즐거우며 더 은혜롭고 사랑스러우며 영원한 생명과 더욱더 흡사한 것을 명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 몇 가지 특질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기로 합시다. 성체는 현세에서 죄 사함을 얻고 은총의 충만에 이르는데 비할 바 없이 유익한 것입니다. “영혼들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성화를 얻는 데 있어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에서- 마지막 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정의를 실천합시다

+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에서 - 마지막 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정의를 실천합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악인의 부류에 들기보다 하느님을 섬겼음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리는 사람들의 부류에 들어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도 무수한 죄를 범한 인간이고 아직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며 마귀의 올가미에 포위당하여 있는 몸이지만,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의인의 길을 따르고 그 정의에 더욱 가까이 이르고자 힘써 노력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진리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내가 주는 이 권고의 말도 들으십시오. 내가 써 보내는 것에다 주의를 환기시켜 여러분과 여러분을 통하여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끔 하십시오. 한 가지만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구원과 생명을 ..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의 시작-우리를 불러 주신 하느님께로되돌아갑시다

+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의 시작 -우리를 불러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갑시다 절제의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나의 권고는 쓸모 없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 권고를 따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권고해 주는 나에게도 구원을 얻어 줄 것입니다. 길 잃고 헤매는 한 영혼을 다시 구원의 길로 발을 내딛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신앙과 사랑 안에서 말하고 듣는다면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께 이런 일일 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정의와 거룩함 안에서 꾸준히 간직하며 신뢰하는 마음으로 “네가 아직 부르짖고 있을 때 나 주님은 ‘보라, 나는 너와 함께 있노라.’고 대답해 주리라.” 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이..

비오 11세 교황의 회칙 ‘하느님의 교회’에서-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렸다

+비오 11세 교황의 회칙 ‘하느님의 교회’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렸다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에 따라 교회는 때가 차자 온 인류의 보편성을 포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 되기로 예정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설계에 따라, 교회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지니지만 그중에 범세계적 일치는 뛰어난 점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홀로 제자들에게만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사명을 맡기셨을 뿐 아니라, 사도들이 이중적인 유대로써 긴밀히 묶여진 하나의 단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 첫 유대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부어 넣은” 공통의 사랑과 신앙의 내적인 유대이고, 둘째 유대는 베..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가난하고 겸손한 마르띠노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마르띠노 마르띠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 전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을 보고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칸데스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띠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의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성직자들간의 화목을 이룬 후 자기 수도원에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전해 주었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 못하..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우리 직분의 특수한 봉사

+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 우리 직분의 특수한 봉사 하느님의 보편적 교회가 여러 계급으로 되어 있어 교회의 거룩한 몸이 여러 지체들로 되어 있지만, 사도가 말하듯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직분들이 서로 다르다 해도 그 다양성은 그들 중 가장 미소한 직분이라도 머리와 연결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가 지닌 신앙과 받은 세례는 하나이므로 우리는 갈림 없는 친교와 공통의 품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된 베드로 사도는 거룩한 말씀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은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를르의 성 체사리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세례로써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아를르의 성 체사리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 세례로써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즐거움과 기쁨 가운데 이 대성당의 축성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참되고 살아 있는 성전은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거기에서 영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로 여겨지는 성전의 축일을 지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분노의 그릇이었지만 다시 태어날 때에 자비의 그릇이 될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 출생은 우리를 죽음에로 이끌고 두 번째 출생은 생명에로 되불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세례받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마귀의 신전이었지만 세례를 받은 후 그리스도의 성전이 되는 영광..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의 시작-그리스도께서는 멸망에 떨어지려 하는 이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2세기 어느 저술가의 강론의 시작 -그리스도께서는 멸망에 떨어지려 하는 이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고 산 이와 죽은 이의 심판관이심을 언제나 알아야 하며 또 우리 구원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구원을 과소 평가하면 기대하고 있는 바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을 시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죄악이며, 우리가 어디로부터 부름 받았고 누가 우리를 불러 주었으며 불리움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큰 고난을 받으셨는지 모른다면 이 역시 죄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무엇으로 되갚아 드릴 수 있고 또 무슨 합당한 보답을 해드릴 수..

암브로시오 주교의 죽음의 복됨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니고 다닙시다.

+ 암브로시오 주교의 죽음의 복됨에서 -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니고 다닙시다. 사도는 말합니다.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 그런데 현세의 삶에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또 그것은 복된 죽음임을 보여 주기 위해 사도는 우리의 육신 안에 예수의 죽음을 지니고 다니라고 권고합니다. 이는 "자기 몸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결국 그 몸 안에서 예수의 생명도 가지게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도 우리 안에서 작용하려 한다면 그 안에서 죽음이 이미 작용해야 합니다. 죽음후의 복된 생명이란 승리 후의 복된 생명,, 곧 온갖 투쟁을 종식시키는 복된 생명,그리고 육의 법이 영의 법을 대항하는그 힘이 사라지게 하고 죽어야 할 육신 안에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