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교황 요한 23세는 당면 문제가 없었음에도 공의회 소집을 발표하였다. 이는 소극적 대응 보다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추고 보다 넓은 사목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내적으로는 반성, 외적으로는 현대사회에 적응(Aggiornamento:외적인 생활의 적응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의 식의 변화 전제)에 목적을 둔 의도였다. 상술하였듯, 직접적인 동기, 즉 당면문제는 없었으나 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산업혁명, 민족주의 등의 발달에 따른 사회의 급변에 발을 맞추고, 나아가 교회가 사회 내 예언자적 소명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교회의 현대 사회에 대한 적응 문제와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과정
요한 23세 교황이 소집 요청으로 공의회는 시작된다. 이 공의회에서는 특별히 전례 부분에 있어서 개혁파(성서, 초대교회 중심)와 보수파(교황청 중심의 전통고수)의 의견 대립이 심했다. 63년「Pacem in Terra」가 발표되었다. 이후 요한 23세의 서거로 자동 휴회되었으며, 65년 바오로 6세의 선임으로 공의회가 계속 진행되었다. 4개의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으로 65년 12월 8일 폐막하였으며, 총 4회기로 이루어졌다.
결과 및 의의
1963년「Pacem in Terra」에서 그리스도인 만이 아니라 비 그리스도인에게도 인류 평화를 위해 협력하자고 호소하였다. 1965년에는 마지막 획 열리면서 전례, 사목, 교회, 계시 헌장을 발표하였다.
이후 매스미디어, 일치운동, 동방교회, 주교의 교회 사목지, 사제양성, 수도생활, 평시도, 사도직, 교회 선교활동, 사제 직무와 생활에 관한 9개의 교령과 그리스도교적 교육, 비 그리스도교, 종교 자유에 관한 3개 선언이 발표된다.
교회헌장이 주요 골격이었는데 나머지 세 개 헌장은 교회론의 원칙과 실천적 적용에 관한 보충의 의미를 지녔다. 교령은 개혁과 대화에 관한 문헌으로 구별할 수 있고, 선언은 비신자 막론하고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전 세계의 주교가 참석함으로 세계 교회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첫걸음이 되었다. 쇄신을 지향했던 사목적, 개혁적 공의회였으며, 16개의 문헌이 발표가 되었으나 새로운 교리 내용은 없었다.
이후
바오로 6세 교황은 교회일치를 위해 구체적 노력을 했는데, 이는 내적으로 쇄신을 밖으로는 적응을 위한 취지였으며, 특히 교회법, 전례, 매스미디어 위원회의 설립과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 비 그리스도인과 무종교자를 위한 사무국에서 구체화 된다. 또 주교회의를 만들어 교황 수위권에 효율적인 뒷받침을 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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