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페라라에서 피렌체로 옮겨간 공의회가 1439년 2월 첫 회기를 시작한 장소다. 시기 : 교황 마르티노 5세(1417∼1431)에 의해 소집되어 다음 에우제니오 4세(1431∼1447) 때인 1431년 7월 23일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고, 니콜라우스 5세때인 1449년 4월 해산됨. 배경 콘스탄스를 떠나 로마로 돌아온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주의에 반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대분열 이후 황폐해진 로마시와 교황령국의 부흥에 노력해야 했기에, 이탈리아의 파비아, 시에나, 스위스 바젤로 이어지는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세속 군주들은 오히려 공의회주의를 이용해 교황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목적으로 바젤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즉 콘스탄스공의회의 이래 한층 강화되어 온 공의회 수위설(首位設)의 영향하에서 교황과 날카로운 대립이 계속되던 시기에 개최되었던 것이다. 과정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은 당해 12월에 저조한 참석률과 전쟁, 이탈리아 그리스인들과의 관련 및 공의회 수위설등을 고려해서 공의회의 휴회를 선언한다. 그러나 바젤 공의회는 이를 거부하고 콘스탄츠 공의회의‘Sacrosancta’교령(공의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권세 위임을 받았고, 교황도 공의회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는 내용)을 재확인하고, 후스파의 다수를 로마 가톨릭에 받아들인다. 이후 교황과 공의회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계속적인 대립 상태를 유지하다가, 1437년 에우제니우스 교황은 그리스인들과 재연합을 위해 공의회 장소를 이탈리아의 페라라로 옮긴다. 그러나 바젤공의회의 몇몇 주교는 잔류공의회로서 계속 진행하다가 드디어는 에우제니우스의 폐위를 공표하고, 1439년 평신도 사보이 공작 아마데우스 8세를 교황 펠릭스 5세로 선출한다. 그 뒤 1447년 에우제니우스 교황의 서거 후 그를 계승한 니콜라오 5세 교황은 대립교황인 펠릭스 5세를 폐위하고, 1449년 4월 잔류공의회를 해산시킨다. 바젤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의 제17회 공의회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1378∼1417)로 교황청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을 때 개최된 공의회였다. 여기에서는 주로 교황 지상권 문제와 공의회 수위설, 후스파 이단문제(보헤미아의 종교 개혁자 후스의 추종자들)가 다루어졌는데, 교황의 권한(영적, 세속적)에 제한을 가하면서 공의회 수위설을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젤 공의회는 공의회의 유일한 합법성과 교황의 행정권 및 경제력의 삭감을 꾀하였다. 즉 공의회의 최고 지도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바젤 공의회와 교황의 대립은 동방 교회와의 합동공의회 개최지를 둘러싸고 더욱더 격화되었다. 그러나 바젤 잔류 공의회는 사실 자신이 통치하는 영역에서 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군주들에게 이용당했을 뿐이었다. 이후 1437년 에우제니우스 교황에 의해 바젤 공의회는 페라라로 옮겨졌고, 2년 뒤인 1439년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이전해서 그리스정교회와의 합동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
|
'가톨릭 교회 교리 > 공의회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차 라떼란 공의회 (0) | 2016.03.05 |
---|---|
페라라·피렌체 공의회(17차 바젤 세계 공의회 연속) (0) | 2016.03.05 |
콘스탄츠 공의회 (0) | 2016.03.05 |
비엔느 공의회 (0) | 2016.03.05 |
제2차 리용 공의회 (0) | 201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