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회 개혁 특히 가톨릭 개혁시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오로 3세 교황(1534-1549)은 교황이 되기 전에 사생활이 아주 문란했으나,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회의 쇄신을 위해 개혁을 중시했다. 그래서 바오로 3세는 당시 부패와 악습으로 교회가 본 모습을 잃어가고,또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으로 교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교회 전통신앙 수호, 교회쇄신, 유럽의 갈라진 제후들의 일치(이슬람을 믿는 터키인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대내외적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공의회를 개최했다. 특히 교회의 개혁을 위해‘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해서 영성과 박식한 추기경들을 선출하여 개혁하였고, 그들은 성직매매에 단호하게 대처하여 모든 악폐들을 열거하고 그 원인을 밝혔다.
과정
바오로 3세는 1536년 6월 2일 공의회 개최 교서를 반포하고 이듬해인 1537년 이탈리아 만또바에서 공의회를 소집했으나, 교권과 속권의 이해관계, 프랑소와 1세 프랑스 왕과 칼 5세 황제와의 주도권 다툼, 의회 수위설, 교회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자주 연기되어 실제 공의회를 개최하는 데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래서 1544년 칼 5세가 프랑소와 1세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9월 19일 크레티 강화조약을 맺고서야 드디어 공의회가 열릴 수 있게 되었고, 1545년 3월 15일 트리엔트에서 공의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참석자 상황이 여의치 않아 1545년 12월 13일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공의회를 진행하는 동안 공의회의 수위설 등에 대한 염려로 인해
첫째. 공의회 의장직을 주로 교황 사절들과 교황에게 충성스런 사람에 의해 취해지도록 조처하고,
둘째. 투표제도는 나라 단위가 아닌 인원수대로(교황에게 충실한 이탈리아 주교가 많았기 때문)
셋째. 참석 위임권을 행사할 수 없게 했으며,
넷째. 토의 주제에 있어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하는 자들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공의회와 교황과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피하도록 했는데 황제는 개혁문제를 최우선으로, 교황은 신앙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개최된 공의회의 1회기(1545-1548)에서는 계시의 원칙과 의화론, 성사론 문제가 논의(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의 근본적 문제를 전통신앙과 교의의 확실한 균형으로부터 풀어나가려 했던 것)되었고, 2회기(1551-1552)는 1552년 봄에 독일 프로테스탄트 제후들이 동맹을 맺어 독일 남부를 침입하자 공의회를 연기하여 1552년 4월 28일에 중단되었다. 그 후 3회기(1562-1563)는 공의회가 중단된 지 10년만에 열렸으나 지난 회기보다 더 많은 것을 다루어 큰 성과를 보였다.
결과 및 의의
1회기에서는 계시의 원치과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에 대해 신앙에 대한 2가지 원칙(성서와 성전), 의화론, 성사론, 교회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2·3회기에서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표명하기 위한 논의가 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외적으로 외소하고 프로와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의 전통 신앙을 확인하고 교회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한 복음정신으로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 15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본질적인 신앙의 요소를 확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대의 징표로서 새로운 수도회가 창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의 기본원칙은“salus animarum suprema lexest(영혼들의 구원이 최상의 법이다)”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 쇄신의 역점은 성직자 양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가톨릭 교회에 획기적 변모를 가져왔는데, 이미 1400년대부터 미리 준비되었던 성인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성인들이 존재했다. 또한 이후 교회쇄신의 원동력이자 교회의 본질적 신앙의 요소를 지닌 공의회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 > 공의회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0) | 2016.03.05 |
---|---|
제1차 바티칸 공의회 (0) | 2016.03.05 |
제5차 라떼란 공의회 (0) | 2016.03.05 |
페라라·피렌체 공의회(17차 바젤 세계 공의회 연속) (0) | 2016.03.05 |
바젤 공의회 (0) | 201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