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화, 인용

갈매기의 꿈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5. 13:01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

동화로 표현한 신비스런 교훈

<갈매기의 꿈>은 가장 간명하고 직선적인 방법으로 가장 상징적이고 깊은 이념을 축략하고 있는 점에선 한 편의 산문시에 접근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갈매기의 꿈>은 동화도 아니요, 산문시도 아닌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작자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습을 통해서 동화보다는 훨씬 신비스럽고 예지에 찬 복합적인 고투(苦鬪)와 거기서 얻어진 승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며, 시적이라기엔 너무나 구체적인 삶의 한 양식을 차원높은 상징적 수법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의 꿈>은 갈매기를 소재로 하여, 그들의 일상적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추구를 극명하게 나타난 소설이다. 이런 유의 동물 우화소설은 이솝 우화 이전부터 지금까지 많이 있어 왔다. 그것들의 대개가 동물들의 욕망·이기 ·질투 등 제행위를 의인화해서 인간들을 풍자·경고함에 주된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서 인간을 교도(敎導)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오늘도 또 이리하여 살기 위한 부산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란을 외면하고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혼자 배에서도 기슭에서도 멀리 떨어져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라고 작품의 첫부분에 조나단을 소개하고 있다. 갈매기는 천성적으로 타고날 때부터 날 수 있게 되어 있다. 인간이 걸어다닐수 있듯이 갈매기는 단순히 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다만 먹이를 충족하는 방편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조나단은 그렇지 않다. '조나단 리빙스턴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먹는 일보다 나는 일 그 자체였다.'

이렇게 조나단이 저공비행. 또는 멋있는 착수(着水)의 방법 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외로운 연습에 골몰해 있을 때, 외부의 방해와 스스로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먼저 그의 부모들이 만류하고 나섰던 것이다.

"넌 뼈와 깃털뿐이잖아." 하면서 어머니는 갈매기의 한계를 상기시키고, 아버지는, "머지않아 겨울이 닥쳐온다. 그렇게 되면 어선도 적어질 것이고, 얕은 데 있는 고기도 점점 깊이 헤엄쳐 들어갈 것이다. 만약 네가 연구해야 한다면 먹이를 연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얻는지를 연구해라." 하고 현실적인 충고를 일러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도 고속비행에 실

패하고서는 깊은 좌절감을 맛본다. 그러나 조나단은 주위의 만류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초인(超人)이 숙명을 허용하지 않듯이.

갈매기 조나단이 비행 연습에 골몰하고 있는 장면은 경쾌하고 신선한 문체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자 리처드 바크가 직업적인 작가가 아니라 비행기 조종사 출신이었다는 점을 유의해 보면 더욱 납득이 가는 일이다. 조종사 생활을 통한 경험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상상만 가지고는 획들할 수 없는 어떤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또 실제 비행에의 익숙한 체험이 없다면 이런 신선한 감동을 일으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조나단의 미지에의 위대한 도전과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이 모든 노력들이 기성(旣成)의 룰과 하찮은 권위 의식에 의해 배척을 받는다. 그가 시속 140킬로로 날면서 '바로 그 순간, 조나단 리빙스턴은 갈매기의 세계 스피드 기록을 세우고는' 나아가서, '극한속도! 한 마리의 갈매기가 시속 342킬로로 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한계돌파이며, 갈매기떼

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을 이룩하였음에도 조그만 실수로 버림을 받는다.

고속으로 날다가 갈매기 떼를 급작스레 만났다. 급회전이 불가능하여 그는 그 무리 중앙을 뚫고 나갔던 것이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는 않았고, 또 그들에게 자기의 무서운 스피드를 확인시켜 준 셈이 되기도 해서 그는 자기를 심판하려는 무리 앞에 나섰을 때 오히려 자랑까지 느꼈었다. 그러나 그는 갈매기의 무리로부터 먼 벼랑에 유배되는 극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은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추방이었으며, 새로운 진실과 창조에 대한 갈릴레이적 배척이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진실을 외면한다. 그것은 기존(旣存)한 것의 안일이며, 전통적인 것에의 맹목적 추종이며, 또 권위ㅢ 죄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모든 창조자들은 숙명적으로 고독과 핍박을 받게 마련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이 심판대에선 결코 항변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뿌리치고 이 작품에서 가장 주제(主題)에 밑착된 발언을 한다.

그리하여 조나단은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날아간다. 이때의 소외감은 가장 조나단다운 것이었다. 즉, '그의 유일한 슬픔은 고독이 아니라, 빛나는 비행에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동료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륙 깊숙히 들어가 맛있는 곤충을 잡아 먹으면서도 전에는 동료 전부를 위해 찾던 것을 지금은 자기 혼자를 위해

손에 넣는다는 슬픔을 느낀다.

작자는 이 책에서 흥미있는 대비를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재삼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만 먹이를 얻기 위한 것과 날아 다니는 그 자체를 위한 비상, 또 미지에의 부단한 도전과 그것을 외면하는 습속이 그러한 예이다. 여기에 또 덧붙여 보다 거시적인 대비를 보임으로써 그의 '교훈적(敎訓的)'인 의도가 한층 분명해진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려 온 것이다. 자기보다 더 유연히 날 수 있는 순백(純白)으로 빛나는 두 갈매기의 인도를 받아서, 그는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살고 있는 갈매기들은 조나단이 살아왔던 세계완는 전혀 다른 의식 속에 살고 있는 선민(選民)들이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탁월한 갈매기, 즉 선택받은 갈매기들만이 모여 사는 낙원이었다. 적어도 먹기 위해선 다투는 일이 없고, 권력 다툼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깨달은 자들이 모여 무한한 비행의 신비와 그 비행의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깊은 의미를 터득하고 있는 수련장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조나단은 동료인 설리번에게 새로운 비행술을 습득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노선배 치앙으로부터는 불가해한 사념속도(思念速度)까지 체득하기에 이른다.

이 비행법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조나단이 추구한 것은 스피드였다. 누구보다도 빨리 나는 일, 더 새로운 급회전과 착륙, 이런 정도에 집착해 왔던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동하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은 순식간에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는' 그러한, 생각하는 순간에 다른 위치로 옮겨 갈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은 조나단이 갈망해 온 완전함에 이른 비행법이었다.

높이 그리고 빠르게 잘 날 수 있는 것으로는 완전함에 이른 것이 아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에 이 작품의 포인트가 있다.

갈매기 조나단에게 지식을 전수(傳授)한 치앙이 다른 곳으로 사라져 가듯이, 또한 조나단은 자기가 얻은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깊이 음미해 볼 만하다. 그것은

'더욱 타인을 사랑하도록 힘쓰라'는 교훈의 실천이며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모랄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의문을 일으키듯, 즉 기존 질서와 다수의 견해가 정당성을 띤다는 보편적 진리를 뒤엎고 한 마리의 파행적 갈매기에 찬사를 보내는 스토리가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도 역시 그 근저에 이러한 윤리의식이 밑받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나단이 '먼 벼랑'으로 돌아와 플래처라는 새 생도들 얻고 또 그같이 추방당한 자가 여덞 마리로 불어나자 이들은 '갈매기 떼'의 세계로 돌아간다. 물론 이들은 조나단의 지도로 훌륭한 갈매기로 단련이 되었다. 이들이 돌아온 걸 보자 처음에는 갈매기의 무리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비상하고 싶지만 계율이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호기심과 욕망으로 서서히 기울어지자 조나단은 ---갈매기에게 있어 나는 것은 정당한 것이고, 자유는 갈매기의 본성 그 자체이며, 그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의식(儀式)이든 미신이든, 또 어떤 형태의 제약이든 파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렇게 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고, 또 수제자(首弟子)플래처가 탁월한 교사로 탁월한 교사로 발전된 걸 안 조나단은, 마치 스승 차앙이 그러했듯이 그도 다른 세계를 향해 사라져 간다. 그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무리를 찾아서……

이 작품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환영을 받게 된 힘은 과연 무엇일까? 작품 전체에 넘치는 신선한 감각 때문일까? 조나단의 용기와 도전에 공감된 것일까? 이런 점들은 모두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덧붙여 스피드에의 정열과 상공을 비상하는 감각이 미국적 생리에 어필하여 높은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오르는 과정이 인간 본연의 잠재성에 호소 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작품의 주제가 교훈적이며, 더구나 지식이 치아에게서 조나단에게, 또 플래처에게 전수된다는 논리적 결구(結構)가 설교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같이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간명하게 저술된 소품을 에워싸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스러움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이런 신비스런 힘에 의하지 않고는 인간 본연의 희구를 이처럼 교도(敎導)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바크(Bach, Richard;1936∼ )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바크 출생. 롱비치 스테이트 대학을 중퇴하고 미공군 조종자 자격 획득.

프리라이터로서 비행기 잡지 편집에 종사하기도 했음. 처녀작 를 발표하여 문명을 얻고, 이어 <갈매기의 꿈>으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모았다. 그의 소설은 가장 간명하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상징성을 획득하는 데 있다.

'책, 예화,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풍의 언덕  (0) 2014.07.05
어린왕자  (0) 2014.07.05
암병동  (0) 2014.07.05
레 미제라블  (0) 2014.07.04
이방인  (0)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