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
대혁명과 낭만주의 문학의 꽃핌
문학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도 인간성을 옹호하고, 사회적 제도나 권력의 횡포, 운명의 비리에 희생되는 개인에 대한 동정을 표해 왔다. 따라서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게서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을 통하여 인간의 불멸의 혼, 인간이 신으로부터 사랑받는 피조물임을 추출해 낸다.
아울러 이 세계와 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것이 정치제도나 권력계층의 파워 또는 재물이나 환경적 자산에 있는게 아니라 사람에게 내재해 있는 자유와 평등, 사랑의 정신에 말미암는다고 천명한다. 그것이 인간답게 하는 보루이고 인간의 아름다움의 근원이며, 사회가 파괴되지 않고 발전되어 가는 원동력임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런 사상을 구현한 최고의 명작으로 서슴없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톨스토이의 <부활>을 손꼽는다. 이 두작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사람에게서 '인간다움'을 지키고 그런 노력에 의해서 참다운 평화를 누리며 영혼이 구제된다는 인도주의에 다다른다.
인도주의의 개념은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에서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박애적인 사상'을 뜻한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 직전 라 브리 마을의 날품팔이 노동자 장 발장이 누이동생과 조카 일곱을 거느리고 살면서 배고픔 끝에 빵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5년형의 선고를 받게 되는 그런 사회는 결코 사람이 동등한 자격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일 순 없다.
뿐만 아니라 장 발장은 남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여 부단히 탈옥을 시도한다. 그로 인해 형이 19년으로 늘었는데 1815년에 만기출옥하여 사회롤 복귀했을 땐 이미 말이 적은 중년의 사내, 비록 전날의 행위를 뉘우치면서도 사회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적개심을 품은 사람으로 굳어 있었다. 만일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 받는 사회라면 장발장 같은 운명은 태어나지 않을 터이다. 위고는 어느 자리에서 "사회가 나쁘면 사람은 도둑질을 한다. 형무소가 또 지독한 곳이어서 사람은 이번에는 살인을 하게 된다."라고 경고한 것도 제2, 제3의 장 발장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대에 들어와 이런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인도주의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처음엔 사회악에 의해서 초래된 근본 원인을 곤란을 박고 있는 사람을 구제함으로써 인간성을 옹호하겠다는 노력이 커다란 반항을 불러일으켜 확산된 걸로 보아진다.
위고의 대표적 장편소설인 <레 미제라블>의 번역어는 '무정'이란 말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들 무정의 횡포가 없을 순 없겠으나 특히 대혁명 전의 프랑스의 지배층과 서민,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격차가 심했고, 그로 인해 불신과 불평이 팽배하여 자비와 사랑이 잠적한 시대였다. 대립계층까지 위화감과 괴리감이 크면 클수록 박애의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
이 장편에는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항 파란만장한 한 인간의 생애가 펼쳐 진다.
작품의 첫머리에는 장 발장이 출옥하여 알프스 산록 밑의, 작은 소도시 디뉘의 거리에 나타나는 얘기로 시작된다.
그는 누더기라고 해야 할 허름한 옷차림, 피곤에 찌든 몰골로 여인숙과 음식점, 가정집 등을 전진하나 이미 그가 전과자라는 소문이 나돌았는지라 아무도 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형무소에서 푼푼이 모은 약간의 돈이 있음에도 박정하게 내쫒긴 것이다. 심지어는 개집에서도 사나운 개에게 쫒겨 나고 만다. 그는 더는 걸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나는 개보다도 못한 신세로구나!" 하고 자탄하면서 성당의 돌벤치위에 쓰러진다. 그때 지나가던 한 부인의 조언대로 성당의 사제관 문을 두드린 결과, 그곳의 노사제 밀리에르 신부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더운 음식과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사제간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가 헌병의 불심검문에 걸려 신부 앞에 이끌려 온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밀리에를 신부는 헌병앞에서 그 은접시는 자기가 선물로 준것이라고 증언하면서 헌병을 돌려 보낸 뒤 장 발장에겐 은촛대까지 내주며 "이것도 가져가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가게나. 자네 영혼은 내가 사서 하나님께 바쳤다네."하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무쇠같이 단단하고 용광로같이 끓어 오르던 한 인간의 증오심과 반항적 기질을 용해시켜 변화된 인간으로 부활케 한 묘약이 되었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원한은 더 큰 상처를 만들게 될뿐이며, 모든 악덕은 오직 사랑과 용서로써만 치유된다는 진리를 이 작품은 전신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남의 은총은 '사랑의 지혜'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당사자의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장 발장이 노신부에게서 떠나온 뒤 곧이어 어린애가 갖고 놀던 2프랑짜리 은화를 빼앗고는 곧 후회한다.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는 마음에 몸을 떨게 된 요인은 밀리에르 노신부의 사랑이 되새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변화된 전과자로서의 장 발장의 숭고한 모습이 부각된다. 그로부터 2년 후, 그가 어느 도시에 들어섰을 때 공회당에 불이 나서 그곳 경찰서장의 두아들이 화염에 휩싸여 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낸것도, 또 군함의 돛 꼭대기에 매달려 죽게된 수부의 목숨을 구하려 신출귀몰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사랑에 의해서 움튼 희생정신의 발로였던 것이다.
이 명작 속에 감도는 사랑과 용서의 압권은 후반에 이르러 더욱 이채를 띤다. 그것은 악마와도 같이 그의 뒤를 추적하며 마치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내리지 않고는 발을 뻗고 잠잘 수 없다고 맹신하는 쟈베르 형사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쟈베르 형사는 장 발장이 수감생활을 하던 형무소의 옥리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사회 지도층 인사로, 인격자로서 시민의 존경을 받게 된 장 발장을 보고는 그 신분을 의심하게 된다. 전과자는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어느 지방엘 가나 그곳 행정관서에 신고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어김은 범법이 되는 셈이다. 쟈베르 형사는 법률 조문만 금과옥조로 믿고 따를 뿐이지 신의 자비나 인정은 인정치 않는 독사와 같은 자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장 발장은 경찰서장의 아들을 구해 준 미덕으로 인해 그 도시에 정착하게 된 후 발명과 공장 경영으로 유족한 유지로 발돋음한다. 그는 노동자에게 많은 임금을 주고, 학교와 병원도 지었으므로 시민의 흠모를 한몸에 받았지만 쟈베를 형사의 끈질긴 탐문수사로 쇠고랑을 찬 뒤 탈옥에 성공한다.
파리에 은거하고 살 때도 쟈베르의 추적을 받는다. 장 발장에게 있어선 불구대천의 원수요 악 거머리같이 붙어 다니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러한 쟈베르가 1830년 7월혁명 와중에 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 장 발장이 그를 구해낸다. 이런 화해의 손길로 말미암아 독사같이 찬 쟈베르의 얼어붙은 마음도 녹아서 스스로의 비정을 뉘우치고 장 발장을 경애하기에 이른다.
<레 미제라블>의 가치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추이에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드높은 사랑의 형상화에서 찾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세계문학의 명작 가운데서 <레 미제라블>만큼 시대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여 많은 인구에 애독되고 회자된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문화 운동 초기에 <아, 무정>,<인간 무정> 또는 < 장 발장>이란 제목으로 번안이 되어 소개된 이후 갖가지 요약본과 해적판 번역서가 쏟아져 나왔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널리 읽혀지는 걸까? 그것은 이 작품이 지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성'과 독자를 끝까지 압도하는 긴박한 작중 분위기에 연유한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얽히고 설킨 사건이 중첩하여 그 대강을 이 글 속에 풀어서 전하기에는 무리이다. 그래서 중요한 인물의 하나인 코제트에 관해서 그 줄거리 만이라도 요약할 필요성을 느껴 정리해 본다.
장 발장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시장으로까지 추대되었던 그 무렵이었다.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 중에 팡틴이라는 어여쁜 어린딸아이를 파리에 의탁해 놓았었다. 그러나 코제트를 양육하는 자가 간악스럽기 짝이 없어 팡틴은 금발을 잘라 돈을 마련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앞니까지 빼어 판다(이런 헌신적인 모성애를 보이던 그녀는 건달꾼의 희롱으로 병이 나서 가엾게 숨진다). 그 후 나폴레옹의 사활이 걸린 워털루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여덟살의 코제트를 기르고 있던 토나디에 일가는 몽페르메유의 한촌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한편, 전사자의 의복과 소지품을 벗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또 그들은 코제트를 어떻게나 학대했는지, 성탄절 밤 추운 날에 물을 길러오라 내보낸다.
이때 피신중이던 장 발장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이 악덕한에게 1천5백 프랑의 거금을 몸값으로 내놓고 코제트를 데려간다. 이로부터 장 발장은 자베르 형사와, 더 많은 돈을 갈취코자 음심을 품은 토나디에에게 양쪽으로 쫒김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장 발장에게 있어서 코제트는 '생명의 꽃'이요, 애정을 다함 없이 쏟는 대상이 된다. 수양딸로서, 귀여운 손녀뻘로서, 그가 사랑한 단 하나의 여성으로서 성스러운 보물과 같은 존재로 들어앉는다. 장 발장이 좇겨다니다가 수도원의 정원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코제트는 봄꽃처럼 아름다운 처녀로 자라나고, 장 발장도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코제트가 귀족청년 마리우스 남작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으므로 깊은 슬픔을 맛본다. 슬픔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장 발장은 파리를 휩쓴 폭동의 와중에 부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구출해 내어 그의 조부 앞에서 둘의 결혼을 승낙을 받기까지 한다. 그후 6만 프랑의 지참금까지 내놓고는 자기의 과거를 고백했는데, 마리우스는 이해해 주지 않아 그를 절망케 한다. 하지만 말미에 이르러 토나디에와의 접촉을 통해 마리우스는 노신사의 고매한 인품을 깨닫고 용서를 청한다. 기구한 인생을 걸어온 장 발장은 두 청춘남녀의 팔에 안기어 평안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이 대작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전쟁과 혁명, 폭동이 소용돌이치는 격변기를 배경으로 쫒는 자와 쫒기는 자, 사랑과 증오, 가해와 용서 등의 반발한 화제가 여울진다. 그러나 이 작품을 손에서 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이런 극적인 사건 구성에 있지 않고 보다 더 내면적인 작중 분위기의 밀도가 독자를 숨막히는 흥분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작자 위고의 스토릐 텔러로서의 필력에 연유된 게 아니라 화려한 낭만주의 문체와, 자유·평등·박애를 줄기차게 추구한 고매한 인도주의적 정신의 소산으로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이 장편에는 곳곳에 독자를 감동시키는 휴머나이즈한 대목이 많이 깔려 있다. 밀리에르 신부의 사랑, 잘 발장의 쟈베르 형사에 대한 화해도 숭고하지만, 그 가 마들렌이란 가명으로 시장이 되어 있을 때 무고한 한 사나이 가 장 발장이란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고 궁지에 몰리자 그가 나서서 자기가 바로 본임임을 고백하는 국면은 인간의 진정한 용기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 주목되는 부분은 주인공의 불사조 같은 초인적 모습이다. 군함의 돛 꼭대기에서 추락항 종적을 감추는 장면, 사업으로 불세출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 영화화되어 유명한 신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바 있듯, 파리의 지하에 혈관처럼 놓인 하수도 속에서의 탈주의 성공 따위는 소설적 리얼리즘의 관점에선 지나치게 흥미위주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것들이 바로 <레 미제라블>을 문학작품 이상의 종교적 차원으로 드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겠으나 더러는 평가 절하를 하는 빌미를 제공키도 한다.
빅토르 위고
프랑스 시인, 소설가, 극작가로 당시대 최대의 대표자였다. 대혁명에서부터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변혁기를 살면서 거목처럼 항상 당대를 군림 통솔했다. <느트르담 드 파리>와 <레 미제라블>은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며,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파리에서 서거하여 국장으로 치러졌다.
시인으로선 낭만주의파의 최후 거봉으로 칭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