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화, 인용

이방인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4. 22:57

이방인 (알베르 카뮈) △

부조리의 희생양, 에트랑제를

20세기에 접어든 후 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많은 사조 중에서 실존주의 문학은 그 중 매력적이었다. 대개는 전달상의 표현 기법에 관한 예술운동이거나 더러는 문학의 인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장한 것들이었는데, 실존주의 문학은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출발 했으며, 철학과 문학의 접목으로 완성 되어서 그 영향은 문학의 일반의 영역을 벗어나 문화 전반에 크게 기여했다. 독일의 프란츠 카프카와 프랑스의 카뮈, 사르트르가 이 계열의 대표작가로 손꼽힌다. 실존의 문제를 문학에서 구현하는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게 마련인바, 카뮈는 이 세계를 근원적으로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를 합리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나 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율배반으로부터 빚어지는 모순만 마주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 허망의 수렁에 빠져서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거나 '그럼에도 삶은 살 가치가 있다.'고 천명한다. 이 점이 바로 카뮈의 성실성을 설명해 주고 휴머니스트가 되게 한다. 그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알리는 첫 에세이 <표리(표리(表裏))>에서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는 구절은 그의 시각을 절약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작품세계를 예고한 명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삶의 질곡을 경험했다. 이런 암울했던 50년대를 살아온 젊은 작가들은 당연하게도 카뮈에 경도되어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황선지대(黃線地帶)>의 오상원, <이 성숙한 밤의 포옹>의 서기원 등 다수 작가에서 그런 흔적이 역연하다. 장편소설 <이방인(異邦人)>은 카뮈의 처녀작으로 27세의 나이에 탈고되어 이태 뒤인 1942년에 간행되었으니 그 조숙함과 탁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표리>에서 선보였던 실존주의 사상을 문학으로 완벽히 형상화한 셈이다. 유럽의 지성적인 독자들은 단번에 이 소설에 매혹당했다. 여느 소설과는 다른, 답답한 일상을 기록해 나가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도 정직하게 표현하는 자세, 일견 반도덕적으로 접해지는 주인공의 의식구조, 느닷없는 살인과 재판 과정-너무나 상투적인 방계 인물들 가운데서 외로운 섬같이 너무도 비상투적인 주인공-이 이야기는 충격 그것이니까.

<이방인>은 첫 문장부터 독자를 당혹케 만든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가 온 것이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그 사망일이 오늘인지 어제인지에 대해서 덤덤하게 여기는 주인공 뫼르소는, 같은 이유로 어머니의 정확한 나이조차도 쉬 기억해내지 못한다. 영안실에서 하룻밤을 지키는 동안, 그는 밀크커피를 마셨고 담배를 피웠으며 졸기도 했다(남에게 해괴하게 비칠 행동일 법하다). 게다가 매장하고 돌아설 때까지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았다. 남의 눈을 의식해 슬픈체라도 해야 하는 게 당연함에도, 그는 다만 더위와 눈부신 햇빛에 지쳐 빠졌다. 뫼르소가 동거해 왔던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냈던 건 수입이 따르지 못했던 점과, 함께 있어 보아야 어머니와 나눌 얘기가 전무한 게 그 이유였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튿날은 주말이어서 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여가선용인 바닷가 수영을 나갔다가 옛 직장동료였던 처녀 마리를 만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데려와 정사를 나누었다. 그는 이 행위가 반윤리적이라 의식하기는커녕 그냥 일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함에 틀림없다. 직장에서 그는 열심히 일한다. 사장이 파리에(작품무대는 해안도시 리옹이다) 출장소를 설립하는데 나가지 않겠느냐고 묻자 이런 말로 거절한다. "사람이란 생활을 바꿀 수는 켤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구……" 또 마리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며, 청혼을 하자 "그런 건 조금도 중요치 않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한다. 이로 보면 뫼르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인 도덕성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데다, 무기력해서 생의 의욕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자신의 삶에 책임성이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상식적인 잣대로는 그러하다. 그는 영세민이 사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은 레이몽이란 건달이 친구가 되자고 하기에 별뜻없이 어울린다. 그로부터 정부에게 보낼 편지 대필을 부탁받고는 써주고, 이 일로 구타사건이 일어나 여인의 오라비 되는 아라비아인 패거리들의 원한의 표적에 놓인다. 어느 날, 레이몽 친구의 초대로 바닷가 별장에 마리와 함께 놀러 갔다가 뒤를 밟은 아라비아인 패와 난투극을 벌인다. 이때, 레이몽이 권총을 꺼내들어 사태가 일단락지어졌는데, 그걸 뫼르소가 호주머니에 넣은 채 혼자 산책을 나섰다가 아까 레이몽을 칼로 찌른 아라비아인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아라비아인은 단도를 겨누었다. 뜨거운 햇빛이 단도에 반사되어 눈을 찔러왔으므로 '쏘아도 좋고 쏘지 않아도 좋을 심정이었지만' 쏘아버린다. (영문을 모르겠으나) 쓰러진 몸에 네발을 더 발사한다. 여기까지가 '제1부'인바, 그의 졸고 있는 의식이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 셈이다. 세상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어 뫼르소는 매사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식이었다. 그런데 강렬한 햇빛이 그를 자극했기에 순간적으로 의식이 깨어 어떤 행위를 감행한 것이다. 어쩌면, 무의미함에서 깨어나기 위해선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요구된다는 상식을 상기해 봄직한 국면이다.

'제2부'에선 예심판사의 음험한 신문, 그를 악인의 화신으로 만들어 극형으로 몰아넣으려는 양심에 찬 검사의 노력에 반비례하여 뫼르소는 여하한 변명이나 자기 변호를 꾀하려 들지 않는다. 변호사 선임에도 마다하여 관선 변호인이 배당되었으나 최소한의 상식적인 협조에도 의욕을 갖지 않는다. 검사는 살인행위 자체보다 뫼르소의 무감각한 도덕성, 반규범적 처신을 부각시켜 배심원의 마음을 흔든다. 변호사가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일로 기소된 것입니까, 살인을 한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하고 이의를 제기하지만 웃음을 자아냈을 뿐이다. 게다가 피고인 당사자는 그간 예심판사의 위장된 정의(情誼),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 유리한 증언을 해주고자 하는 마리, 레이몽 등의 소박한 태도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반영되는 따위의 매정스런 룰(제도상의)에 기가 질려, 어서 재판이 끝나 감방으로 돌아가기만을 희망한다. 판결 결과는 사형이었다.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는 신부의 면담을 완강히 거절했고, 일방적인 방문을 받았을 때는 격앙한 나머지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것은 당신보다 더 강하다. 나의 인생과 닥쳐올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나에게는 있어."라고 절규한다. 그는 처형을 기다리면서 마리와의 정사를 애타게 꿈꾸는 한편, 자유로웠던 때를 되새겨 봄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인식케 된다. 뫼르소가 죽음과 자유를 인식함으로써 다시 살고 싶은 눈뜨임을 가졌을 때에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부조리이다. 이 작품의 역자가 '졸고 있는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 그리고 깨어나는 의식이 불가피하게 허망한 모순에 부딪혀 부조리를 낳게 되는 귀결을 보여주는 것이 <이방인>이다.'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도덕군자의 눈으로 보면 이 작품은 비난받아 마땅한 형태의 묘사이고, 주인공의 구제불능의 모자란 자포자기자 일 수 있겠다. 하지만 카뮈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깨우쳐 안 젊은이의 정직한 내면과 나락하는 운명을 통해 고독자, 소외자, 즉 에트랑제(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카뮈는 이 후 에세이 <반항인(反抗人)>과 제 2의 걸작<페스트>를 발표하여 전기의 사상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다. 즉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들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을 긍정하는 태도'로 발전해 간 것이다. 때문에 그의 실존주의 사상은, 세계는 허망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성실성을 구현하며 새로운 구원관을 모색하는 데 핵심이 있다고 하겠다.

■ 카뮈(Camus, Albert ; 1913∼60)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소설가·극작가.

부조리를 추구하여 사르트르와 더불어 핸대문학에 크게 영향을 끼친 실존주의 문학의 기수이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으나 초기에 뛰어난 에세이를 간행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장편 <이방인>은 마지막까지 자기를 배반하기를 거부하고 무관심한 명시(明視)를 유지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 큰 방향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페스트>를 발표하여 프랑스 문학의 대변자가 되고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그이 사상을 천명한 평론집 <시지스프스의 신화>와 희곡이 다수 있다. 현대 프랑스의 가장 주요한 작가로 이목을 모으던 중에 자동차사고로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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