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화, 인용

암병동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5. 13:00

암병동 (솔제니친) △

암병동에서의 소비에트 인간들

19세기 중엽 이후, 세계 소설문학의 큰 산맥 하나를 형성해 온 러시아 문학이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휴면기에 들어서버린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할 때 창작의 생명력은 시들고, 겨우 돋아난 싹조차 활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를 정점으로 했던 제정시대 이후, <고요한 돈 강>의 솔로호프나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같이 소비에트 혁명을 부정적 시각으로 표현한 탁월한 작가가 있은 뒤, 미구에 전면적인 저항의 폭음이 울릴 조짐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 과연 혜성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가 20세기 저항작가, 망명작가의 대명사격인 솔제니친이었다. 그는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한 데 이어 1968년에는 본격적인 장편소설 <암병동>을 소련이 아닌 서구 여러 나라에서 러시아어와 번역판으로 동시 출간함으로써 세계문단의 이목을 모았다.

<암병동>은 다음과 같은 요인이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가 이 장편을 집필, 발표할 시기가 비록 소련에서 해빙기의 조짐이 감돌 때이긴 해도 스탈린 치하의 포악성, 비리, 비인도적 체제를 정면으로, 가차없이 비판했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적 이유로 8년간의 유형생활을 체험한 바 있는 작가로서는 굉장한 용기와 작가적 성실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솔제니친에 의해 서방의 일반대중은 소련인민의 신음과 가혹한 체제의 진실을 비로소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두번째로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 소설은 소련의 제 4대 도시이며 우즈벡공화국의 수도인 타슈켄트의 암 전문병동에서 일어나는 환자와 의사들의 세계를 그린 데서 찾아진다. 일견해서 특수 분야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겠으나 작가의 의도는 명백하게 소련사회 전체를 암병동으로 파악하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성, 상징성을 바탕에 깔면서 병리사회와 이를 초극하고자 하는, 미약하나마 힘찬 휴머니티를 발견하게 된다.

세 번째로는 작가가 고발성의 작의나, 진실규명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고도의 세련된 소설미학과 인간에의 정애를 펼쳐 보인 노력이 높이 평가된다.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는 불변하다는걸 천명한다.

타슈겐트의 종합병원 일부인 암병동은 수많은 환자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의료진의 수나 재정이 극히 빈약하고, 따라서 시설도 협착하여 죽음의 중계소 역할밖에 못해내는 곳이다. 여기에 당원이며 인사담당 관리인 루사노프가 목에 큰 혹을 단 채 우월의식을 갖고 입원한다. 곧 이어, 학창시절에 서클에서 반정부 토론을 벌였다. 해서 14년간을 사병으로 또는 강제노동 수형자로서 젊음을 보내고 죽음 직전의 몰골이 된 코스트글로토프라는 지식 계층의 노동자가 들어온다. 이 밖에 늙은이로부터 16세 소년 좀카에 이르기까지 형형색색의 암환자가 방계 인물로 등장한다.

앞의 두 인물은 소비에트 인간으로서는 대비를 이루는 인간형이자, 살아 온 내력도 정반대인 편이다. 루사노프는 당과 스탈린을 추종해서 사회신분으로서나 가정적으로 안락을 누려 온 위인이었지만 그도 한낱 암화자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당연하게도 자기의 온상을 벗어나서는 어떤 특권이나 차별대우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 스스로 “나는 결코 암이 아니란 말일세” 하고 부정하듯이 자신이 수혜를 누려 온 소련사회를 보는 눈도 이와 같은 착시현상에 빠져 있다.

코스트글로토프는 건강했던 체격에도 불구하고 오랜 추방생활에서 신체는 피폐해지고, 고약한 자의 칼부림을 당해 얼굴에 긴 흉터를 지니고 있어서 남에게 호의적인 인상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매사에 저항적이고(그것이야말로 그에게서의 생존 무기이다.), 온순한 말투도 잊어버려 혐오받기에 꼭 알맞은 인물이다. 독신으로 34세에 이르렀으나 추방지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노의사 부부와의 다감한 교유가 그를 완전히 삭막한 인간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죽음의 공포와 방사선 진료의 힘겨움에 짓눌린 환자의 반대편에는 좋지 못한 근로조건을 묵묵히 감내하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의료진이 있다. 방사선 과장 돈초바는 50대의 여의사로서 소비에트가 요구하는 의사상에 충실하지만 그녀 자신이 암에 걸린다. 30대 초반의 미혼녀(약혼자가 조국전쟁에서 전사함으로써 그 추억을 붙안고 살아가는) 간가르트 여의사는 미모에다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으나 삶의 재미를 모른다. 의학도로서 간호원으로 일하는 조야는 재기발랄한 처녀로서 현실인식이 강하다. 한때 코스트글로토프와의 대화에 매력을 느끼고 입맞춤까지 허용하나 적당한 선에서 몸을 빼버린다.

음울한 암병동에서의 나날 가운데, 간가르트가 코스트글로토프라는 외견상 조악스럽고 경계해야 마땅한 뜨내기한테 신선한 인간적 정취를 느끼는 대목은 여간 경이롭지 않다. 그녀가 이 사내와 가치있는 대화를 나누고 퇴근하는 길에 약동하는 봄을 전신으로 느끼는 장면은 솔제니친이 결코 비관론자가 아니라 조국을 포기하지 않는 양식인임을 설명해 준다.

대미에 이르러선 루사노프와 코스트글로토프가 같은 날에 퇴원하는 얘기가 교차한다. 전자는 혹이 줄어들고 퇴원을 하지만 암세포의 전이와 상관없이, 그 자신이 지난날에 고발하여 얼음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었던 죄수들이 복권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가 구려 전전긍긍한다. 비록 육체적인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족쇄를 달고 살아갈 것이다.

이에 비해 코스트글로토프는 퇴원을 앞두고 간가르트와 조야로부터 각각 자기 집에 하루 묵어가도 좋다며 주소를 받는다. 특히 혼자사는 간가르트의 초대는 의미심장하고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시내에 나와 망설인다. 좀카 소년과의 약속대로 동물원을 찾아가 구경하고(그 인상을 편지로 알려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처음엔 여의사 집엘 찾아갈 작정이었으나 생각을 바꿔 추방지로 돌아가고자 역으로 향한다. 여의사 간가르트를 그지없이 소중하게 기억하면서…… ‘정신적인 교제는 다른 어떤 교제 방법보다 존귀하다고 하는 점에서 두 사람의 고상한 의견은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팔이 얽혀서 된 그 귀한 또아리는 지금 이미 알게 된 대로 올레그(코스트글로토프의 이름)의 팔 부분에서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에,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정치체제는 붕괴를 면치 못했다. 이 시점에서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한 철권 독재체제의 오류를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존속할 수 없는 당위성을 판별하는 데도 유익할 줄로 믿어진다.

특히 스탈린 치하에서 재소 한인들이 회복할 길 없는 고통을 겪었고,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타슈켄트는 강제 이주당한 우리 동포가 밀집해 사는 지역인 것도 관심 밖일 순 없다.

솔제니친은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중 실제로 종양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형성화했다. 그의 방대한 작품들이 대개 체험의 소산이어서 다른 작가와 비할 때 생생한 현장감과 정밀한 리얼리티가 돋보인다. 이런 구체적 진실을 어떤 보고서나 사회과학서에서 만나보게 될 것인가.

그러나 <암병동>에서 받는 감동은 보다 문학적인 맛이다. 그것은 코스트글로토프라는 인간의 창조에서 비롯된다. 통제사회의 견지에서 보면 불성실한 인간의 전형으로 낙인 찍혔지만, 위선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온갖 생의 고초와 핍박을 견뎌낸 사람에게서 풍기는 강인함, 정신의 청량감이 전달됨으로써 ―― 곧 추방이 헤제 될 거라는 풍문이 들리는 가운데 추방지로 되돌아가는 한 사내의 전신에서 독자들은 색다른 평온함과 조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솔제니친(Solzhenitsyn, A. I. : 1918~ )

소련의 소설가.

반체제의 핵심 인물로 당국에 의해 추방되어 현재 미국・유럽 등지를 전전하며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날에 8년간의 교정 노동수용소형을 선고받아 모스크바 근교의 수용소에 보내졌다가(<제 1권>의 무대가 된 곳), 시베리아 탄광지대의 도형 라게리로 이송되어 복역했다. 석방 후에도 거주 제한으로 지방에 살던 중 병원에 입원(<암병동>의 무대)하기도 했다. 1962년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게재하여 문학활동을 시작한 걸 기점으로 왕성한 창작생활로 들어갔다. 1969년에 소련작가동맹으로부터 재명처분을 받았으나 이듬해엔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다. 1974소련 당국에 의해 피검되었다가 국외 추방을 당한 후 <수용소군도> 등 대하 명작을 잇달아 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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