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2682

<구원 받을 사람을 알아보는 가장 완전한 방법>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가해 연중 제15주간 화요일(7/18) 마태오 11,20-24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일으키신 표징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 고을을 심판하십니다. 유황불에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보다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이 더 악하다고 하십니다. 소돔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어째서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복음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당신을 증언하였지만,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라는 노랫말처럼 요한의 증언에 무감각하였습니다...

신부님 강론 2023.07.18

<두려운 양 떼가 되느니 외로운 늑대가 되련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가해 연중 제15주간 월요일(7/17) 마태오 10,34-11,1 강형욱 훈련사는 TV와 유튜브 방송을 하며 개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냥 행복할까요? 요즘 그의 모습은 조금은 슬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는 훈련이 안 된 강아지들을 좋은 반려견이 될 수 있도록 훈련하고 많은 조언을 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견주들에게 화를 낼 때도 있고 호통을 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낸 가족들에게는 위로도 해 줍니다. 한 번은 성탄절 선물로 반려견을 잃은 가족들에게 그 반려견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선물로 위로를 해 주는 방송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의 사연을 들으며 자신이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도 얼마 전..

신부님 강론 2023.07.17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중 제15주일(7/16) 마태오13,1-23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깊게 보고자 하시는 말씀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군중들에게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귀’가 당신의 비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태 13,34 참조). 예수님은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이해하기 쉬워지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

신부님 강론 2023.07.16

<짙은 어둠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중 제14주간 토요일(7/15) 마태오 10,24-33 김창옥 강사가 오랜 강의로 지쳐 우울증이 걸려있을 때였습니다. 소통과 치유 등을 주제로 강의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도 명예도 인기도 부질없이 느껴졌습니다. 길을 찾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노(老) 수사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신부님은 침묵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침묵을 어디서 배우냐고 묻자 수도원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프랑스 마콩이라는 수도원에 들어가 잠시 피정을 하라는 권고였습니다. 하도 절박했기에 그는 생전 처음으로 2주의 휴가를 내서 프랑스 시골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는 어차피 말이 안 통하니 침묵을 ..

신부님 강론 2023.07.15

<미움 받아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이유>

✝️전삼용 요셉 신부 가해 연중 제14주간 목요일(7/13) 마태오 10,7-1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함은 곧 가진 것을 내어주는 일과 같다고 하십니다. 기쁜 소식도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복음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며 가난을 강조하십니다. 그러고는 어떤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하십니다. 그 평화가 복음입니다. 받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주는 사랑대로 돌려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더라도 예수님처럼 미움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

신부님 강론 2023.07.13

교만은 패망의 선봉

가해7월 11일2023년 가해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 교만은 패망의 선봉 전삼용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과 병자를 고쳐주는 능력을 주시고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습니다. 그는 왜 파멸에 이르렀을까요?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먹었지만, 더 근원적인 죄는 ‘교만’입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교만이고 망하는 이들은 모두 교만 때문에 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나중에 다른 민족들에게 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그럴 능력이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칼은 야채는 자를 ..

신부님 강론 2023.07.12

<세상 사람들이 바라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

✝️전삼용 요셉 신부 가해 연중 제14주간 월요일(7/10) 마태오 9,18-2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과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이미 죽어 곡을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물러들 가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나 회당장의 희망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며 세상이 비웃을 일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진정 그것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일일까요? 영화 ‘킨’(2018)..

신부님 강론 2023.07.10

<뱀의 것이 되거나 예수님의 것이 되거나!>

✝️전삼용 요셉 신부 가해 연중 제14주일(7/09) 마태오 11,25-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철부지 어린이들처럼 순결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참 지혜를 전해 주십니다. 바로 당신의 ‘멍에’를 매어 온유하고 겸손해지면 ‘안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안식은 곧 행복입니다. 불교에서는 행복은 고통의 소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고통은 집착에서 오는데 집착의 대상인 자아가 소멸하거나 그런 존재인 것을 깨달으면 고통에서 해방되어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 ‘삼사라’(2004)에서 이 논리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한 스님이 자기 육체의 욕망을 없애고자 몇 년 동안의 고행을 했지만, 결국 사라지지 않아 파계하고 남편이 됩니다. 책임이 생기니 돈의 욕심도 생기고, 결국 다른 여자가 좋아져서 결국엔 인간의 ..

신부님 강론 2023.07.09

<말랑말랑해 지는 길>

✝️전삼용 요셉 신부 가해 연중 제13주간 토요일(7/08) 마태오 9,14- 17 청바지 차림의 한 신사가 은행의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는 사업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은행에서 의논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마침 담당 직원이 외근 중이라서 만날 수가 없었고, 해당 부서에 상담해 줄 지점장도 제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앉아서 기다렸지만, 여전히 상담해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오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이야기 하는 여직원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직원에게 자동차 주차권 확인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탁을 했는데, 여직원은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

신부님 강론 2023.07.08

<기도를 해도 아무 응답도 없는 이유>

✝️전삼용 요셉 신부 가해 연중 제13주간 금요일(7/07) 마태오 9,9-1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태오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라고 말하며 비판하는 이들이 잇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시며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희생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희생 제물이 왜 자신을 자비롭게 하지 못하는지 묵상해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자비롭지 못하여 수백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와 같은 학살자가 또 하나 있습니다.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이었던 스탈린입니다. 스탈린 정권..

신부님 강론 202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