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뭘러) △
기품 높은 별 같은 사랑 이야기
독일의 어떤 문학작품을 대하면 그 지순한 정신, 드높은 교양, 형언할 수 없는 고결한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게 마련이다. 릴케의시, 한의 카로사의 소설도 그러하지만 작사로서는 아마추어로 볼수 있는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선 다이어몬드보다 더 고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아침이슬과 같은 완미(完美)함과 만나게 되리라. 육체적 접촉이나 관능에 기울어짐이 없이 온전히 영혼으로써 완벽한 사랑이 구현되는 그런 경지가 있다는 걸 이 소설은 충분히 납득시켜 준다. 도대체 이와 같은 예술작품을 빚어낼 수 있는 민족이 어떻게 나치시대의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 깔끔하고 고결한 한 토막 사랑의 이야기는 추억에의 회고담형식을 빌리고 있다. '첫번째 추억'에서 '일곱번째 추억'으로까지 이어진 후, 대단원을 맞는 '마지막 추억'을 설정하여 마무리를 지어 놓았다. 제1과 제2의 추억은 소설의 도입부호서 마치 음악에서 전주곡의 구실만 할 뿐이다.
첫 추억은 유아시절에서 물그림자처럼 일렁이는 이미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별에 대한 인식, 어머니가 갓따온 제비꽃 다발의 향기, 그리고 교회의 광채와 거기서 울려나오는 음악이었다. 두 번째 추억은 어린 소년 때에 아버지를 따라 궁전(독일 통일전의 제후)우로 가 비(妃)전하를 알현하는 대목이다. 이 삽화는 주인공이 전하 전비(前妃)의 소생으로 병약한 공녀를 만나게 될 운명을 예고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후작의 영양으로 백작의 작위를 가진 마리아이다).
세 번째 추억은 소년 '나'와 백작의 영양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의미심장한 관계가 맺어진다. 주인공은 지난번의 알현 이래로 비 전하의 소생인 2남2녀 중 맏이인 공자와 친구가 되어 자주 궁에 드나들어 왔었다. 이 날은 백작의 영양의 생일인데다 견진성사까지 받았으므로 동생들에게 선물을 줄 양으로 침대의자에 실려 놀이방을 찾아왔다. 그녀는 끼고 있던 반지 중 네 개를 동생들한테 나누어 주었다.
그런 뒤, 고요하고 신비스런 눈길이 잠시 나에게로 와 멎었다. 소년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한의 사랑으로 그녀를 흠모했던 나는 잠시 혈관이 하나 터진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녀는 천사의 온화한 마음씨로써 나이 마음을 읽고는 "이건 내가 너희들한테 떠날 때나 자신이 갖고 가려던 거야" 하면서도 '주님의 뜻대로'란 구절이 새겨진 그 반지를 내게 준다.
나의 어디에서 이런 고상한 용기에 찬 말이 흘러나올 수 있었을까? 그때 나는 조심스럽게 반지를 돌려주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 반지를 내게 주시려면 당신이 갖고 계셔요. 당신의 것은 내것이니까요." -이 말은 죽음을 앞둔 존귀한 신분의 처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백작의 영양은 어린아이한테 키스를 해 주며 꼭 그말을 기억하고 있으라는 뜻의 우아한 인사를 남긴다.
나는 어언 대학생활을 끝낸 청년이 되어 귀향했다. 내가 가진 교양과 신념의 총체는 '신이 뜻이 아니고는 가장 작은 일도 너의 몸에 일어나지 않는다'로 집약될 만큼 신앙적인 인간이 되어 있지만, 한편으론 자유사상에 물들어 궁정 출입을 어줍잖게 여기게도 되었다. 궁정은 후작이 은퇴하고, 나의 소꼽친구였던 맏공자가 계승해 주인이 되어 있었으나 둘의 관계는 자연히 소원해졋다.
그런 어느 날, 백작의 영양으로터 편지가 전해져 왔다. 오랫동안 적조했으니 오후에 '스위스 방'(궁성의 앞뜰을 지나지 않고 출입 할 수 있는 방)으로 찾아오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예나 다름없이 신비스런 깊은 눈길로, 두 남자가 드는 침대의자에 실려 기다리는 나의 앞에 나타났다. 몇 마디의 말에서도 숙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품과 예지가 깃들어 있음을 독자는 알 수가 있으리라.
이로부터 나는 그녀의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이면 언제고 찾아가 시와 신학, 철학 등을 화제로 올려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오직 그녀의 곁에 있을 때에만 그지없는 마음의 평화와 생의 의의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스스로는 부정하려 해도 어린아이 때 가졌던 외경의 염, 소년시절의 흠모의 정이 지금에 이르러선 분명히 사랑으로 발전되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만약에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내가 천사의 사랑에 어울리지 않음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느 날, 도시의 주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궁전 시의(侍醫)가 찾아와, 나의 잦은 방문이 그녀의 병을 악화시킨다며 더 이상 출입하는 걸 그만 두라는 충고를 받는다. 아울러 그녀가 정양을 떠날거라고 알려준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쓰라린 감정에 휩싸여,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티롤로 훌쩍 떠난다. 몇 주일간을 여관방에 거처하며 방황을 거듭한 끝에, 영감이 스치듯 신의 뜻이 아니고 이루어지는 게 없다는 확신이 새삼 생각키웠다.
그렇다. 그녀는 여름이면 대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에 가서 지내곤 했는데, 그 성은 하루 길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내가 성을 찾아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마리아가 퍽 고맙기는 하나 짜증스러운 시의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듣게 되어 나의 온갖 염려와 기우는 눈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심경을 표백하는 듯한 워즈워드의 시<고지(高地)의 소녀>를 읽어 달라고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것은, 이를테면 사랑하는 남자가 애인에게 베풀어주고 그대로 행복한 슬픔을 안은채 자기의 길을 가버리는 조용한 축복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여름 저녁의 황혼녘이었다. 천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띤 그녀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불타는 사랑의 고백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 달라고 말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해 괴로운 시간이 있는 다음, 재회했을 때 그녀는 자기네의 관계가 바깥에서 스캔들이 되어 난처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가벼운 키스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주께서 이 행복을 용서해 주시기를"이었다. 그날 밤 마리아는 숨졌던 것이다. 시의를 통해 나에게 반지를 전해 주게 하고는.
<독일인의 사랑>은 남녀의 연정을 그리면서도 어린 날의 추억, 마리아의 높은 신분과 교양, 그리고 그녀에 대한 나의 신앙에 가까운 사랑으로 인해 이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적인 별들의 사랑으로 인해 이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적인 별들의 사랑으로 접해진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연상의 공녀(公女)와 단아한 청년과의 격조 높은 대화를 통해 인간적이 파토스(정념, 정욕)는 누실(漏失)되고 자기를 초월해 가려는 정신적 사랑으로만 충만하다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둘 사이에 모닥모닥 피어오르는 사랑의 감정, 고귀한 영혼의 포개짐, 깨끗한 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작 영양의 자기 절제와 품격 있는 자세는 진주보다 더 곱고 은은하다. 그 사랑 자체가 워낙 티없이 맑고, 연모하는 마음이 절대적이고 전 영혼 적인 것이어서 읽고 나면 스스로가 향기로운 물에 목욕을 하고 난 듯 정화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물론 길지 않는 분량 탓도 있겠으나 등장인물의 용모나 외양 따위의 묘사는 일체 배제되어 있다. 기껏 백작 영양을 두고는 신비로운 깊은 눈에 대한 묘사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녀와 나의 모습을 대화나 행동을 통해 능히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내면과 외면에 대해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가하게 마련이지만 이 소설에선 그런 노력이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보다는 백작 영양이 왜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주인공의 대답, "어째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어째서 태어났는지, 태양에게 어째서 빛나는가를 물어 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라는 한 마디로써 모든 사태 발전의 인과, 주제와 정황을 다 나타내는 그런 유형의 소설이므로.
근년에 우리나라 청소년 계층에서 이 작품을 열독하는 풍톨ㄹ 보이는 건 실로 바람직스럽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충전해줄 것이기에-
막스 뮐러(Muller, F. Max;1823~1900)
독일 태생으로 <겨울 나그네>를 쓴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 비교언어학자이며 동양학자. 후에 옥스퍼드 대학 교수.
주요 저서 <비교언어학><동방성서집><신화학>등의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학자로 유명하며, 소설로는 <독일인의 사랑>이 거의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