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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5. 13:1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

불멸의 사랑의 송가

세계문학사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격정적이며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얘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작품 통째가 순정과 고상한 품성을 지닌, 그러나 뜨거운 외곬의 정열에 불타는 한 젊은 귀족 청년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상냥하며 슬기로운 한 여인에게 바치는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남녀의 사랑에 있어서만은 절제나 타협이 용남되지 않고 죄악도 탓할 수 없으리라는 사념을 이 소설은 예시한다.

로테에게 쏠리는 베르테르의 기구한 애정, 해결할 길 없는 관계는 다음 구절에서 압축되어 드러난다. "'그녀를 나에게서 멀리 해주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가 없네. 때때로 그녀가 나의 애인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네. 또 '그녀를 나에게 주시옵소서'라고도 기도드릴 수 없다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여자이기에......"

이 불멸의, 예나 지금이나 열화와 같은 반향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서간채 소설이다. 이런 유형으로는 이미 루소의 <신 엘로이즈>가 있었고, 이후엔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애인들>이 널리 읽혀지는 장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 과정에서부터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번민한 끝에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자초지종을 친우인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로 짜여져 있다.

후반부에 마음의 붉균형으로 편지를 보낼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선 편집자가 탐방하여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기록해놓은 것이다.

전체의 짜임새를 대별해보면, 제 1부는 베르테르가 처음 로테를 만나게 되고 바로 연정을 품으며 친근하게 교제하는 행복된 기간의 편지이고, 제 2부는 번민의 굴레를 벗어날 양으로 잠시 타곳으로 나가 관직생활을 하다가 집어치우고 이미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한 로테 곁으로 다시 돌아와 사랑에 고뇌하는 동안의 편지이다.

마지막 부분은 '편집자로부터 독자에게'라는 서브 타이틀이 붙어 있는바, 극도의 혼란과 절망으로 '정신의 조화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그의 이성을 혼란시켜 초조함과 광포감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와 뒤에 남겨진 것은 다만 피로뿐'인 채 자살하는 결미가 편지와 편집자의 기록으로 혼합되어 있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교양과 독일의 문예 부흥기라 할 슈트름 운트 드랑이 내포하는 자유분방한 정열과 로맨틱한 심성을 고루 갖춘 감석적인 교양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서이나 재능보다도 마음을 중시하고('이 내 마음만이 나의 유일한자랑이고 이것만이 모든 것, 모든 힘,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라고 피력한다), 스스로의 정열이나 이상을 위하지 않고, 돈과 명예 따위의 일상적 성실성에 얽매인 사람을 속인이라고 경멸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수업을 바라서 여행길에 올라 어느 마을에 안주해 있는 동안, 우연히 무도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젊은 처녀 로테와 동행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춘희>에서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에게 쏠리는 것이 보다 육욕적이라면 이 청년의 촉발은 청순하고 동경적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게 서슴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이 마음씨가 착한 여성이며, 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는 곳은 온갖 고통이 잠잠해지고 모든 불행이 자취를 감춘다네" 하고 고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고백은 그 자신에게 한해선 정반대로 귀결되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도회장에선 마냥 황홀했다. 베르테르가 로테와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동안 그녀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음을 듣게 된다.그는 훌륭한 인품과 나무랄 데 없는 성실성을 갖춘 남성이었다. 베르테르가 유한 예술가적 기질인 데 비해 알베르트는 건전한 실제성과 근면한 생활인의 천성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베르테르를 절도있게 우의를 가지고 대하였지만 베르테르에게는 어쩔 수 없는 방벽, 미워할 수 없고 뛰어넘지도 못하는 적이기도 했다.

"로테의 심중에 있는 남자들 중에 내가 두려워하는 남자라곤 하나도 없지. 하지만 그녀가 약혼자에 대해 그처럼 다정함과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면서 이야기할 때 - 나는 모든 명예와 존엄을 박탈당하고 칼까지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 없어."

이러한 베르테르의 의식 - 운명적인 예감은 전편에 걸쳐 확산된다.

그의 일과는 틈틈이 풍경을 스케치하든지, 그늘에 앉아 호머의 작품을 읽는 외에는 한결같이 로테 집을 방문하든가 혹은 그녀와 동행하여 그녀의 부친 집 같은 델 나들이하는 것으로 되풀이된다.

작품 중간에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 중 두 가지는 베르테르의 슬픔과 대비되며 그의 운명을 묵시해주기도 한다. 즉, 그 마을의 과부집 머슴이 여주인을 열애하던 나머지 그 집을 쫓겨나게 되고, 그의 뒤를 이은 머슴을 살해하여 구금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그 하나이다.

베르테르는 머슴의 사련을 들은 시초부터 그에게 경탄해 마지 않는 호의를 보낸다. "나는 생후에 이와 같이 밀려드는 정욕과 열렬한 동경이 이토록이나 순결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보지 못했으며, 아니 이와 같이 순수한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음은 생각한 적도 없고 꿈꾸어 보지도 못했네" 하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연행당한 뒤 자신의 일처럼 구명에 열을 올리기도 한 것이다. 이때 담당 법무관인 로테의 부친이나 알베르트의 냉담한 태도 역시 그 자신이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이요 벽이라 할 만하다.

또 한 가지는 로테 부친의 서기로 일하던 젊은이로서 로테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정신병자가 되고 만 불행한 짝사랑의 일화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경우가 이들과 구별됨은, 충분히 이성을 지니고 진실되고 힘차며 순박한 정신을 가진 로테가 약혼녀 시절이나 기혼녀가 되고 난 다음에도 한결같이 베르테르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한 정신 때문에 베르테르의 사랑을 받아 들일 수도 없고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분별을 고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르테르는 종국에 가서 죽음으로써 스스로의 불행을 해결할 결심을 한다. 알베르트가 집을 비운 사이 그녀를 찾아가서, 자신이 번역한 오시안 시를 낭송한 끝에 최초이며 최후로 그녀를 포옹하고 전율할 입맞춤을 경험한다. 이튿날 그는 주위를 깨끗이 정리한 후 사동을 시켜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달라고 심부름을 보낸다. 알베르트는 침착하게 아내를 향해 "이 아이에게 피스톨을 주시오"라고 말하고, 롯테는 떨리는 손으로 피스톨을 꺼내 망연히 먼지를 턴 수 건네준다.

"이것은 당신의 손을 거쳐 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털어 주시었습니다. 나는 피스톨에 수없이 입맞추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결심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야밤중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의 유해는 유서에 따라 로테의 부친이 그 마을에 안장했다.

나는 이 소설을 고등학교 1학년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애독하던 무렵에 읽은 적이 있다. 그때의 경이로운 감동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스라해졌지만, 전반부의 "로테여,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이 땅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는 구절과 로테가 피스톨을 건네주는 장면은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새삼 이 명작을 읽노라니 그 어느 소설보다도 붉은 밑줄을 많이 긋게 되었다. 스쳐 지나고 싶지 않은 보석처럼 영롱한 구절이 많았던 때문이다. 전인적 인간, 전인적 교양을 추구했던 괴테의 편린이, 평생토록 사랑의 순례자로 보냈던 그의 체취가 이 작품 속속들이 심어져 있었던 탓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작자가 25세 되던 해에 자신이 몸소 겪었던 체험에 힘입어(그것이 동기가 되어) 4주간에 걸쳐 순식간에 탈고했다고 알려진다. 그의 천재적 영감과 절실한 경험이 합일되어 이루어진 결과이겠따. 이 작품이 발표된 뒤, 베르테르가 입었던 연미복이 일대 유행이 되고 자살자가 속출하며 나폴레옹이 진중에서 되풀이 열독했다는 따위는 부질 없는 사족에 지나지 안을 터 이다.

독일 최대의 문호인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으며, 진지하고 엄격한 기풍은 아버지로부터, 낙천적이고 예술가적인 성품은 어머니의 영향에 말미암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릴적에 이미 천부적 재능이 두드러진데다 훌륭한 가문이 뒷받침되어 그의 대성은 약속받은 거나 다음이 없었다.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진학해서 헤르더를 사귀게 되어, 그의 인생관 내지 예술관에 큰 변혁을 맞았다. 그 결과로 괴테는 '질풍노도'라는 문학사조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때맞춰 나온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괴테는 대체로 자기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는 작가로서, 자기가 직접 겪지 않고는 한 줄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의 인생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연인들과의 스캔들은 모두 시와 소설 등에 소재를 제공해준 셈이다. 로테의 모델 역시 그가 실제로 열애했던 여인 샬로테의 영상에 힘입어 창조된 여인이었다.

■괴테(Goethe, J.W. von ; 1749 ~ 1832)

독일의 시인, 문학 전분야의 대문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부유하고 교양있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적절한 교육을 받아 정신과 정서 양면에서 후일 천재적인 소질은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

21세때에 슈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거기에서 헤르더를 만나 인생관 내지 예술관에 큰 변혁을 일으켜 나중에 '슈트림 운트 드랑' 운동의 선봉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공전의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주옥 같은 서정시편을 쏟아내 놓았다. 대하사극 <파우스트>는 그의 문학과 예술, 사상을 집약한 불후의 명작이다. 그 외에도 서사시 <헤르만과 도르테아>, 장편소설 <친화력>을 비롯하여 자연과학분야에서만 해도 바이마르의 전집판으로 순문학 63권, 자연과학 14권, 일기 16권, 서한집 50권 등 143권에 이른다.

바이마르 국정에 참여하여 내각 수반에 이른 한편, 장수를 누리면서 수많은 사랑의 편력과 염문을 뿌리기도 한 다복한 교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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