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 (마크 트웨인) △
위대한 미국적 혼의 고취
글을 읽는 감회가 이만큼 싱그럽고, 흡사 야생의 엉겅퀴 잎을 씹는 듯 풋풋하고 떫은 맛이 받치는 책이 또 달리 있을까. <톰 소여의 모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의 규범에 안주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지탄받아 마땅한 새로운 이상을 추구해나가는 생명력으로 충일하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치부하는 상식인이야말로 별 볼 일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비록 허황된 꿈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창조됨을 이 작품은 분명한 목소리로 나타낸다.
주인공 톰 소여 소년은 시체말로 개구쟁이인데다 항상 골치만 썩이는 문제아이다. 부모를 일찍이 여읜 후 마음씨 착한 폴리 아주머니에게 의탁된 처지이지만 조금도 그늘진 성격이 없이 매양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특히 장난을 치고 일을 저지르는 경우엔 더욱 용감무쌍하다. 한가족인 폴리 아주머니나 매리 누나, 이복동생인 시드 등을 괴롭혀서 야단을 맞긴 하나 속속들이 미움을 받는 건 아니다. 그에겐 싹싹하고 천진무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톰에게 허클베리 핀이 가세하면 백만의 원군을 얻는 듯 신이 나고, 따라서 일대 모험이 전개된다. 허클은 주정뱅이의 아들로, 집도 절도 없이 마을을 배회하는 부초 같은 인생이다. 모든 아이들이 허클과 말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부모한테 야단을 맞을까봐 전전긍긍하는 편인데, 톰은 여기에 구속받지 않고 허클을 친우로 받아들인다.
톰이 허클과 배짱이 맞아 마을에서 3마일쯤 떨어진 강 하류의 무인도에서 해적생활을 꾀하는 거나, 보물찾기를 꿈꾸며 밤중에 고목나무 아래나 폐가를 파헤치는 행동, 그리고 끝장에서 부(富)를 얻은 후에도 산적이 되기 위해 결당식을 갖는 장면은 이 장편을 한낱 소설의 범주에만 묶어두지 않고 바꿀 수 없는 모험이라는 가치, 뭔가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불가능한 어떤 것을 성취시키는 활력소가 샘솟고 있는 까닭이다. 바로 미국적 혼의 고취이다.
이와 아울러 학생인 톰이 부랑아인 허클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평등한 우정과 몫을 나누고 있음도 예사롭지 않다. 자연아인 톰에게는 누구일지라도 뜻이 맞으면 동지요 벗이다. 판사의 딸인 베키가 잘못을 저질러 선생한테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을 때 톰이 이를 떠맡아 대신 매를 맞는 대목에선 신사로서의 자질을 보여준다. 이 모두가 미국 사나이들이 추구해 마지않는 덕목이다. 이 모두가 미국 사나이들이 추구해 마지않는 덕목이다.
이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미국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요소를 열 가지 들면서 <톰소여의 모험>의 작자 마크 트웨인을 그 하나로 꼽았다. 트웨인은 이 작품과 일련의 시리즈가 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생활>로써 가장 미국적인 국민의 건강성, 미국식 민주주의와 거기서 인간과 제도들――이를테면 자유·정의·평등·모험을 서민 대중의 취향에 맞게 표현한 데 말미암은 것이다. 서민의 숨결, 서민의 언어로 뿐만 아니라 서민에게 개척정신과 꿈을 심어준 데에 지고성이 있다.
작중의 내용은, 시골의 소읍 세인트 피터즈 버그를 배경으로 하여 장난기 어린 애교와 소년다운 천진성이 흠뻑 밴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이 와중에 마치 인체에서 골격과도 같이 큰 사건이 설정되어 스릴과 흥분을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미된다. 이는 비록 짓궂을망정 어린이의 세계에는 악의나 작위성이 없는데 비해, 잔인과 악마성으로 얼룩진 어른이 개입한 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가 그를 무찌름으로써 일약 마을의 영웅이 된다.
그 중 에피소드를 몇 개 추려보면 이러하다. 톰은 학교를 결석하고 수영놀이를 한 벌로 폴리 아주머니로부터 주말에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톰은 죽기보다 싫은 이 일을 재미난 작업인 양 위장, 같은 또래의 흥미를 유발시키고는 오히려 페인트칠을 하게 해준 대가로 재산까지 불린다. 재산이란게 고작 튀김돌, 푸른 유리 파편, 실감개, 쓰잘데없는 열쇠, 분필 토막, 병마개, 놋쇠 핸들, 애꾸눈 새끼고양이 따위이지만.
또 교실에서는 괴상망측한 그림 그리기를 가르쳐준다고 베키의 주의를 끌어 그녀와 뜻도 모르는 약혼식을 갖는다. 애답지 않게 베키에게 키스를 하고는 "이걸로 모두 끝났어, 베키. 이젠 앞으로 다른 사내애가 좋아져선 안 되는 거야. 절대로, 영원히. 알았지?"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허클과 만나서는 미국 서부의 기괴한 미신에 따라 기상천외한 일을 벌인다. 예컨대 사마귀를 떼기 위해 죽은 고양이를 가지고 자정에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일이 그러하다. 이 때문에 둘은 심야의 살인을 몰래 목격하는 증인이 되어버린다. 최근에 매장한 시체를 파내려던 의사를, 인부로 고용된 인디언 혼혈아 조가 칼로 찔러 죽이고는 그 죄를 술에 취한 머프포터에게 뒤집어씌운 사건이 그것이다. 조는 개백정 혼혈아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악마의 표본이었다.
살인사건을 목격한 두 손년은 조의 보복이 두려워 함구한 채 정신적으로 호된 홍역을 치른다. 그러다가 둘이서 보물찾기를 할 양으로 도깨비가 나온다는 폐가에 잠입해 들어갔다가는 조가 스페인 인으로 변장하여 동료와 함께 거금을 챙겨서는 숨겨둘 곳을 찾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는 돈을 챙겨 남부로 줄행랑을 놓기 전에 판사의 미망인인 더글러스 부인에게 복수를 할 심산이었다.
톰과 허클이 동화에 나오는 얘기에 힌트를 얻어 보물찾기에 나서는 것도 기발하지만 거기에 겹쳐 두 소년이 숨어 보는 앞에서 악당들이 가진 돈을 파묻어 두려다가 오히려 금화상자를 캐내는 우연은 실로 놀라운 재치이다. 단순히 과장된 우연이라고 보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공상과 꿈의 세계를 현실로 환치하는 환상적 리얼리티로 평가함직하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는 야성적 자연아인 소년들의 승리로 매듭지어진다. 조의 과부댁 습격 건은 허클이 마을사람에게 알림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이 시간에 톰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섬에 있는 동굴로 피크닉을 갔다가 베키와 함께 미로 속에 남겨진 결과로 조가 돈을 간수해둔 비밀의 장소를 알게 된다. 실종되었다 해서 마을은 발칵 뒤집혀졌지만 톰은 고생 끝에 스스로 출구를 찾아 무사히 귀환한다.
이후 판사에 의해 동굴 입구가 폐쇄되었으므로 악한 조는 굴속에서 아사한 시체로 발견되고, 그 후 톰은 허클을 데리고 자기만 아는 출입구로 잠입해 들어가 돈상자를 챙겨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 둘은 일약 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을 응징한 영웅으로서 촌민의 환영을 받는다.
실제로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변도시의 하나인 한니발에서 성장하여 정규 학업생활 대신 신문사 식자공과 뱃길 안내원 등으로 잚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므로 톰 소여의 주변은 그가 어린 날에 체험했던 그 배경이요 인물들에 다름 아닐 터이다. <톰 소여의 모험>이 생동감 넘치는 여유도, 미국인들이 그 시대의 바로 자신들의 얘기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도 이로써 이해된다.
미국인은 그네들의 자랑스런 국민성을 구가한 국민문학가에 대해 깊은 존경을 품고 있다. 어빙, 에머슨, 휘트먼 등등……그러나 기성사회의 관념에 때묻지 않은 자연아의 종횡 무진한 모험담을 그린 마크 트웨인에겐 숭배에 가까운 정을 느낀다. 미국을 오늘날처럼 부강하게 한 힘의 근원에 대해 전신으로 천착한 작가가 바로 그라고 믿는 소이이다.
■마크 트웨인(Twain, Mark ; 1835~1910)
미국의 소설가.
미주리 주의 한촌에서 이린 시절을 보내다가 부친의 사망으로 각지를 방랑하며 한때 미시시피 강의 수로안내자 노릇도 했다. 그 후 신문기자가 되어 단편 <뛰어오르는 개구리>를 발표하여 작가가 되었다.
잇달아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명이 드높아져 만년에는 각 대학으로부터 명예학위를 보내오는 등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는 명랑작가로서 서부 특휴의 유머를 잘 이용하며, 미국 국민의 위대성을 건강하게 형상화하여 미국의 국민작가로 숭앙을 받기에 이르렀다.
<톰 소여의 모험> <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생활>은 모두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한 3부작의 명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