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씨 (나다니엘 호손)
죄의 업보와 구원의 길
독자들은 명작이라 일컫는 뛰어난 소설작품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문제, 혹은 인간과 사회간에 야기되는 갈등, 그리고 나아가서는 신과 인간관계를 규명하는 종교적 차원까지의 제양상을 섭렵하면서 교양을 넓혀가게 마련이다. 호손의 <주홍 글씨>는 이런 점을 다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는 한편 독자들을 흥미와 아울러 심각한 사색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영국에서 로즈 칠링워드와 결혼했던 유부녀 헤스터 프린은 아메리카 이민 초기에 뉴잉글랜드 청교도 지역에 이주해온 뒤 그곳의 존경받는 젊은 목사 딤즈데일과 불의의 관계를 맺어 펄이라는 여아를 낳는다. 이로부터 애정의 삼각관계에 놓은 세 남녀 사이에는 사랑과 복수라는 인간사의 등식이 제시된다. 이와 병행하여 뉴잉글랜드 보스턴에 정착한 주민은 영국 청교도들이었으므로 종교적인 엄격한 계율에 의해 이 간통한 여인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그녀는 끝내 간부를 밝히지 않은 채 혼자 주민의 경멸과 질시를 묵묵히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업고를 치른다. 이는 말할 나위도 없이 사회적 제도가 인간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탐구하려 한 작가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면목은 인간이 범하는 죄와 그 속죄의 길,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섭리에서 찾아진다. 주민의 절대적인 흠모를 받는 딤즈데일 목사가 내면으로는 위선에의 가책과 양심의 고통을 혹심하게 겪은 끝에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발하며 죽어가는 장면을 통하여 주의깊은 독자는 구원이라는 명제와 함께 작가의 종교관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우리 인간 중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좀더 높은 위치에 도달해봤댔자 그것은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좀더 뚜렷이 알아보는 정도에 불과하고……'라는 문맥에서 일층 명료하게 뒷받침된다.
<주홍 글씨>는 극적 장면에서 시작되어 급전하는 극적 국면으로 대단원을 짓는다. 그 과정에서 원색적인 인간심리와 사회규율, 시장터의 넘치는 햇빛과 숲 속의 음침한 그늘이 암시적인 명암을 이루며 썩 재미나게 읽히는 장편이다. 그런 한편, 우리에게 세상살이에 대해 조심스런 성찰과 생애의 외경을 일깨워주는 교훈을 담고 있기에 더욱 값지게 받아들여진다.
작품의 서두는 감옥문이 열리며 불미스런 씨인 어린애를 안은 아름다운 헤스턴 프린이 많은 주민이 운집한 시장터를 지나 교회당 처마 옆에 서 있는 수치와 모욕의 형단으로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에게 내린 판결은 죄인의 표지를 달고 살아야 함과 주민이 운집한 앞에서 형대에 올라 한동안 전시되는 일이었다.이러한 판결은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던 당시의 풍속에 비추어보면 사형에 처하는 것보다 더 삶을 욕되게 하고 평생을 부끄럼 속에 살게 하는 화인을 찍는 것에 다름아니다.
단상에는 존경받는 지사와 목사 등 유지들이 근엄하게 착석하고 있었다. 이 단상에서 주위의 권유를 받은 딤즈데일 목사는 간통한 남자의 이름을 대라고 열정적으로 타이른다. 군중 속에서 뒤늦게 유럽에서 건너오던 길에 인디언들에게 억류되었다가 풀려나온 남편 로즈 칠링워드가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이 젊은 부인에게 도무지 걸맞지 않은 늙은, 그러나 학식과 지혜가 풍부한 학자였다. 그는 인디언촌에 있는 동안 더 몰골 나쁘게 변했으나 거기서 신비스런 의술을 터득하여 지금은 의사로 변신하여 나타난 것이다. 가슴에 치욕의 표징인 주홍색 글자를 달고 아기를 안은 헤스터 프린은 남편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순정에 넘쳤던 젊은 날에 단지 학식과 명성의 유혹에 걸려 결혼했던 남자, 조금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서 눈을 돌려버리고 만다.
그녀는 이후 마을에서 동떨어진 숲 속의 오두막집에 거처를 삼고, 타고난 수예와 바느질 솜씨로 삯일을 해서 고난의 생계를 꾸려간다. 어린 펄을 데리고 마을에 들를라치면 지나는 행인은 더러운 물건을 보듯 외면하고, 조무래기 아이들은 손가락질과 야유를 보내며 에워싸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짐짓 의연한 모습으로 그 수모를 이겨낸다.
딤즈데일 목사는 원인 모르게 나날이 수척해지며 때로는 광기를 띠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 사목일에는 더욱 헌신적으로 열심이어서 주민들은 그의 성자다운 고행극기와 주일엔 영혼을 뒤흔드는 불 같은 설교에 매료되어 더욱 깊은 애정을 품는다. 한편 로즈 칠링워드는 그의 전력과 신분을 갖춘 채 유능한 의사로 행세하며 상류사회 사람들과 친분을 갖는다. 그는 헤스터 프린에게 함구를 약속받은 다음, 간부가 누구인가를 눈치채고 목사의 하숙집에 동거인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적의를 감추고 목사의 주치의가 된걸 기화로 가장 가까이서 고통받는 영혼을 주시하며 서서히 복수를 획책한다. 불쌍한 늙은이 -작가는 이 불행한 부분의 표상을 두고 다음과 같은 경구를 보낸다.
'남자들이여, 여자에게 구혼하여 그너의 손을 얻을 때에 그 손과 함께 그녀의 가슴속 최고의 애정을 아울러 얻지 못하거든 두려움에 몸을 떨지어다! 왜냐하면 보다 더 강한 남자의 손이 와서 그녀의 열정을 일깨워주는 일이 있을 때, 로즈 칠링워드의 경우처럼 이내 비참한 운명에 빠지는 것이다.'
숲 속 오두막집에서 사회와 절연된 채 커가는 펄은 악마의 요정같이 심술궂고 비뚤어진 심성과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게 된다. 이 소녀는 분명 연극에 있어서는 소도구 이상의 생동하는 상징과 배경 설명의 몫을 담당한다. 사랑의 부재가 인간의 심성과 성장에 어떻게 반영하는가를 표현해준다. 특히 로즈 칠링워드가 딤즈데일 목사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진상을 깨닫고, 헤스터 프린이 숲 속에서 목사를 기다리는 동안의 펄에 대한 묘사는 작가 호손의 신비적이고 로맨틱한 문학성향을 잘 나타내 보인다고 하겠다.
목사를 만난 그녀는 자신을 영원히 구속하는 주홍색 글자를 가슴에서 떼내 팽개치며 셋이 함께 구대륙(유럽)으로 도피하자고 제의한다. 이 지상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한 이들은 환희에 들떴으나 이 계획이 금세 로즈 칠링워드에게 간파되어 좌절당한다.
며칠 뒤 새 지사의 취임식 날을 맞은 딤즈데일 목사는 영광스럽게 축하 설교를 한다.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끌고 공회당에서 나와 행렬을 따라 연회장으로 가던 중 형대에 이르러 헤스터 프린과 펄을 상면하고는 참회의 충동과 생애의 절벽 끝에 다다른 용기로 둘의 손을 잡고 형대에 오른다. 거기서 군중을 향하여 자기고발과 하느님께 향한 속죄를 다한 후 숨을 거둔다. 이때, 숲속에서는 노골적으로 목사의 호의를 협오했던 펄이 비로소 자기의 생부에게 애정에서 우러나는 키스를 한다.
<주홍 글씨>의 감동은 헤스터 프린이 지옥의 업화(業火)와 같은 고난으로 자기 죄를 보상하는 길과 딤즈데일의 속죄로 인한 구원의 길로 모아진다. 문체는 남발되는 에피그램과 설명조로 인해 현대 소설문장으론 눈에 거슬리는 바가 없지 않으나 전 세기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환상과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여 나름대로의 개성을 얻는다.
구성에 있어서는 이 명작을 번역한 김종운 교수도 지적했듯이 치밀성이 돋보인다. 예컨대 이 작품에서 형대가 세 번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죄악에 대한 선고로서, 두 번째는 어느 깊은 밤 우연히 만난 이 불의의 가족이 운명적인 화해와 이들에게 씌워진 통증의 공감대로서, 세 번째는 참회와 구원의 매개체로서 설정되어 있다.(형대는 또한 그 시대의 인심과 사회제도의 모순을 통박하는 상징을 띠기도 한다). 말미의 '뒷이야기'는 에필로그로서 이런 설명조의 후일담은 필요없는 사족인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사색의 여운을 빼앗고 군더더기를 덧붙임으로써 산뜻한 맛을 경감시키기만 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작품으로 인해 미국문학사는 빛나는 뿌리와 긍지를 지니게 되었다 해도 과찬은 아닐 성싶다.
작자 나다니엘 호손의 거의 모든 작품은 내향적이며, 항상 내면의 문제-특히 인간의 죄의 양상을 줄기차게 추구하였는바 이것은 청교도의 전통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매사추세츠 청교도의 전통이 강한 지방이었다. 너무나 엄격한 도덕률에 사로잡혀 향락적인 것을 배척하고 검소한 생활을 쫓는 음울한 분위기는 그의 소설적 제재가 되기에 적격이었다. 평가(評價)에 따라서는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비난이 없지 않으나, 호손은 엄숙한 예술가적 혼으로 인간성을 찾아내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문학사상 최상급의 위치에 올랐다.
■호손 (Hawthorne, Nathaniel ; 1804~64)
미국의 소설가,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적어서 대학졸업 후 10여 년간은 숨어 살다시피 하면서 고독을 즐겼다. 젊은 시절 한때 세관 관리로 일한 적이 있으나 대표작<주홍 글씨>를 발표한 걸 계기로 집필생활에 들어갔다. 처녀작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를 비롯하여 몇 가지 작품을 더 썼으나 위의 작품에 미치지는못했다.
영사로 임명되어 영국으로 갔다가 유럽 대륙을 전전하며 <대리석의 폰>을 썼다. 귀국 후에는 남북전쟁에 휩쓸려 정착하지 못한 여생을 보냈다. 어떻든 그의 등장으로 미국문학이 개척되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