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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5. 13:11

걸리버 여행기 (J.스위프트) △

기상천외한 모험, 세상에의 통렬한 풍자

세계 불후의 명작들이 각국어로 번역되어 나가면서 그 본질이나 가치가 더러 왜곡.변형되는 경우를 보는데 <걸리버 여행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만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의 제 1부인 <작은 사람들의 나라>만이 아동물로 번안되어 특질, 삻의 선성(善性)과 아름다운 덕목에의 추구라는 깊은 주제와는 동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단지 기상천외한 모험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부패와 타락으로 만연한 영국사회, 그중에서도 귀족이라 칭하는 상류계층의 부도덕함을 간접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데에 포인트가 있다. 그런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발한 방법으로 고도의 풍자성을 띄게 마련이므로 이 장편은 영문학사에서 이 분야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평가들은 '이 작품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계통을 이어받은 풍자문학으로서, 19세기의 디킨스나 대커리와 같은 사실주의의 풍자적 소설을 거쳐서 금세기의 새뮤얼 버틀러나 조지 오웰 등의 소설로 연결되며, 영국문학에 오래도록 이어지는 중요한 전통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걸리버라는 인물은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18세기 초엽의 영국에서 상선에 고용된 외과의(?醫)였다. 그는 교양인이나 항해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서 대단히 모험을 즐기는 타이프였다. 때문에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기묘한 나라들에 억류당하게 된다. 작자 스위프트는 가공의 이런 인물을 창조하여 그가 보고 느낀 것을 통해 여왕이 다스리는 영예로운 자기 조국의 온갖 모순과 비리, 비뚤어진 세태를 실컷 야유,조롱한다.

하지만 이런 야유가 고발성에만 그친다면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조롱 속에는 어리석음에 대비되는 현명함, 더러움 대신에 깨끗함, 부패한 인간을 부끄럽게 만드는 고매한 인성에의 지향과 탐구 정신이 맥맥히 흐른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제 4부 '말(馬)들의 나라'에서 작가의 이런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제 1부는 걸리버가 항해상활에서 돌아와 결혼을 한 수, 다시 돈을 벌겠다고 동인도로 향하는 배에 의사로서 계약을 맺고 떠나는 얘끼로 시작된다. 그런데 도중에 심한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하여 그 혼자만이 뭍에 표착한다. 그가 실신상태에서 깨어났을 땐 온몸이 포박당해 있었다. 그 나라는 릴리퍼트라는 소인국으로서 작은 사람들이 그를 결박지어 놓은 것이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국왕 앞에 끌려 갔다.

소인국 사람들은 키가 고작 12센티도 안되기 떄문에 걸리버는 어렵잖게 제압할 수도 있었으나 양신인다운 태도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인다. 국왕은 그를 적대시하지 않으나 막대한 식량을 축내기 때문에 재정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에 이웃 소인국과의 긴장이 첨예하게 되자 걸리버가 해협을 헤엄쳐 가서 군함 50척을 나포해 오는 개가를 올렸다.

릴리퍼트 나라와 이웃 플레퍼스크 나라는 같은 문화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종교라 할 수 있는 계란을 넒은 쪽에서 깨어 먹는가, 뽀족한 방향에서 깨어 먹는가를 두고 견해를 달리하게 되어 적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논쟁은 당시 영국 정당들과 정치가들이 국리 민복과는 상관없는 문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세태를 비꼬기 위함이었다.

걸리버는 릴리퍼트에서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지자 그가 한때 치명타를 입혔던 이웃나라로 건너가서 그 나라 국왕의 환대를 받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귀국하고 싶어하는 그의 원의가 받아들여져 배 한 척을 건조해 주고 식량까지 마련해 주었으므로 그 소인국을 떠나서 마침 항해중인 영국 상선을 만나 무사히 귀국하게 된다.

제 2부 '큰 사람들의 나라'는 다음 항해 때 역시 폭풍을 만나 낯선 땅에 상륙했다가 걸리버 혼자만이 떨어지게 되어 겪는 고생담이다. 이 나라는 브롭딩낵이라 불리워지는 나라로 사람들의 키가 교회 첨탑 높이만큼 큰 거인국이다. 그는 한 농부의 눈에 띄게 되어 기묘한 애완동물처럼 기식하게 된다. 그를 차지한 주인은 자기들과 꼭 같은 못브을 하고 있으나 벌레같이 작은 걸리버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자 서울로 올라간다.

걸리버는 매일 수많은 군중 앞에서 연희(演戱)를 계속하느랴 건강이 쇠약하게 되었을 즈음, 왕비의 눈에 들어 평안한 궁궐생활을 하게 된다. 그를 아끼고 보살펴 주었던 주인집의 착한 딸 글룸달클리치도 함께 머물러 있게 되었으므로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국왕은 이 문명국에서 온 듯한(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지만) 소인의 입을 통해 유럽 대륙과 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해 흥미있게 경청한다. 겨우 꺠우친 그들의 언어와 손짓.몸짓으로 말하는 걸 듣고 난 국왕은 이렇게 말한다.

"만들었을 당시에는 아주 좋아을 제도들이 그대의 나라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부패되어 버렸나 보군요."

이러한 비판과 아울러 번득이는 유머 감각도 이 소설에서 조미료 구실을 하기에 넉넉하다. 소인국 궁궐에서 화재가 발생해 왕비의 내전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걸리버는 엉겁결에 오줌을 갈겨서 불길을 끈다. 그러나 이 행위가 왕비의 분격을 사서 궁지에 물린 바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 2부에서는 국왕이 면도를 한 거품이 얼어 물에 헹워서 얻은 수염 토망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고 박아빗을 만들어 쓰는 대목도 재치를 엿보게 한다.

걸리버는 결국 이 대인국에서도 탈출한다. 어떤 기회에 바닷가에 나오게 되어 그의 숙소라 할 조롱 상자를 독수리가 낚아채 가다가 바다에 떨어뜨렸으므로 지나가던 배에 구조된 것이다.

제 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는 라퓨타라는 국가이다. 그가 탄 배가 해적선의 공격을 받아 그는 홀로 육지에 내려젔으므로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이 왕국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국왕의 선처로 육지에 있는 나라 수도를 비롯하여 여러 학문 기관들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이 제 3부에서 철학자, 과학자, 역사가, 기업가를 만나게 되는데, 라퓨타에서는 너무나 사색에만 몰두하여 실제의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현인들만 있고, 래가도에서는 어리석은 연구에만 골몰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걸리버 여행기>의 뛰어난 문학적 가치는 이런 황당한 공상을 엮어내며, 거기서 어떤 교훈성을 추출해내는 데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천재는 이 한계를 넘어선다. 가령 19세기말의 프랑스 공상 모험 소설가인 줄 베른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써서 오늘날의 우주여행을, <바다밑 2만리>로 잠수함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과학이 상상력의 산물이듯이 문학의 마력도 이런 점에서 찾아질 것이다.

이 장편에서 가장 돋보이며, 작가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해답이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은 제 4부 '말들의 나라'이다.

지난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던 걸리버한테 선장으로 항해를 해보라는 좋은 조건의 권유가 있어서 출항했다가 선원의 반란으로 또 단신, 물에 내동댕이쳐졌다. 원주민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수풀 속으로 들어갔따가 고릴라로 보이는 짐승들한테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때 말(馬)이 나타나 그를 구출해 주었다.

걸리버는 말이 이끄는 데로 따라갔더니 훌륭한 외양간 저택이 나타났다. 이곳이 말들의 처러로, 회색 말은 주인이었고, 갈색 말은 하인이었다. 그가 여기에서 차츰 깨닫게 된 바로는, 이 섬의 지배층은 아주 예의 바르고 아름다운 덕목을 갖고 살아가는 말들이며, 지저분하고 야만적인 고릴라 종류는 미개한 야만 종족으로 천대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전자를 휴이넘이라 했고, 후자를 야후라 칭했다.

휴이넘들은 처음에 걸리버도 야후족이라 판단하고 경멸하는 듯 했으나 걸리버의 교양과 지혜로운 태도를 보고는 생각을 달리한다. <걸리버 여행기>가 묘사하는 휴이넘의 공동체는 인간이 이상향으로 이런 낱말의 정의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서로 의사가 통하게 되었을 때 걸리버가 유럽 사회의 그늘진 면을 피력하자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야후야말로 인간의 못브을 하고 있으나 저열한 야후게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사회란 이를테면, 귀족의 자제는 나태와 사치 속에서 자라나고, 성년이 되면 저열한 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사회란 이를테면, 귀족의 자제는 나태와 사치 속에서 자라나고, 성년이 되면 음란한 여자들 속에 파묻혀 정력을 소모하며, 추악한 병을 얻고 재산도 탕진한 뒤 지참금을 탐해 사랑하지도 않는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드는 그런 통속적인 인간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의심할 나위없이 훌륭한 주인 휴이넘은 이 섬에 남고자 하는 그를 거두어 주고 싶어하나, 휴이넘 대표외의의 결정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떠나 보낸다. 걸리버는 위악이 없고 고상한 미덕이 넘치는 여기에서 종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그 결정에 따라 귀국길에 오른다. 특히 제 4부에선 법률가, 이른바 정의를 수호한다는 재판관이나 변호사에 대한 작가의 심한 혐오감이 거침없이 토로된다.

작가는 말미에 이런 구절을 잊지 않고 적었다. '내 여행기의 목적은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덕성을 갖춘 휴이넘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 보다는내가 조금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겸손을 갖추고 있다. 나는 물질적인 이익이나 명예를 위하여 여행기를 쓰지 않았다.'ㅁ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자신이 한결 고결해졌으며, 이 세상은 얼마나 개조해야 할 대상인가를 깊이 깨우칠 것이다. 이 장편을 단순히 어린이들의 흥미로운 얘깃거리로 알아 왔다면 이 보다 더한 망발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이 영문학사에서 불멸의 명편임은 얼마든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 J.스위프트 (Swift, Jonathan ; 1667~1745)

더블린에서 영국계 부모의 슬하로 출생

정계에 진출하고 성직자가 되기도 했으나 불우하여 말년에 정신병원에서 광사(狂死). 세계문학사상 드믈게 비판을 가한 <걸리버 여행기>로써 영문학사의 성좌가 되었으며, 그 빡에 종교의 부패를 풍자하는 <통(桶)이야기>,학문상의 싸움을 야유한 <서적의 싸움>이 유명하다.

특히 아이리시 저항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해서 사후에도 아일랜드의 민족적인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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