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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5. 13:06

햄릿 (셰익스피어) △

성격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폭넓음

문학사의 연원을 저 고대의 희랍비극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감안해 볼 때, 문학작품의 본령은 어쩔 수 없이 비극의 큰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다. 고대의 비극은 가혹한 운명에 얽매어져 고귀한 신분이 가장 비참한 상태로 굴러 떨어지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놓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 속에 몰아 넣고, 이런 정서적 격정의 체험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고상하게 가라앉히려 든다.

이를 가리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詩學)>에서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야기시키는 일을 내포하고, 그것을 통해서 그러한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라고 정의했는데, 이 말은 시와 소설, 희곡 등 모든 문학 장르의 본질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어 왔다. 카타르시스는 의학상의 용어로, 마음을 정화하는 작용을 의미하는 희랍어이다.

그런데, 16세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의해 희랍비극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경지를 맞게 되었다. 고대 비극이 타의의 힘, 즉 운명의 장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그린 데 비해, 셰익스피어극은 주인공 자신의 성격에 의해 파멸을 자초한다는 점에서 근대극은 그 패턴을 달리한다.

이를테면 그의 4대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에 있어서, <햄릿>은 왕자 햄릿의 우유 부단한 성격 때문에 비극이 심화, 확장되고, <오셀로>는 장군 오셀로의 질투심 때문에 모든 행복과 희망이 쪽박나고 만다. <맥베스>는 왕실의 근신(近臣)이며 장군인 맥베스의 권력욕이 낳은 파멸이며, <리어왕>은 왕의 허영심이 파생시키는 참극의 전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영문학을 사랑하는 모든이를 압도하는, 인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천재 예술가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가진 지능지수를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휘했다고 말하는데, 셰익스피어야말로 인간성에 대해 깊고 폭넓은 관찰, 이야기를 꾸미는 구성력, 그리고 짧은 문맥에 담는 표현력에 있어서 그 이상의 능력을 드러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그는 52세의 생애를 보내면서 3권의 시집과 36편의 시극(詩劇)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는바, 이 작품들은 예외없이 주옥편들이다. 초기에는 화려한 낭만이 따뜻한 해학에 감싸여 아름다운 언어로 구사되는가 하면, 후기엔 4대 비극에서 보는 바처럼 전율할 만큼 심각함과 장대한 스케일로 인간 세상의 온갖 애증을 숨막히게 드러낸 독특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햄릿>은 그의 많은 명작 가운데서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전5막의 시극이다. 형식적으로는 희곡(Drama)이므로 파란만장하고 복잡한 인간사가 얘기로 꾸며져 있으며, 내용상으로는 시이기 때문에 대화 한 마디가 모두 기지ㆍ해학ㆍ오묘함이 무르녹은 시행(詩行)에 다름아니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이다. 부왕은 권좌를 탐한 아우 크로디아스가 귀에 독약을 넣음으로써 죽음을 당했는데, 제1막에서는 부왕의 망령이 나타나 복수해 달라고 말한다. 크로디아스는 왕을 살해한 후 형수, 즉 햄릿의 생모인 왕비를 아내로 맞으며 즉위했다.

햄릿은 부왕의 뜻에 따라 복수를 맹세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내성적인 품성과 이지적인 사고로 인해 행동이 뒤따르지 못해 고민한다. 게다가 스스로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친구 호레이쇼와 애인 오필리아에게도 감춘 채 미친 걸로 위장한다. 오필리아의 부친은 현재의 왕의 시종장이기에 햄릿의 고민은 훨씬 복잡해진다.

제2막과 제3막은 궁중에서 햄릿의 광기에 대한 진위 여부를 탐색하는 일과, 햄릿 쪽에서 부왕의 암살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병행하여 전개된다. 궁중극 상연을 계기로 숙부(크로디아스왕)의 짓임이 판명되고 햄릿이 복수의 칼을 휘두른 게 엉뚱하게도 시종장이 화를 당한다. 왕은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 거기서 죽이도록 계교를 꾸민다.

제3막 마지막 장에는 햄릿과 그의 생모인 왕비와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여기 이르러 주인공이 사색적인 인간형에서 껍질을 깨뜨리고 나와 행동인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치밀하게 표현한다.

"중전마마, 제발 부탁입니다. 그렇게 자기 양심에다가 자기 위안의 약칠을 해 가지고,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 당신의 죄과가 아니라 내 광증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만 헌데를 엷은 피막(皮膜)으로 덮어버리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하는 동안에 화농은 자꾸만 속으로 파먹어 들어가서, 모르는 사이에 전신에 퍼지고 맙니다."

제4막에서 햄릿의 영국행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귀국하게 됨으로써 해소되고, 다른 한편으로 오필리아는 햄릿으로부터 버림받음과 부친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미여서 냇물에 빠져 죽는다. 그녀의 죽음은 왕비의 입을 통해 그녀 오빠인 레아티즈에게 전하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바,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다(천사의 죽음 같은 모습은 유럽의 화가들이 즐겨 화폭에 담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왕비 :시냇물 위에 비스듬히 솟아난 버드나무가 있는데, 그 애가 미나리아재비와 쐐기풀과 실국화 그리고 또 무식한 목동들은 좀더 상스러운 이름으로 부르지만 얌전한 아가씨들은 사인지(死人旨)라고 부르는 자란(紫蘭)꽃으로 만든 괴상한 화관을 쓰고, 버드나무 밑에까지 와서 구부정한 나뭇가지에 화환을 걸려고 올라가는 참에 잔가지가 시기를 했던지 꺽이고 말았단다. 그래서 사람과 꽃이 한꺼번에 흐느껴 우는 시냇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게지……

제5막에서 햄릿을 죽이려고 왕은 레아티즈와 검술시합을 벌이게 한다. 친구 호레이쇼도 만류하고 그 자신도 미심쩍어하지만 결국 응한다. 왕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레아티즈의 검에는 독약을 묻혔고, 휴식중에 햄릿에게 권한 축배에는 독을 타 놓았다.

시합중에 햄릿은 독검에 상처를 입게 되고, 잠시 쉬는 와중에 바뀌어진 칼에 의해 상대방이 피를 흘리게 된다. 동시에 축배로 준비해둔 술잔을 왕비가 마셔 즉사했으므로 모든 사실을 간파한 햄릿이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왕을 찌른다. 네 사람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는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대미는 숨져가는 햄릿이 친구 호레이쇼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왕위 계승자로 마침 폴란드에서 개선하느 포틴브래스를 지명한 후 절명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런 줄거리를 담은 이 시극은 오늘날까지 문학 연구가들의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햄릿이 무엇 때문에 복수를 빨리 결행하지 않았떤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논전이 벌어져 왔으며, 왕자 햄릿의 성격상의 비밀로 여지껏 미해결인 채 남겨져 있다.

그가 행동을 늦추었던 것은 그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며,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지적하는 소리도 없지 않으나, 우리가 영화나 연극으로도 자주 볼 수 있어 아는 바처럼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즉 내성적인 사색형이나 이성에 제어당하는 창백한 교양인의 전형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적극적인 행동형의 인간으로 만들어 극 안에서 활동하게 하는 새로운 햄릿 해석의 경향을 접하게 되니까.

때문에, 돈키호테처럼 행동이 앞서는 저돌적 성격에 대비시켜 햄릿을 현실적인 조건 앞에 선천성이 모기력해지는 우유부단한 인간상으로 이해하려는 상투적인 눈은 수정되어도 좋으리라.

햄릿은 처음부터 고뇌하는 인간이었다. 제1막 서두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을 대해 보면 그의 초상이 뚜렷해진다. 그것은 이세상의 질서와 인간상의 실상에 대한 회의감으로부터 출발하여 형성된 후천적 성격이기도 하다.

"……애정을 먹으면 먹을수록 애욕이 자꾸만 자라는 양, 어머니는 줄곧 아버지의 무릎에 매달리곤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한 달도 못돼서──아아, 생각을 말자──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다! 한 달도 못돼서 나이오비 여신처럼 눈물을 억수같이 뿌리며 가여운 아버지 상여를 따라가던 신발이 닳기도 전에, 어인 일이냐."

그 밖에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같은 독백에 비추어 보면 <햄릿>의 비극은 외부에서 가한 물리적인 정황보다도 햄릿의 정신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갈등의 소산이다. 근대문학 개막 초기에 셰익스피어와 같은 거장이 나타나 문학의 재미와 가치를 인간의 내적인 데서 찾으려 했던 노력은 보다 풍요로운 문학을 약속하는 일이었다.

<햄릿>은 영원한 명작의 꽃이다. 읽기에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연구 검토되는 심오한 인간 탐구서이므로……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 ; 1564~1616)

영국의 시인ㆍ극작가.

'모든 시인 가운데 가장 크고 포용력이 있는 영혼의 소유자'란 평판을 들으며, 영국인들이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며 자랑하는 대문호이다.

극단의 배우로 극계에 투신한 이래 20년간의 창작활동 중에 극 36편, 시집 3권을 남겼따. 특히 4대 비극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은 컴컴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의 인생 응시가 집약되어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생전에 이미 동시대인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나, 작품의 질과 양 두 가지 면에 있어 경이적인 창조자로 모아진다.

극작품은 비극ㆍ희극 및 사극으로 3분되는바, 앞의 4대 비극 외에 널리 읽히는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줄리어스시저> <헨리4세>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등이 있다. 단테, 괴테와 더불어 세계 3대 문호로 손꼽히는 데에 이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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