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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4. 7. 4. 22:56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미(美)에 순사한 예술가의 일대기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정열은 바로 미를 창조하고자 하는 정열이었단 말씀이죠. 그것이 그에게 한시도 평안을 주지 않고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닌 거죠. 그는 영원히 신성한 향수에 홀려서 쫓겨다닐 순례자였죠. 그의 마음을 차지한 사탄은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어요. 세상에는 진리를 찾는 욕구가 너무나 강해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결국은 그들의 세계 그 자체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되는 그런 인간이 있죠.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미가 진리를 대신했을 뿐이오."

이 말은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원시적 아름다움의 절대성을 찾아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 섬으로 온 뒤에, 그의 임종과 외부와 단절된 화살의 그림들을 목격했던 쿠트라 의사의 회고담이다.

남이 전혀 호감을 가져줄 수 없는 인간성, 파행과 비정의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외롭게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스트릭랜드에 대해 아마도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판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 장편은 금세기에 대중적 갈채를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서머싯 몸의 대표적 명작이란 점도 있지만 화가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삼았다 해서 더욱 세속적 호기심을 자아내며 널리 애독되는 소설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청소년계층의 독자가 많아 70년대 후반의 독서통계에 의하면, 수년간 가장 많이 읽힌 소설로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 이어 <달과 6펜스>가 2위를 고수했다 한다.

독자의 호기심을 감안하여 먼저 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폴고갱의 생애를 더듬어보는 일도 무위하진 않을 것 같다. 고갱은 프랑스 후기인상파의 화가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 증권거래소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누리기도 했으나, 20대 후반에 이르러 미술에 경도되기 시작하여 피사로, 세잔 등 당대의 유명한 화가를 알게 됨으로써 직장을 그만두고 예술의 길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때문에 생활은 어려워지고 설상가상으로 처자식과도 이별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후 자기의 예술세계를 확립해 나가는 한편 고흐와 더불어 남프랑스 아를르에서 같이 지내다가, 고흐가 귀를자른 사건을 계기로 하여 델리킷한 둘의 사이는 파국을 맞았다.

생활난은 가중되는데다가 문명세계에 대한 협오감을 떨칠 길이 없어, 중년에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옮겨 가 거기서 고갱 특유의 화풍을 승화시킨 많은 걸작을 남겼다.

여기에 비해<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런던에 거주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역시 중권거래소에 나가면서 다정스럽고 우아한 아내와 귀여운 자식을 가진 가장으로 등장한다. 아내는 퍽 사교적이어서 특히 문인과 사귀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기는 편이나, 남편은 이런 사교와는 담을 쌓고 철저히 무미건조하게 생업에만 몰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이 건실한 가장이 편지 한 통을 남겨 놓고, 파리로 출분한 사태가 야기된다. 그의 아내의 청으로 파리로 달려가서 스트릭랜드를 만난 화자 '나'의 관찰에 의하면, 그는 소년시절부터 즐겼던 미술을 되찾기 위해 그간 남몰래 미술연구소에서 수업을 받았다는 것이며, 이젠 가정과는 절연한 채 오로지 예술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시에 판이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극도의 가난, 또 자학적으로 그 가난과 불편에 함몰하는 것이 그렇고, 타인과의 고제, 남의 이목 그리고 기존 예술에의 거부가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성격이 괴팍스러워 자기의 가정은 물론이려니와 남의 가정의 행복도 전혀 유념하지 않는 냉혈한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그림과 천재적 자질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친구이며 또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친구 더크 스트루브에 대한 배신은 이 무렵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더크는 네덜란드 빈농 출신으로 대중에 영합하는 속된 그림을 그려 파리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화가이다. 그는 외모도 볼품이 없으려니와 어릿광대 같은 위인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모의 여인 블랜치를 아내로 얻게되어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더크는 스트릭랜드가 온갖 조롱과 핍박과 물질적 피해를 다 끼쳐도 그의 재능을 아껴 이 모두를 감내한다. 예술에의 숭배는 현세적 행복의 결정체인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아낌을 능가한다.

즉 스트릭랜드가 돌봐주는 사람이 없이 더럽고 음습한 다락방에서 중병을 앓고 있을 때, 아내의 극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간병한다. 간병을 맡은 사람은 자연 그의 아내일 수밖에 없는데 이 사이에 둘은 불의의 관계가 맺어진다. 블랜치가 그토록이나 혐오했던 스트릭랜드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러나 전생애와 전인격을 예술에 바쳐서 세상살이에는 상처입은 야생마가 되어버린 남자, 일체의 규범이나 도덕률에서 해방한 원시적 본능의 사내, 비록 남루하고 쇠약해졌으나 헌걸찬 체구, 타는 듯한 눈빛에 그녀의 영혼이 눈 녹듯 녹아버렸을 전말을 상상하기엔 어렵지 않다.

심약한 더크는 그들 둘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집을 뛰쳐나가고, 또 스트릭랜드도 블랜치의 나체를 모델로 누드화를 완성한 후 블랜치 곁을 떠난다. 그는 예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거나 얽매일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이 충격으로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내레이터인 '나'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스트릭랜드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노와 경멸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에게 쏠리는 주의력을 거두지는 못한다.

'나'는 스트릭랜드가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상면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다만 그가 곧 타히티섬으로 옮겨가 거기서 수많은 걸작을 남기고 죽은 후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유럽전역에 불 일 듯이 일어난 뒤, 우연한 기회에 타히티 섬에 방문할 길이 있어 거기서 생전의 모습을 그곳 주민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즉, 대예술가의 예술적 완성과 비극적인 생의 종말이 콘트라스를 이루는 부분이다.

'나'는 타히티 섬에 와서 처음으로 캡틴 니컬즈라는 부두 부랑자를 만나 스트릭랜드가 마르세유에서 타히티 섬으로 오게 된 말을 듣는다.

그리고 티아레라는 플레르 호텔 여주인으로부턴 그가 이곳에서도 극빈과 파행적 생활을 해나간 모습과 그 자신의 중매로 아타라는 어린 원주민 처녀와 짝을 지어주며 마을로부터 격리된 한 농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경위를 접한 다음, 마지막으로 그의 치료를 맡았던 쿠트라 의사에게서 병인과 예술 창작의 밀실을 전해 듣는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에 와서 비로소 그의 예술적 본령인 원시적 건강성, 일체의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사물을 발견했던가보다. 격식도 윤리도 요구되지 않고, 허위에 치장된 대인관계를 등진 채 오직 자기가 추구해온 미의 조형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주민 처녀인 아타는 그에게 가장 바람직한 배우자여서, 그녀를 소재로 해서 원시림과 열대식물 그리고 상상에서 우러난 대상을 가미시켜 강렬하고 순수한 자기의 예술을 완성시켰다.

그는 말년에 이곳의 한 풍토병이라 할 나병에 걸린 채 칩거생활을 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화실 사방 벽에 최대의 걸작인 벽화를 완성시켜 놓았는데, 아마도 실명(失明)의 비참한 운명 속에서도 화필을 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타가 유언에 따라 그의 사후에 이 오두막집을 불태웠기 때문에 그 작품은 남겨지지 않았지만, 그 외 다른 작품들은 세계 도처에서 수집가들에 의해 고가로 경매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생의 종말도 고갱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고갱이 이 섬에서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고 종내엔 병마에 시달리며 고생한 거나, 원주민을 옹호하여 지배자인 백인과 충돌했던 사정을 주목해볼 일이다. 또 1901년 히바오아 섬으로 옮겨간 후, 매독에 걸린데다 잘 먹지 못하여 참담하게 죽어간 종말도 예외일 수 없다.

<달과 6펜스>는 인물 설정과 그 인물이 지향해 나간 생의 역정으로 볼 땐 탐미주의 계열로 볼 수도 있겠다. 김동인의 <광화사>를 필두로 해서 이러한 유사한 작품이 나오는 데 영향을 끼쳤을 법하다.

스트릭랜드라는 특이한 인간형을 창조했다든지 예술에 이바지한 주인공의 형극의 삶과 고독, 투쟁의 기록은 높이 살 많다. 예술가의 삶의 한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돋보인다.

그러나 일종의 스토리텔러라 이를 수 있는 서머싯 몸 작품의울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작자인 하디 자신도 이러한 여인에 대해 동정적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것은 '밭에나온 사나

이는 밭에서일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만 밭에서 일하는 여자는 밭의 일부를 이루고 있

다.'는 묘사에서 여인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어 볼 수 있고, 특히 테스라는 작중인물에 대해

서는 이 책의 첫머리에' ……애처롭게도 상처받은 이름이여, 나의 가슴은 침상(沈床)으로서

너를 깃들게 하리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헌사로 놓은 의도에서 그의 내면의 뜻을 알게 된

다.

우리는 세계명작을 섭렵하면서 여러 인생의 단면들을 경험한다. 우리가 사는 생애가 오히

려 거짓과 위선투성이인 데 반해 작품 속에서 진실한 생활을 발견하게도 된다. 때로는 커

다란 슬픔에 짓눌리기도 하고, 더러는 신선한 떨림을 느끼면서 이 세계와 삶의 넓이에 대해

개안(開眼)해 간다. 그리고 그러한 충격은 어김없이 우리의 정신 영역에 마르지 않는 자양분

이 되어준다.

■하디 (Hardy, Thomas; 1840~1928)

영국의 소설가·시인

도세트셔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에 런던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

다. 그러다가 작가로 입신해서 1885년 막스 게이트에 집을 장만하고부터는 평생 이곳을 떠

나지 않고 향리에서 취재한 소설을 발표하며 종생했다.

<테스>(원제는 <더버빌 가의 테스>), <주드>를 발표하여 속물근성을 지닌 도덕군자들로부

터 세찬 비난을 받으며 물의를 일으키자 소설에는 펜을 놓고 시작으로만 일관했다. 그의 시

는 늙음을 모르는 신풍을 보이면서 시인으로서도 확고한 지위를 획득했다. 1910년에 O.M.

훈고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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