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야 (엘리 위젤) △
인간의 야만성를 증언하는 영혼의 소리
세계의 내로라하는 의정자들이 받고자 원했던 1986년도 노벨평화상이 뜻밖에도 한 유대계 미국작가인 엘리위젤에게 돌아갔다. '엘리 위젤 폭력, 탄압 및 인종차별주의로 얼룩진 세계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류의 사도이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평화. 속죄. 그리고 인사의 존엄성' 이라는 게수여의 변이었다.
그의 많지 않은 저서 가운데 <흑야, The Night> 는 처녀작이자. 작가가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바의 목적. 당위성. 그 연원을 담고 있는 자전적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치 독일에 의해 유대인 게토에 수용되고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는 사이 가족을 모두 잃고 그 혼자만이 아수라도의 지옥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은 체험이 있었던 까닭이다.
엘리 위젤(작중의 엘리 에제르)은 모든 유대인들이 다만 한 미치광이 정권의 인종편견 정책으로 인해 개◎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고. 갖은 모욕과 수치. 강제노동을 겪은 끝에 총살형에 처해지든지 가스실로 가서 집단 살해되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또 보았다. 심지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어린애가 화장터로 밀려가는 거라든지. 소년이 총살당하는 것도 목격했다.
실제로 그의 여섯 가족 중 어머니와 누이들은 가스실의 희생물이 되었다."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연기들. 고요하고 푸른 하늘 아래 뭉클 솟아오르는 연기로 변해버린 어린 아기들의 그 작은 얼굴들을, 나의 신앙을 영원히 소멸시켜버린 그 불길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래서 작가이자 기자. 철학자. 인종차별폐지 운동가이기도한 그는 스스로를 '목격자' 로 자처한다.
나치스의 야만성과 유대인 박해에 관한 작품은 수없이 많았었다. 그중에도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만인의 심금을 울렸고, 근래엔 제랄드 그린의 소설 <홀러코스트>가 TV극으로 방영되어 인휴의 양심을 울린바도 있다. 하지만 엘리 위젤의 <흑야>는 몸소 그 극한상황의 바닥까지를 체험한 증언의 기록으로서, 또 높은 문학성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유를 달리한다.
만행과 번제의 객관적 서술만으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티없이 맑은 소년의 눈으로 사태를 엮어 나가는 기조. 어리석을 정도로 순박하고 나약한 유대인들, 만신창이 속에서 이어지는 부자의 정이 진실이라는 렌즈를 통해 엮어지는데에 이 책이 르포물을 넘어서서 문학작품이게 하는 힘이 된다.
열다섯 살 난 엘리 에제르는 헝가리의 작은 마을 시게트에서 자란 유대인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가게를 경영하며, 가족은 어머니와 두 누나. 그리고 어린 여동생 치포라 등 여섯 명이었다.
나치 독일이 강점한 유럽 각국에서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않은 이곳 유대인들은 설마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외국 국적을 가진 탓에 먼저 추방길에 올랐던 회당복사 모세가 탈촐하여 돌아와 '죽는데 3일이나 걸린 소녀 말카, 자식들 앞에서 죽여 달라고 간청했던 양복쟁이 토비아스의 비참한 말로'를 전하여 주었음에도 유대인들은 선조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결과론적인 견해이지만 이들이 왜 이토록 시대의 흐름에 둔감했고, 자기방어에 무심했던가 하고 원망치 않을 수 없다.
독일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하던, 1944년. 시게트 유대인들은 게토에 수용되는 것을 시발로 참혹한 진구렁텅이에 구겨박질러진다. 곧이어 강제수용소로 호송이 개시 되어 엘리 에제르 일가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접수센터인 비르켄아우로 끌려간다. 이 순간부터 이름도, 인간성도 말살되고 수인 번호와 짐승같이 취급되는 생활이 연속된다.
첫 수용소에서 "남자는 좌로! 여자는 우로!" 라는 명력 한마디로 에리 에제르 가족은 생이별이 되고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는 운명에 처해진다. 수용소는 한마디로 도살장이었다. 그 만행을 어찌 옮길 수 있으랴. 유대인들은 자기가 묻힐 구덩이를 판 후 얼굴을 가지런히 내 놓은 채 총알을 받는다. 어린애는 공중으로 던져져 사격의 연습 대상이 된다. "이 벙어리 같은 잡놈들아, 아무것도 몰라? 너희들은 화장되는거야. 지글지글 튀겨 버리지. 재가 되는거야." 라는 저주를 받으면서도 이들은 묵묵히 감내한다.
왜 저항의 못짓하나도 못하고 발악이라도 해보지 못하는 민족일까. 바보스런 선성탓일까? 주눅이 들린 끝에 넋이 빠졌기 때문일까? 내 나름대로의 짐작으로는 구약시대의 오랜 핍박, 기원 후에도 나라를 잃고 떠돌이 민족으로 전전한 역사로 인해 극도의 피해 의식과 순응이 몸에 밴 탓으로 여겨진다.
예측하지 못했던 때에 재소자들은 두 줄로 나누어지는데. 어느 쪽이 감옥을 가고 어느 편이 화장장으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줄을 요행스럽게 택했던 가락에 이들 부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무리에 속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종전을 눈앞에 두고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기력이 진해 숨진다.
이곳까지 호송하는 화차의 한 칸에는 백 명이 승차했는데 하차 할땐 겨유 10여명 뿐이었던 사지에서 시체가 되는 걸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야>는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있는가를 궤뚫어 보인다. 또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고 힐문한다.
신앙이 깊고 좋은 인성을 가진 엘리에제르가 아우슈비츠와 부나 수용소를 전전하며 바라본 것은 인간이 인간 되기를 포기했을 때의 모습 그것이다. 독일인 간수 이데크가 수용소 막사에서 여자와 성희를 즐기기 위해 재소자들을 일 없는 작업장으로 내모는가 하면 엘리 에제르가 무심코 그 장면을 목도했다 해서 심하게 매질하는 대목, 십장인 프라네크는 엘리 에제르가 금니 빼주지 않는다 해서 아버지를 심하게 학대하는 따위는 수용소 안의 살풍경으로 접어둘 수가 있다.
하지만 피골이 상접한 유대인들의 호송열차 안으로 빵 한덩이를 집어던져 아귀다툼을 벌이게 하고 그걸 즐겨 구경하는 독일인 노동자의 악의는 천사도 저주해 마땅한 일이다. 또 어린 소년이 총살대에 세워진 장면은 신의 존재를 상념케 한다. 슬픈 천사의 눈을 가진 소년은 쇠사슬에 묶인 채 납빛처럼 창백했고 입술을 깨문 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때 엘리 에제르의 내부에서 "하느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과 "그분은 여기 있어. 여기 저 교수대에 매달려있어." 라는 자문자답을 얻는다.
나치 친위대는 한 소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귀한 속성인 사랑을 죽였고, 인류의 구원자인 하느님을 죽인 것이다. 동시에 소년에게는 외경의 대상인 하느님에 대한 우너망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그리스도를 인식한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흑야>는 이런 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흥분이나 편견없이 순화된 음성으로 그 모든 사연을 전해준다. 영혼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는 이 작가의 성실성에 말미암은 것이다. 고발이나, 폭로에만 그치지 않고 이 혼탁한 와중에서 인간의 진실을 보석처럼 끄집어낸다. 해방이 된 후 허기를 면한 젊은이들의 복수의 염은 까마득히 제쳐두고 여자와의 동침을 구하는 마지막 행간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슬픔에 집약한다.
★엘리 위젤 (Elie Wiesel : 1928~~)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가족이 모두 나치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그만이 살아남아 프랑스 국적을 얻고 이스라엘에 거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작품활동일 시작했다. 작품 <예루살렘의 거지>로 메디치상을 받은 후, <새벽> <벽 너머 마을> <침묵의 유대인>등 다수를 발표.
작가, 기자, 교수로서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구도자적 노력이 평가를 받아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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