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은 세력 확장을 위하여 유럽을 침공하였다.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제국을 크게 이겼다. 이 전투의 대승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비오 5세 교황은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다. 훗날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루카 10,25-37
오늘 복음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사랑이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애써서 고기를 잡아 보려고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루카 5,1-11 참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 그 안에 새겨진 온갖 슬픔과 고독, 분노, 죄악,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그를 사랑하려고 애써도 그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나 깊은 데로 가시어 그물을 치시는 것입니다. 눈먼 이의 깊은 곳인 두 눈을 어루만져 주시고, 귀먹은 이에게는 그의 귀에다 손가락을 집어넣으십니다. 나병 환자를 위해서는 그의 피부를 매만지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모두의 깊은 곳, 곧 십자가상의 죽음에까지 들어가셨습니다.
오늘 사마리아인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쳤습니다. 그는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깊은 곳을 보았습니다. 곧 강도를 만난 사람이 느꼈을 당황과 두려움, 절망, 분노, 가족에 대한 걱정, 강도에 대한 원망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여러 가지 그물을 칩니다. 그 반면, 사제와 레위인은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