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3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4세기 중반 터키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수도자들과 함께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던 그는 또한 은수자를 본받아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자선과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가 사제품을 받고 주로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악습에 젖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심지어 황제나 황후에게도 잘못된 점을 거침없이 지적하였다. 그 때문에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유배 생활을 하다가 407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탁월한 설교로 ‘금구’(金口: 황금의 입)라고도 불리는 그는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루카6,39-42
인도에서 전해진 교훈적인 내용 하나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그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를 게으르다 하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면 수다쟁이라 하고, 내가 다른 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고 한다.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다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그 순간에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가 친절하면 나에게서 무엇을 얻고자 그렇다 하고, 내가 친절하면 그것은 유쾌하고 좋은 내 성격의 한 부분이라 한다.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다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다른 사람을 보는 눈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잘 드러내는 내용인 듯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다른 이에게는 엄격하려는 것이 인간 대부분의 심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바로 이러한 모습을 호되게 지적하십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다른 이에게 충고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충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그보다 먼저 두세 차례 자기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자기 성찰 없이는 참된 충고나 가르침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되풀이하는 “제 탓이오.”라는 고백이 일상생활에서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