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물

희망의 편지 7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0. 5. 10. 16:51

 

당신을 위한 희망의 편지

 

 

강길웅 신부(광주대교구 소록도 본당 주임)의 이야기가
봉헌의 은총을 감동적으로 깨닫게 해 줍니다.

한센병 환우들의 정착 마을이 전국에 약 60개 정도 남아 있는데
종교적으로 분류하면 세 가지 형태이다.
개신교 단독 마을, 천주교 단독 마을, 그리고 천주교, 개신교 혼합 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 혼합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1960년대,
그때에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환우들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다행히 천주교에서는구호물자가 나와서 밀가루다, 강냉이다 햇 배급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간간이 쌀값이다, 연탄 값이다 해서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거지 신세나
다름없었다.
생계가 어려운 환우들은 읍내에 내려가 각설이 타령으로 돈 좀 얻어 끼니를 때우고
살림을 꾸렸는데 조금 여유가 있는 자들은 양돈이나 양계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움막일망정 내 집이 있다는 것을 대견스러워 했으며,
나중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격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웬일로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너나없이 살림이 어려워 대부분
주저앉았는데, 개신교 신자들만큼은 이상하게 힘을 얻어 쑥쑥 일어서서 자립을 하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이상한 일이었다.
자립을 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는 천주교 신자 쪽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도움이 전혀 없었던 개신교 신자 쪽이 먼저 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개신교 신자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들이 동냥해 온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느님의 몫으로 바쳤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십일조 신앙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환자들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니 교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온 탓에 이를테면 '받는 신앙'은 크게 있어도
'바치는 신앙'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없는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바치는 개신교 신자들은 더 부지런하고 더 검소해질 뿐만
아니라, 더 기도하고 더 찬송하게 되었는가 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바치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밤낮 없이 술만 마시고 싸움을 할 뿐
아니라 밤새도록 돈내기 화투를 치는 등, 무절제한 생활이 그들을 병들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아무리 가난해됴 하느님의 몫을 하느님께 바쳐야 복을 받는 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의 몫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생전 누가 그런 말씀을 들려주는 이가 없어
십일조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광주라는 도시에서 시골인 함평 성당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함평군(咸平郡) 자체가 빈군(貧郡)이라 본당도 가난했고 열 개나 되는 공소도 모두
형편없이 가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음도 없고 표정도 없는 신자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신부가 웃겨도 신자들이 웃지를 않으니 그런 어색함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이 분들이 1년 내내 교무금을 내지 않고 빈손으로 성당에 나오다가
연말에 가서야 비로소 1년 치라면서 누구는 5천 원, 누구는 1만 원 식으로
교무금을  내는 데 바로 그때, '이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신자를 대상으로 대림절 피정을 시키면서
봉헌과 십일조에 대해 크게 강조했으며,
그리고 교무금은 매월 초에 바치라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교무금이 평균 400%가 인상이 되는데,
이듬해 1월 초가 되자 본당은 물론 10개 공소에도 교무금이 넘치도록(?)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놀랬지만 신자들도 놀라면서 신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웃기지 않아도 웃을 줄 알게 되었으며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마태 6, 21)고 신자들이 봉헌한 것만큼 서로 열심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교무금과 주일 헌금은 '돈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은혜의 얘기요 축복의 선물이며 그리고 감사의 표헌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며 '십일조 신앙'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를 하느님 사랑에 가까이 붙들어 매게된다. 
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다르다. 
십일조로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하자(월간 <참 소중한 당신>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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