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룩, 중요 연설문/아름다운 시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0. 4. 25. 13:07

 

은총을 내려 주시는 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 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 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대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 주시는 구나.

(성찬경, 「황홀한 초록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