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일 연중 22주간 월요일
많은 교우가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한때는 성당에서 활동 많이 했습니다.” “제가 꾸르실료에 참가할 적만 해도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 조배도 자주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묵주 기도를 한 주에 300단도 넘게 바쳤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만 같아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자렛 사람들도 두 가지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수의 아들로 살아온 것을 지켜본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지만, 이내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얽매여 그분께서 구세주이시라는 사실을 의심합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옛 계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일어난 기적의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나자렛 사람들은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맺어진 옛 계약만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도, 하느님 백성이라는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 신자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특권이 아닙니다. 지난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