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복음 묵상

자리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3. 9. 20. 20:20

2013년 9월 1일 연중 제22주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에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가 단순히 공간적인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앉고 싶지 않은 자리라면 거기가 바로 끝자리입니다. 이를테면 주일인데도 성당에 가기 싫다면 성당 좌석이 곧 끝자리입니다. 제삿날이지만 시댁에 가기 싫다면 시댁이 곧 끝자리입니다. 교회 활동으로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데, 갈 때마다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그 집이 끝자리입니다.
보좌 신부 때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가 잦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게 모이는데, 보통 친한 이들끼리 가까이 앉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다소 소외되는 이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립니다. 결국 한쪽에는 인기가 좋은 이들이, 다른 쪽에는 소외되는 이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면 보좌 신부인 저는 어디에 앉아야 했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좀 더 매력 있는 청년들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게서 “우리 신부님은 청년들을 편애하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기 싫은 자리, 하기 싫은 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끝자리’에 앉는 것이고, 겸손을 향한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앉고 싶은 자리만 앉으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면 겸손을 배우지 못합니다. 겸손을 배우려면 ‘끝자리’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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