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복음 묵상

당당한 패자와 부끄러운 승자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3. 9. 20. 20:04

2013년 8월 29일 목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이러한 요한 성인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요한 세례자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시작되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명백한 대조를 봅니다. 바로 요한 세례자와 헤로데 임금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으며 준비한 선구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들꿀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로데는 그 반대입니다. 그는 교활하고 야심 많은 통치자로, 동생의 아내를 차지한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인 헤로데 대왕이 바로 그의 아버지이며, 자신 또한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두 인물이 오늘 복음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하여 두 사람의 대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이 정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불의를 대변하는 자이며, 요한이 하느님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거짓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자입니다. 요한이 수난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폭력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결국 요한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을 두고 ‘당당한 패자’와 ‘부끄러운 승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은 바로 ‘당당한 패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당당한 패자의 삶을 사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당한 패자’에게 ‘참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당한 패자’입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승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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