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방선교 이야기/해외선교(중국)

[스크랩] 북방 선교 후기(7월 21일)- 3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2. 2. 25. 15:15

(7 21일 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연길 성당에서 새벽 6시 미사를 드린 후 개산툰 공소를 향해 가는데, 이곳은 조선족 자치주라서 모든 간판이 위에는 한글(북한식), 아래는 중국한자로 되어 있어 읽으면서 지나가니 재미있었다. 그 중 00뀀이라는 글자가 이해가 안돼서 박사님께 여쭤보니 꼬챙이에 죽 꿰어서 구워 먹는 요리라고 하셨다.,

여러 가지 한글이 북한식이라서 선뜻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박사님 말씀이 전엔 간판에 한글과 중국한자가 똑 같은 크기로 쓰였는데 요즘엔 자꾸 한글이 작아진다고 걱정하셨다.

부화통화(여진족 말로 염소)라는 다리를 건너는데 안내하는 홍화씨 말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에 있지만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쓰고 우리말 방송을 하는 260만의 조선족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예전에 자치주 주장 주 적해 라는 분의 노력으로 연변대학, 연변 농업대학, 초등학교 등을 아주 실력 있는 학교로 소문나게 만들었으며, 중국에서도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알아준다고 하였고, 농업대학에서 개발한 사과배나무는 기네스북에도 오른 만큼 아주 맛있는 과일인데 가을에 오면 맛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농사는 주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고 조선족만이 쌀을 조금 재배하고,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서 사 먹은 1 3원짜리 찐 옥수수는 정말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쫀득쫀득하니 맛이 있었다.

개산툰 공소에 도착하니 김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살짝 처녀(홀로 되신 할머니)들과 신자 분들께서 반가이 맞아 주셨고 할머니들께서는 박사님을 붙잡고 반가움에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 옛날 17년 전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들어 오셔서 공소를 개척하시고 얼마나 불편하셨을 텐데도 어찌 밥을 손수 해 드시며 불평 한마디 없이 감사하게 살아가셨을 지를 생각할수록 항상 옆에서 뵈었던 박사님이지만 새삼 너무 훌륭하시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라는 게 맘속 깊이 느껴졌다.

같이 기도를 드리고 묵주와 선물을 드리고 다음엔 도문 성당으로 갔는데 이곳은 한창 수리 중이었다.

이 성당은 독일의 베네딕토회에서 11년 전 지어주었는데 소리가 울려 미사를 드릴 수가 없어서 그 동안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아버지 때부터 회장으로 봉사하시는 전 베네딕토 회장님이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돈을 마련해 조금 더 하면 공사가 마무리되어 미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도문은 북경으로부터 오는 열차의 종착역이고 여기서 신의주로 통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라 한다.

점심은 베네딕토 회장님의 조카딸이 운영하시는 아리랑식당에서 먹었는데 음식이 정갈하고 아주 맛이 있었다. 이를 어쩌나~여기저기 다니면서 너무 잘 먹고, 성령 충만해 기쁘고 즐겁게 다니니 얼굴이 아주 보름달이 되어간다.

모든 스케쥴을 잡아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시는 양대언 토마스아퀴나스교수님, 김 박사님, 전 베네디토 회장님, 세 분이 모두 70을 넘기신 동갑내기들 이시라는데 주님의 은총으로 건강하고 왕성하게 교회 봉사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운 분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460개 언어를 만다린(만주의 귀족언어)을 표준어로 통일한 모택동, 글씨는 간자체 라는 한자로 통일했고, 중국은 공산당 안에서 주석이 혼자 결정하지 않고 아주 합리적으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친 후에 모든 일을 결정하며,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글자도 만들고, 외래어가 들어와도 그대로 쓰지 않고 꼭 중국식 한자로 만들어 쓰는 자긍심을 가진 민족이라 하였다.

예를 들면 먼지라는 뜻의 한자는 작을 밑에 흙 를 써서 작은 흙 즉 먼지로,

들판의 들은 수풀 밑에 흙 로 표현하고, 컴퓨터는 전기뇌(텐소), 카드(신용카드)는 위 자와 아래 자를 붙여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외래어도 발음도 비슷하고 뜻도 맞는 것을 골라 만드느라 여러 사람의 전문가들을 모아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친 끝에 결정한다고 하니 공산주의 속에 합리적인 민주주의가 조금 들어 있다고나 할까? 세계인이 코카콜라를 다 그대로 쓰는데 중국만이 가구가락?(입을 즐겁게 한다는 뜻이란다), 발음도 비슷하고 뜻도 통하고…..

그런 건 배울 점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으로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왕청현의 왕청 천주교회로 가서 아주 젊고 음성이 좋으신 이 강철 베드로 신부님과 미사를 드렸다.

여기는 120년 전엔 흑룡강성, 목단강성까지 관리하던 아주 큰 성당이었다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수리할 곳이 많은 신자 수가 적고 초라한 성당이었다.

조선족이신 이 베드로 신부님은 연길에서도 가장 어린 막내둥이 신부님인데 우리 김 박사님께서 장래가 있는 신부님으로 믿고 적극 밀어주고 계신 신부님이시다.

이 신부님은 3개월 동안 한국에 가서 한국교회를 방문하고 왔는데 희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일을 추진 중이시라고 하였다.

 

김 박사님께서는 16년 전 이곳 연변에 오셔서 연변 과학대도 공동 창립하셨고, 일제시대 때부터 이곳에 있었으나 공산주의 치하에서 없어진 21군데의 성당을 일일이 수소문해 찾으시고, 양 교수님도 함께 하자고 연변으로 부르셨단다.

그 중 하나인 북하마탕 성당 터로 이 신부님과 함께 갔는데 북하마탕 이란 북쪽의 큰 개구리란 뜻이란다. 1937년 독일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지어준 아주 튼튼한 성당인데 중국공산당이 신부님과 신자들을 쫓아내고 아무리 부수려 해도 어찌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부술 수가 없어서 처음엔 소 외양간으로 썼는데 소가 시름시름 야위고, 다음엔 기름 짜는 기계를 지하실에 차려놓고 기름공장으로 썼는데 콩에서 기름이 안 나고 그래서 지금은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는데, 그곳의 촌에서 소유하고 있단다. 처음에 이 본당을 중심으로 8개 공소가 있었고 이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성당이라 하였다. 공산 치하에서 45년이 흐르고 지금까지 70여 년을 방치해 놓은 성당인데 지금 이 베드로 신부님이 촌에다 다시 돌려 달라고 청원을 넣어 놓고 있어 긍정적인 답을 들었고, 조만간 교회로 돌려 줄 것 같다고 희망을 가지고 계셨다. 교회건물 뒤로 돌아가니 벽에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도 떼가려고 노력한 흔적으로 시가 바늘로 쓴 철심이 구부러져 있었으나 결국 떼지 못하고 약간의 손상만 입은 채 벽에 그려진 시각을 알리는 선도 희미하게나마 보존되어 있었고, 건물 창문을 벽돌로 다 메우어 놓았으나 본체는 부수지 못하였으니 수리를 해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묘하신 주님의 신비, 주님께서 다시 교회로 돌려 주시려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어쩌나…….박사님이 우리 일행을 데려 가시는 곳 모두에서 선교란 정말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 많은 돈이 들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맡으셔서 정말 잘도 이끌어 가시는구나 새삼 감동하였다.

가는 곳 마다 그냥 갈 수가 없고 선교는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원만해야 할 수가 있으니 그네들을 살게 해 주어야 하니까 더 어려운 일 같았다.

박사님 말씀이 소팔가자 김대건로 길 패인 것 수리에서부터 가는 곳마다 성당 수리, 공소 유지 등등 중국 한번 다녀 오시면 숙제를 잔뜩 안고 오신다 하셨다.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실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하고 빌어 드려야지……

 

 

 

 

출처 : 또 하나의 문
글쓴이 : evergree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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