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 184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5)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상>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5)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상> '성화상 공경' 논쟁 불식시키려 ▲ 시나이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에 소장돼 있는 6세기 작품 성 베드로 성화상.   배경  787년에 개최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이른바 '성화상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소집된 공의회였습니다. '성화상'..

[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14)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680~681년)(하)|

[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14)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680~681년)(하) 갈등의 마침표, 정통교리 수호 ▲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소집 당시 교황이었던 성 아가토(재위 678~681, 왼쪽) 교황과 공의회 결과를 추인한 성 레오 2세(재위 682~683) 교황. 배경  ◇성 마르티노 1세 교황과 고백자 성 막시모 ..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13)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상)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13)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상) 단의설 퍼지면서 끊임없는 갈등만이    ◇단의설의 득세와 교황 호노리오 1세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한 위격(인격) 안의 두 본성' 교리를 통해 단성설을 배격한 이후 단성설이 득세하던 이집트와 시리아 등지에서는 단성설파의 독자적 세..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2) 제2차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하)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2) 제2차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하) 이전 공의회 교리선언 재언명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열린 성 소피아 성당 내부.   대부분 동방 주교 참석, 14개 항 단죄 조항 채택 유스티니아 황제 주도, 비질리오 교황은 승인만 삼위일체 등 이전 공의회 선언들 다시 분명..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8)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상)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상) 갈등의 불씨 안고 있던 단성설, 점화 ■ 배경  ◇단성설의 득세와 '일치령'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확정한 '한 위격 안의 두 본성' 교리는 예수의 인간성을 강조한 나머지 하느님 예수와 인간 예수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주의와 그 반대..

[스크랩]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7) 에페소 공의회(하)(431년)"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7) 에페소 공의회(하)(431년)"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인정 ▨ 공의회 소집과 진행 과정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430년 11월 19일 제국내 모든 관구장 대주교들에게 회람을 보내 431년 성령 강림 대축일(6월 7일)에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고 통보했습니다. ..

"[교회사속 세계공의회]<6> 칼케돈 공의회(중)"

"[교회사속 세계공의회]<6> 칼케돈 공의회(중)" 교회 규율·행정 관리 위한 규정 만들어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마주 하고 있는 칼케돈은 동로마제국 속주 가운데 하나인 비티니아 주 주도(州都)였습니다. 순교 성녀 에우페미아를 기념한 에우페미아성당에서 451년 10..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5) 에페소 공의회(상) (431년)"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6) 에페소 공의회(상) (431년)" 하느님의 모친이냐 그리스도의 모친이냐 ▲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열렸던 에페소 성모마리아 대성당 유적. 평화신문 자료사진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이집트 북단 지중해 연안 도시 알렉산드리아. 일찍부터 북아프리카 지중해..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4) 제1차 콘스탄티노플로스 공의회(상)"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4) 제1차 콘스탄티노플로스 공의회(상)" 다시 분열된 교회, 일치를 위해 ▲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개최된 성 이레네 성당. 장방형 십자가 형태의 이레네 성당은 4세기 초까지 아프로디테의 신전이었다가 성당으로 개조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로 성자 예수 그..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 제1차 니케아 공의회(하)"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 제1차 니케아 공의회(하)" 부활대축일 날짜 통일, 교회 법규 정리 ▲ 콘스탄티누스대제 ▲ 제1차 니케아공의회가 열린 당시 로마 주교이자 교황이었던 성 실베스테르 1세  325년 니케아에 모인 주교들이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같지 않다고 주장한 아리우스파에 맞서서 채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