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복음 묵상

참된 정결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3. 9. 20. 19:59

2013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23,23)

오늘 복음은 ‘참된 정결’이란 무엇인지 묵상하게 합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실제로 바리사이들은 물이나 음료수에 죽은 벌레가 빠져 부정하게 될까 염려하였고, 물이나 음료수를 정결하게 보존하려고 작은 벌레가 빠져도 죽기 전에 건져 냈다고 합니다(레위 11,32-34 참조).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자신의 정결함을 위하여 작은 벌레조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정작 낙타는 잔에 남겨 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삼키고 있다고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결함의 여부는 작은 벌레 한 마리에 달려 있습니다. 더 중요한 가치인 의로움과 자비, 신의 등은 그저 무시합니다.
정결에 대해 이렇게 형식적이고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그들의 태도는 예수님께서 뒤이어 하신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된 정결은 무엇입니까? 유학 중에 만난 한 교수님은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11─16장)에 대한 한 학기의 강의를 마치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하느님과 만나는 데 장애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정결한 상태는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참된 정결’은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데에서 옵니다. 그리고 이는 내면적인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쉬운 사람들과는 달리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1사무 16,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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