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룩, 중요 연설문/어록

“마오는 산, 저우는 물, 덩은 길”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1. 9. 6. 11:58

[중앙일보] 입력 2011.08.31 01:34 / 수정 2011.08.31 11:45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 … 2년 연재 대장정 마친 이원복역사를 꼭꼭 씹어 알기 쉽게 해설하는 능력 때문에 지식크리에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 ‘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 근현대사에서도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년여에 걸친 연재를 마친 그는 “기회가 되면 해방 전후의 한반도 역사도 꼭 다뤄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성식 기자]

“‘먼 나라 이웃나라’ 중국편 연재 덕에 저도 진짜배기 중국을 알게 됐어요. 중국사를 들여다보니 비로소 한반도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보이더군요. 이웃나라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나 싶어 저도 반성을 많이 했어요.”

 본지에 2년여 연재된 ‘먼 나라 이웃나라’ 중국편이 31일자(35면)로 막을 내렸다. 1회 ‘용의 비상’에서 110회 ‘내일의 중국’까지 2년여의 대장정이다. 격동의 역사를 꼭꼭 씹어 쉽게 풀어준 이 사람 덕분에 중국은 ‘먼 나라’에서 ‘이웃나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이원복(65) 교수를 29일 서울 덕성여대에서 만났다. “더 이상 마감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이 49%, 아직 못 다한 얘기가 많다는 아쉬움이 51%”라고 했다.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빛과 허물 없는 웃음은 마감의 압박에 시달렸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 ‘먼 나라 이웃나라’ 중국편은 100회 예정이었다가 10회 늘어났다. 그는 “중국은 110회에 담기엔 턱없이 큰 나라”라며 연재 종료를 못내 아쉬워했다.

 -중국을 정말 새롭게 보게 됐다고 했는데요.

 “우리가 자유와 인권,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구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봤다는 걸 절감했죠. 중국은 150년간 외세 침략을 받았어도 정신적으로 흔들림 없던, 참 독특한 나라예요. 중화(中華)사상이라는 방화벽 덕분이었죠. 중국인은 서양 사람들이 인권과 자유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들을 비판하는 걸 이해 못해요. 중국은 인민공화국이죠. 인민은 ‘우리 모두’이고, 인민을 대표하는 게 공산당이죠. 인민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공산당에 의해 인권과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데요.

 “우린 다르죠.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시킨 게 서양이었으니까요.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철학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죠. 그러다 최근 소위 아시아적 가치가 부상하니 혼란이 왔어요. 우리 머릿속에선 지금 공자(동양)와 플라톤(서양)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웃음) 한마디로 ‘글로벌 믹스(global mix)’죠. 두 사고가 협력하면 한류(韓流) 같은 시너지, 파괴력이 생겨요. K팝(한국대중가요)은 ‘글로벌 믹스형’ 의식구조의 승리죠. 두 사고가 싸우게 되면 지금 우리 정치처럼 혼란이 오는 거고요.”

 -기억에 남는 중국인을 꼽는다면요.

 “아무래도 마오쩌둥·저우언라이·덩샤오핑 3인이겠죠(그는 중국편 100회에서 이중(李中) 지린(吉林)성 연변(延邊)과학기술대 부총장이 했던 “마오가 산이라면 저우는 물, 덩은 길”이라는 말을 인용했다). 이들을 보면 글로벌화된 의식구조가 국가지도자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어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 남자 3분의 1이 죽자 중국은 10만 명을 프랑스로 보내요. 재건을 돕는 차원이었죠. 저우와 덩은 그때 세계 흐름을 보고 돌아왔어요. 마오는 국가주석이 된 후 모스크바 국빈 방문한 게 첫 외유였거든요. 옹고집에 철옹성 같았죠. 융통성 없는 이데올로기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죠. 대약진운동으로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하잖아요. 덩은 78년 개혁선언으로 중국 현대사의 물꼬를 완전히 틀었죠. ‘BC(Before China)’와 ‘AC(After China)’를 가르는 인물이죠.”

 -중국사 탐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중국사를 알아가다 보니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가 보이더군요. 가령 중국이 미국에 대해 왜 그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답이 나와요. 중국이 공화국을 세운 이후 국민당과의 전쟁, 한국전쟁 이렇게 두 번 처절하게 졌는데, 이게 다 실은 미국과의 싸움이었거든요. 그래서 전 중국이 결코 한반도에 통일된 친미정권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봐요. 그래서 우리는 친중과 친미 사이에서 아주 교활하고 영리하게 외교를 해나가야 해요. 한 가지 예를 더 들까요. 덩이 개혁선언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밖으론 평화, 안으론 정치안정이다. 이게 깨질 때 중국에 재앙이 온다”고 했어요. 이게 의미심장하죠. 남에게 침범당하지도, 남을 침략하지도 않겠다는 의지예요. 중국이 세계 패권을 쥐더라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한편 분열은 그들에겐 곧 죽음이죠. 의화단사건·국공내전 등 모든 비극이 분열에서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한 국가 여러 체제’는 허용하지만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같은 자국중심적 사고인데, 중국의 중화사상과 달리 북한의 주체사상이 실패한 이유는요.

 “인물의 문제겠죠. 중국엔 덩샤오핑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잖아요. 산(마오)이 확고히 다져놓은 이념에서 물(저우)과 길(덩)이 나온 거죠. 북한은 김일성뿐이었죠. 사상과 이념만 강조했어요. 중국은 혁명가 한 사람의 독단적 정치가 아니에요. 차세대 지도자를 10년 전부터 미리 정하고 준비시켜 정책의 일관성을 취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중국의 발전은 이런 장기적 안목에 빚진 거죠.”

 -결국은 인물, 리더가 중요한가요.

 “인물이 정말 중요하죠. 우리도 국가적 스승이 나와서 ‘글로벌 믹스형’ 사고를 하도록 나라를 잘 이끌어야 돼요. 진보정권 10년 하면서 ‘탈(脫)권위주의’한다고 신성의 영역을 다 허물어버렸어요. 스승이 나올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죠. 어느 나라건 흠모하고 우러러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우린 다 바닥으로 끌어내렸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국부(國父) 없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