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서

조던 오먼의 영성신학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1. 5. 6. 15:28

조던 오먼의 영성신학

 

1장 영성신학의 본질과 영역

1.영성신학의 정의

영성신학은 사변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애덕의 완성과 관련되는 그리스도적 생활을 다루므로 매우 실천적이다.

영성신학은 신적인 계시진리와 개개인의 종교체험에서 시작하여, 초자연적 생활의 본질을 밝히고, 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지침을 규정하며, 영성생활의 시초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영혼들의 진보과정을 설명하는 신학의 한 과정이다.

2.영성신학의 자료

영성신학과 일반신학의 제일차적인 자료는 성경과 전통이다. 전례는 그리스도안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생하게 나타내는 것으로서 전례를 통하여 신앙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사는 생활의 체험도 누리게 된다.

영성생활의 신학에 필요한 또다른 중요한 자료는 영성사이다. 영성사는 영성신학의 실천적인 면에 필요한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료가 없을 경우 신학자는 오로지 사변신학의 원리 및 교도권의 가르침에서 연역되는 선험적 방법에만 의존하게 된다.

끝으로 영성신학은 개인적인 체험과 심리학의 여러 분야와 같은, 순수한 경험적 자료를 이용한다. 이러한 자료들이 영성지도의 기술과 영의 분별력을 개발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성 또는 정상심리학은 영혼의 본질, 여러가지 기능과 능력과 능력의 특성 및 역할 ,정서생활의 법칙,영혼과 육신의 상호관계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경험심리학은 정상 및 비정상의 현상이나 홋은 병리학적 상태를 체험하고 분석한 결과를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성 심리학을 보완한다. 비정상적인 상태에 관한 지식은 자연적인 것과 악마적인것 및 초자연적인 것을 구분하고 또 신비상태의 현상들을 평가하는데 필요불가결하다.

그러나 심리학적 자료를 사용함에 있어 두가지 극단은 피해야 한다. 첫째는, 모든 종교적 현상들의 의식적 상태로 격하시킴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이 개입할 가능성을 부인하는 심리학주의이고 둘째는 모든 종교체험을 동일시함으로써 크리스챤 영성과 비크리스챤의 종교체험간의 구분을 말살하는 혼합주의이다. 심리학이 영성생활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지만, 궁극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즉 신앙의 진리에서 출발하고 신빙성있는 종교체험을 초자연적인 실제로 인정하는 신학이 궁극적 판단을 내리는 기능을 할 수 있다.

 

2장 인간 노력의 목표

영성신학은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루고 따라서 매우 사변적이면서도 실천적인 학문인 만큼 탐구할 첫째 문제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목표나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영성생활은 안전한 곳에 묻어둔 보화가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성장하고 완숙될 때까지 물을 주고 돌봐야 할 씨앗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성생활의 본질과 그것이 지닌 잠재력이나 능력및 그것이 춘분히 성숙하기까지 거치는 단계 등을 더욱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노력의 목표가 무엇인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4장 초자연적 구조

인간은 육과 영, 물질과 정신이 밀접히 결합하여 하나의 인격을 형성하는 복합적인 존재이다. 초자연계는 인간의 참 생명을 구성하고 자연적 생명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인간 생명의 주체는 영혼이고 초자연 생명의 형상적 원리는 성화은총이며 기능은 주입덕행과 성신의 은사이고, 작용은 이러한 덕행과 은사의 행위이다. 영혼은 비록 그것이 육체 안에 있을때 자기의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육체의 능력을 이용하지만, 그 존재 및 작용상 물질과 독립된 영적 실체이다. 그러나 영혼은 완전히 독립된 실체가 아니며 따라서 영혼만이 고유의 의미의 인격이 될 수 없다. 인격은 육신만도 영혼만도 아니고 이 양자가 실제적으로 결합함에서 결과되는 복합물이다.

 

1.성화은총

은총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로 들어높이어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한다. 성화은총은 영혼 안에 부여된 초자연 특질로서 비록 유비적이고 우유적이긴 하나 하나님 본성과 생명에 물리적이고 형상적으로 참여함이다. 은총은 초자연 생활에서 인간을 들어높이어 인간을 구원하는 형상적 원리로서 분명히 초자연적이다. 그것은 모든 자연적인 것을 월등히 능가하고 우리로 하여금 신적 영역으로 들어거게 한다. 성 토마스는 개인에게 있어서 최소의 성화은총도 온 우주의 자연적인 선보다 더 위대하다 말했다.

이 은총의 효과는 1)하나님의 양자녀가 됨  2)하나님의 참 상속자가 됨  3)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가 됨  4)초자연 생명이 부여됨  5)의로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됨  6)초자연 공로를 세울 능력이 부여됨  7)하나님과 친밀히 결합됨  8)성삼의 살아있는 성전이 됨

 

2.주입덕행

주입덕행은 신앙으로 조명된 이성의 명령에 따라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영혼의 기능속에 주입하신 작용습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직용습성은 주체로 하여금 행동을 용이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각 습성은 그에 상응하는 행동과 관련된 에너지의 증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위 제2의 본성으로서 이로 인해 주체는 신속하게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신속하고 용이하고 동일본성적인 행위를 내는 만큼 행위에서 즐거움을 갖게 된다.  자연(본성) 또는 습득덕행은 반복행위에 의해 얻게 되나 초자연 또는 주입덕행의 유일한 원인은 하나님의 주입이다.

습득덕행과 주입덕행의 주요한 차이는 형상적 대상에 의거한다. 주입덕행은 습득덕행의 경우와는 달라 기능이 단순한 이성의 명령이 아니라 신앙으로 조명된 이성의 명령을 따르게 한다. 습득 윤리 덕행은 비록 영웅적이고 완전한 것이라도 결코 주입덕행의 형상적 대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3.성신의 은사

일반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은사란 그 누가 타인에게 너그러운 마음에서 자애롭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베품은 의무의 개념이 배제된다. 자애롭게란 은사를 기꺼이 베풀려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은사의 개념은 은사를 받는 편에서 감사를 배제하지 않는다. 더우기 은사의 개념은 은사를 받는 편에서 은사의 성질과 베푸는 이의 지향에 따라 은사를 받는이가 그것을 잘 사용하도록 요구된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부여하시는 은사도 바로 이런 것이다.

 

5장 크리스찬 생활의 완성

완전성의 여러가지 구분을 크리스찬 완덕에 적용해 볼 때 성화은총이 초자연 생활의 정수인 만큼 본질적 또는 실제적 완성은 성화은총에 있다. 애덕은 완덕의 제일차적 요소라 말할 수 있다. 크리스찬 완덕이 애덕의 완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나 애덕은 크리스찬 완덕의 주요소이고 가장 본질적,특징적 요소이다. 애덕의 척도는 초자연적 완성의 척도이고 따라서 하나님 및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에 도달한 이는 실제상 완전한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찬 완덕이 특별히 애덕에 있다고 하여 다른 덕행들의 역할이 순수히 우유적이라든가 또는 그것들이 그리스도교 완덕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다. 윤리덕과 게다가 신덕과 망덕은 그 자체로 고찰할 때 애덕과 독립하여 그들 고유한 탁월성을 지닌다.

크리스찬 완덕은 애덕이 그 자체의 자발적 행위를 더욱 강하게 수행하고 다른 덕의 행위를 더욱 강하고 실제적이며 보편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정도에 따라 증대한다. 이러한 명제는 크리스찬 완덕에 있어서 애덕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리가 된다.

크리스찬 생활의 완성은 애덕의 이중행위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 즉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둘째, 이웃과의 관계에서 본 애덕을 말한다.

크리스찬 완덕은 감정적 사랑과 실천적 사랑이 있다.완덕의 단계는 전통적으로 정화,조명,일치의 단계를 말하나 성 토마스는  초보,진보,완성의 단계란 용어를 사용한다. 인간의 육체적,심리적 성장 및 발전은 유년기,천소년기 및 성숙기로 구분된다. 이 단계들은 차츰차츰 완성되는 정력적 활동과 모습으로 특징지어진다. 사랑의 성장도 그 단계가 수적으로는 불확실 하나 인간 성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애덕이 현세에서 무한정하게 증가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리는 확실히 숭고하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심 같이 완전한 자가 되라 명하셨다.(5:48) 그러므로 확실히 현세에서도 완덕에 도달 할 수가 있다.

크리스찬 생활의 완덕은 애덕에 있다. 그러나 철학자가 말하듯 완전성은 어떤 결핍도 없이 온전한 것이므로 확실한 보편성을 포함하고 또 전제한다.

 

6. 그리스도교적 완덕과 신비체험

신비체험의 구성요소는 통상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또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신적 활동에 관한 수동적 체험을 낳고 신적 또는 초자연적 양식에 따라 작용하는 성신의 은사이다. 이는 신비적 체험에 동반될 수 있는 어떤 외형적 성격이나 심리학적 표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적으로 신비현상을 구성하는 본질적 특징에 관해 언급한다.

신비체험이 카리스마적 은총과 비슷한 비상한 은총은 아니지만 성신의 은사의 작용에서 나오는 정상적인 결과이다. 신비체험은 은총과 애덕의 완성에서 나오는 정상적 부수물이다. 신비적 체험과 신비적 상태는 구별되고 분리될 수 있다. 신비체험은 성신의 은사들이 신적 양식에 따라 작용할 때 생긴다. 결국 성신의 어떤 은사가 영혼안에 작용할 때마다 다소간 강한 신비행위가 있게 된다. 은사의 작용이 어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영혼은 다소간에 강한 신비적인 것을 수동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이것은 신비주의의 통상적 현상이다. 

 

7장 죄에서 돌이킴

1.대죄

'대죄'란 표현은 죽음에 이르는 죄를 분명 지칭하는만큼 아직도 적절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대죄는 영혼안에 있는 성화은총의 생명을 파괴하거나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소외시킨다.그러므로 대죄는 크리스찬 생활에 있어서 최악의 적이며 은총의 생명을 파괴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놓는 유일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죄인들은 네 분류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무지 때문에 죄를 범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져야할 책임은 매우 가볍다. 이런 영혼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교적 쉽게 하나님께 돌아선다.두번째 유형은 의지력이 약하거나 부족하고 육체적 쾌락에 강하게 이끌리며 지적으로 우둔하고 의욕이 없으며 혹은 비겁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점을 슬퍼하고 착한 사람들을 칭찬하며 그들처럼 되기를 원하나 실제적으로 그렇게 될 용기와 힘이 부족하다.이들은 무지 때문에 죄를 범하는 이들 보다 탓이 크다. 이것은 보다 많은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약하지 악하지는 않다. 셋째 유형은 양심의 가책은 커녕 양심의 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으면서 지속적인 죄의 생활속에서 무관심하게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죄의 생활을 포기하려 들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회개는 대단히 어렵다. 기적적인 은총이 요구된다. 넷째 유형은 가장 과실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완전한 악의와 악마적인 강퍅으로 죄를 범한다. 타락,변질과 배교, 마지막 종교의 윤리의 무질서 속에서 쉽게 악영향을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죽게 되어 고백성사를 받겠다며 사제를 청한다 해도 일시적인 정신착란으로 헛소리르 하는 것일 테니까 데려오지 마시오"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을 고의적으로 닫아 버린다.

 

2.소죄

대죄와는 다르게 소죄는 단순한 탈선행위일 뿐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완전한 혐오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병같은 것이긴 하나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 대죄를 범하는 죄인은 목표를 향해 등을 돌리고 반대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나그네와 같다. 그러나 소죄를 범하는 사람은 목표를 향한 여행을 단념하지 않고 단지 곧바른 길에서 잠시 벗어날 뿐이다.

 

3.불완전

불완전은 영성생활에 이롭지 못한 것으로 성덕을 향한 영혼의 도약을 방해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의지적인 불완전에서 기인하는 어떤 습성이 극복되지 않는한 이것은 하나님과의 합일은 고사하고 완덕에 나아가는 것마저 막는다 한다.

 

4.여러가지 유혹

1)마귀: 유혹자로서의 마귀는 인간의 타락을 가져온 하와의 유혹에서 가장 잘 설명을 해 준다. 간단한 질문이 곧 위험에 대한 미끼가 된다. 이를 거절 생각을 다른데로 돌리지 못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중대한 위험에 떨어지게 된다. 마귀는 그럴듯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죄를 범한후 영혼은 어마어마한 속임수를 깨닫게 된다.

2)세속: 세상과 그 안에 있는것은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봉사하지 못할만큼 세상 사물에 대해 애착할 때에만 이 세상이 크리스찬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세상은 거의 저항 할 수 없을 정도로 유혹의 원천이 되고 또 영성생활에 있어서 가공할 만한 원수가 되는 것이다.

3)육신:세상과 마귀는 우리의 외적인 원수이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내적 원수가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육신은 쉬지 않고 우리를 거슬러 싸우고 있다. 육신은 두가지 뚜렷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고통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을 이용하는 방법과 쾌락에 대한 탐욕스런 욕망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성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후자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4)쾌락을 탐하는 욕망: 고통에 대한 공포심이 쾌락에 대한 욕망의 논리적 결과요, 부정적인 면이라면 쾌락을 탐하는 욕망은 관능성의 특징적 경향이다. 쾌락에 대한 경향은 사욕편정으로 감각의 관리, 극기, 크리스찬 품위의식, 죄의 결과로 받게될 벌의 의식, 그리스도 수난의 기억, 겸손하고 끈기 있는 기도로 극복할 수 있다.

5)고통에 대한 공포: 쾌락에 대한 욕망이 영원한 구원에 큰 장애가 되는 것처럼 고통에 관한 공포는 성화에 큰 장애가 된다. 크리스찬의 고통에 영혼에 주는 큰 이익으 생각하면 그 탁월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쾌락이 이교도의 마음을 끄는 것보다 슬픔,고통이 크리스찬의 마음을 더 끌어냐 한다.  고통은 완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일치 시킨다. 성덕은 다른데 있지 않고 바로 그리스도를 닮는데 있다. 자신의 십자가를 무시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지 않는 성덕의 길이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믾은 영혼들이 성덕을 쌓으려 하면서도 고통의 길에 들어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달라고 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택한 십자가이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기만 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완덕의 길을 포기한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의무를 받아들임, 십자가 감수,자발적인 극기,쾌락보다 고통을 택함,자신을 제물로 바침의 길이 있다

 

9장 영성생활의 성장

크리스찬 영성은 그리스도의 신비, 실로 그리스도 자신이신 생명에 참여함이다. 성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를 통해 그것을 받아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의 도구이다.  표지나 행위는 지나가 버리지만 실제적 효과, 즉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은총은 남아있게 된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 성화력을 가지고 있다.

1.세례성사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첫번째 성사인 세례성사는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듯이 은총의 샹활로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안에서 죽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2.견진성사

견진성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또 성신을 받는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할 성신을 보내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다.

3.성체성사

4.고백성사

5.병자성사

6.혼인성사

 

10장 신학적 덕행

1.이해의 은사

이해의 은사는 성화은총을 지닌 영혼에게 주입되는 초자연 습성으로 이것에 의해 인간의 지성은 성신의 조명활동 아래 계시진리를 직관하고 또 초자연적 목적에 관련되는한, 자연진리까지도 쉽게 깨닫게 된다.

1)이해의 은사는 성서의 숨은 의미를 드러낸다.

2)이해의 은사는 상징 및 표상의 신비적 의미를 밝혀준다.

3)이해의 은사는 감각적인 형상으로 영적 실체를 드러낸다.

4)이해의 은사는 원인에 포함된 결과를 관상할 수 있게 한다.

5)이해의 은사는 결과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있게 한다.

 

2.지식의 은사

지식의 은사는 인간의 지성이 성신의 작용 아래 영생 및 크리스찬 완덕에 관련되는 피조물에 관해 합당하게 판단하는 초자연적 습성이다.

1)이 은사는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에 관해 올바로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킨다.                     

2)이 은사는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해 확신을 갖게 한다.

3)이 은사는 영혼이 처한 상태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볼 수 있게 한다.

4)이 은사는 영생에 관련된 우리 이웃에 대한 최선의 처신방법을 우리에게 감도한다.

5)이 은사는 우리를 세속 사물에서 이탈케 한다.

6)이 은사는 피조물을 거룩하게 사용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7)이 은사는 지난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3.희망(소망)

희망은 하나님께서 의지에 주입시키는 신학덕이다. 이 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한 도움을 빌어 영생에 도달함과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을 확실히 믿게된다. 희망의 일차적 대상은 영원한 행복이고, 그 이차적인 대상은 영원한 행복에로 이끄는 모든 방법이다.

 

4.경외의 은사

경외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습성인데 이로인해 의로운 영혼이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을 경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예속시키는 특별한 순종심을 얻게된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무한한 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분은 사랑의 대상이시다. 그러나 그분이 죄를 벌하실 수 있는한 두려움의 대상이 될수 있고 또 되어야한다.

이 은사의 중요한 은사를 열거하면

1)영혼 안에 겸손과 공경으로 충만한 깊은 흠숭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함을 느끼는 생생한 감정

2)죄를 몹시 두려워하고 이미 범한 죄를 진정으로 슬퍼함

3)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기회를 피하려고 극히 조심함

4)모든 피조물에서의 완전한 초탈

 

5.애덕

애덕은 하나님께서 의지에 주입하시는 초자연적 습성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자신 때문에 그분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또 하나님 때문에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 애덕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고 이차적으로 우리 자신과 타인들이다. 애덕의 대상은 그 자체로 최고의 선이요 인간의 궁극 목적인 하나님이시다.

 

12  기도의 단계

1.구송기도

구송기도는 글이나 말이나 관계없이 말마디로 표현된 기도형식을 뜻한다. 이런 유의 기도는 공적 기도나 전례기도에서 사용되는 형식이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성 토마스는 구송기도가 어울리는 이유를 세가지로 들었다. 1)내적인 신심을 불러일으킨다. 2)마음과 정신과 함께 몸으로 하나님께 존경을 드린다. 3)영혼을 기도의 분위기로 몰아넣는 영적 정감을 표현한다.

2.묵상

묵상은 초자연적 진리가 지닌 의미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사랑하며 은총의 도움으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것에로 마음을 돌려 추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추리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활동이 그치면 묵상도 끝나게 된다. 묵상의 특징은 추리적 형태의 묵상이고 따라서 추리작용이 없으면 묵상이 아니다. 이는 정감적 기도나 명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묵상은 많이 생각하는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데 있다.

3.정감의 기도

정감의 기도란 의지 작용이 지성의 추리작용보다 우세한 형태의 기도라 정의 할 수 있다. 정감의 기도와 묵상간의 특수한 차이는 없다. 정감의 기도란 사랑이 우세한 단순화된 묵상이다. 이때문에 정감의 기도로 이행하는것은 대개 점진적이고 다소 용이하다. 그러나 정감기도를 행함에 피해야할 것은 억지로 애정과 의지작용을 불러일으키려 애쓰지 말것과 쉽게 정감에 사로잡히는 이들은 감각적 위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4.단순성의 기도

이 기도는 그것이 지닌 단순성 때문에 기도하는 특수한 방법이 없다. 있다면 그냥 응시하고 사랑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기도에 있어 몇가지 유의 사항은 먼저 급작스레 기도에 들어가려 하지 말것이며 묵상과 정감 기도를 할 수 있는 동안은 그냥 그것을 계속해야 한다. 단순성의 기도는 수덕기도의 최고 단계이다.

5.관상기도

관상이란 즐거움이 뒤따르는 지식을 의미한다. 또 지식의 대상은 보통으로 찬탄을 불러일으키고 영혼을 사로잡는 그런 형태의 것이다. 관상이 개인의 정감능력을 움직여 준다는 뜻으로 본다면 그것은 경험적 지식이다. 그러므로 관상은 기도자가 큰 즐거움을 얻는 행위에서 인식능력 및 정감능력의 혼합을 체험하게 되는 작용이다.

6.정적의 기도

정적의 기도는 신비기도의 한 형태인데 이 기도를 통해 의지는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친밀한 인식으로 사로잡히게 되고 영혼과 육신은 형언할 수 없는 감미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보통 정적기도에 따라오는 동반현상은 관능의 휴지상태와 사랑에 도취됨이다. 때로는 함성이나 기쁘게 날뜀이나 영적 찬송을 부르는 등의 신체적 운동까지 따르게 된다.

7.일치의 기도

일치의 기도는 신비적 기도의 한 단계로서 여기서도 모든 내적 기능이 점차적으로 하나님으로써 사로잡히고 점유된다. 정적기도에서는 의지만이 사로잡히고 기능의 휴지에서는 지성역시 사로잡힌다. 그런데 일치의 기도에서는 기억,상상을 포함한 모든 내적 기능이 사로잡힌다. 오직 외적,신체적 감각만이 자유로우나 그들 역시 다음 단계의 기도에서는 사로잡히게 된다.

동반현상으로는 1)신비적 접촉 2)영혼의 이탈 3)불같은 사랑의 화살 4)사랑의 상처등이다.

 

 13장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

1.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현존의 실습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특히 외로운 영혼 깊숙이 그리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가운데 현존하심을 가능한 자주 회상함에 있다. 성경과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 실습이 지니는 중요한 성화적 효과를 강조함에 있어 견해를 같이한다.

2. 양심성찰

양심성찰은 자신이 행한 선이나 악을 찾아내기 위하여 특히 하나님과 개인성화에 관한 자신의 기본태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각자의 양심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고백 이전 각자의 죄를 단순히 살피고 나열하는 그러한 양심성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덕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행하는 성찰에 관해 말한다.

3.완덕에 대한 열망

우리의 영적생활에 작용하는 모든 심리적 요소들 중 완덕에 도달하려는 간절한 욕망은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완덕에 대한 갈망은 은총의 영향을 받아 누가 성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영적 성장을 열망하는 행위이다.

4.하나님의 뜻에 순응함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따름은 가장 효과적인 성화방법이다.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이점에 관하여 기도샹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위해 가능한 한 열심히 일하고 결심하고 처신해야 하는데 그것은 영성의 도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완덕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5,생활계획

생활계획이란 하루동안 수행해야할 일이나 심신수련의 시간표를 말한다. 어떤 계획이나 스케줄은 더 큰 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이에게 항구성과 균형을 부여하는 장점이 있다.

6.영적독서

영적독서를 주의 깊게 또 부지런히 하는 것은 기도의 실천과 영성 교리 지식 습득에 효과를 가져온다. 양서는 덕에 나아가려는 욕망을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영성생활에 귀중한 지식을 제공한다.

 

14  영의 분별

영의 분별은 영성지도와 신비현상연구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다.

1.영의 형태

영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하나님의 영 2)악령 3)인간적인 영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으로 하여금 선으로 나가도록 직접 또는 2차적인 원인을 통해 활동하신다. 마귀는 자기의 능력으로나 현세 사물에 대한 유혹을 통해 사람을 악으로 유도한다. 인간적인 영은 개인이 바른 이성을 따르느냐 이기적 욕망을 따르느냐에 따라 선이나 악으로 이끌린다.

1) 하나님의 영:일반적인 하나님의 영이 지닌 징표들은 다음과 같다. 진리,신중성,계몽,순종성,분별력,겸손,평화,신념,의지의 신축성,순수한 지향,고통의 참음,극기,순박성,영의 자유,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욕망, 이기심 없는 사랑.

2)악령: 대부분 유혹이 마귀의 직접적인 관여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다해도 악령은 대개 어떤 이를 유혹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미친다. 악령의 영향은 아래 경우들 중 그 하나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허락,악마의 시기와 교만,악마의 영향을 받은 이의 자연적 소인

악령의 징조는 다음과 같다. 거짓 영,병적 호기심,혼란 불안 및 깊은 우울,항구적 무분별과 불안한 정신,교만과 허영의 영,거짓겸손,절망,불순종과 굳은 마음,완고함,걷잡을수 없는 욕정,위선,감각적 위로에 지나친 집착.

3)인간적인 영(본성): 인간적인 영은 언제나 그 자신의 만족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쾌락을 탐하고 고통은 그 어떤 것이든 싫어한다. 자신의 기질, 개인의 취미와 변덕 또는 자애의 만족에 부합한 것이면 무엇이든 쉽게 이끌린다. 인간적인 영은 굴욕,보속,포기,희생,극기를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