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신앙교리성
주님이신 예수님
DOMINUS IESUS
2000. 8. 6.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관한 선언
김웅태 신부 번역
차 례
서 론
I. 완전하고 결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II. 구원 사업 안에서 강생하신 말씀과 성령
III.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의 유일성과 보편성
IV. 교회의 유일성과 단일성
V. 교회: 하느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왕국
VI. 교회와 구원과 연관된 타종교들
결 론
서 론
1.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루가 24,46-48; 요한 17,18.20. 21; 사도 1,8 참조).
교회의 보편적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나왔으며,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비와 인류 전체의 구원 사건인 성자의 강생의 신비에 대한 선포를 통하여 세기를 거치면서 실현된다. 그리스도 신앙 고백의 근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한 분이신 하느님을
◎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1)
2. 교회는 세기를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충실히 선포하고 증언해 왔다. 그러나 이천년기가 끝나가는데도 이 사명의 완성은 아직 멀었다.2)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의 외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현실성을 띠고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이 점이 무엇보다도 세계의 종교 전통들과 관련하여, 교회의 복음 전파 사명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에 교도권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3)
이러한 전통 종교들이 인류에게 제시하고 증언하는 가치들을 개방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고려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4) 이와 같은 방향 안에서 여정을 계속하면서, 교회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은, 오늘날 종교간 대화의 실천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화는 분명히, ‘만민 선교(missio ad gentes)’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며, 이 만민 선교는 구원받은 모든 이가 비록 똑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같은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되는 일치의 신비를 향하여 나아간다.”5) 교회의 복음 전파 사명의 일부인 종교간 대화는6) 진리에 대한 순종과 자유에 대한 존경 안에서 상호 인식과 상호 풍요성에 바탕을 둔 관계와 이해의 태도를 요구한다.7)
3. 그리스도교 신앙과 타종교 전통들 사이의 대화의 실천과 그 이론적 바탕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난다. 새로운 탐색의 길을 모색하고, 제안을 하며, 주의 깊게 분별하여야 하는 행동 방식들을 제시함으로써 그것들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에 직면하여, 이 선언문은 현존하는 문화의 도전들에 응답하기에 적합하며, 신앙의 내용과 일치하는 해결점들을 발견해 나가도록 신학적 성찰을 도와 줄 수 있는 가톨릭 교리의 어떤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을 주교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모든 신자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 선언문은 그 목적하는 바대로 하나의 석명문(釋明文)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갖는 신비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자유롭게 논의되는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점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중에 개방적으로 깊이 논의하여야 할 문제로 남아 있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그리고 몇몇 틀린 견해들이나 애매한 견해들을 거부하면서 이 분야에 관한 가톨릭 신앙 교리를 재천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선언문은 교회의 신앙 유산에 속하는 진리들을 거듭 선언하고자 교도권의 선행 문헌들이 가르친 교리를 다시 취하고 있다.
4. 교회의 변함 없는 선교 사명인 복음 선포는 오늘날, 실제적으로(de facto)뿐 아니라 원칙적으로(de iure)도 종교 다원주의의 정당화를 모색하는 상대주의 이론들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이론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진리들로 간주해 버린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갖는 결정적이며 완전한 성격, 타종교 신념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 영감을 통하여 이루어진 성서책들의 성격, 나자렛 예수님과 영원한 말씀의 인격적 일치, 강생하신 말씀의 섭리와 성령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 교회의 보편적인 구원 중개성,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왕국과 교회의 (구분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불가분성, 가톨릭 교회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의 실재성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철학적, 신학적 성격을 띤 어떤 전제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몇 가지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비록 그리스도교 계시라 하더라도, 파악이 불가능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신념,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에따라 진리 자체에 대하여 갖는 상대주의적 태도들, 서양의 논리적 사고 방식과 동양의 상징적 사고 방식을 근본적인 대립 관계로 설정하는 일, 이성을 이해의 유일한 원천으로 여김으로써, “눈길을 높이 올려 존재의 근원을 명상하는 데로 나아갈 능력을 상실하는”8) 주관주의, 역사 안에 존재하는 결정적이며 종말론적인 사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겪는 어려움, 역사 안에 하느님께서 단순히 출현하신 것으로 축소시켜 버린, 영원한 말씀의 역사적 강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차원의 결여, 신학적 연구에서, 그리스도교 진리와 맺는 양립성, 체계적 연관성, 일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다양한 맥락에서 무비판적으로 이념을 취하는 사람들의 절충주의, 마지막으로, 성전(聖傳)과 교도권을 도외시하고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경향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설로서,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계시를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가 지니는 절대적 진리와 구원의 보편성의 성격을 상실하게 하거나 또는 적어도 의심과 불확실성의 그늘을 드리우게 하는 몇몇 신학적 제안들이 전개되고 있다.
I. 완전하고 결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5. 전에 없이 더욱 유포되어 가는 이러한 상대주의적 사고 방식을 치유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결정적이며 완전하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여야 한다. 실제로, 신적 진리의 완전한 계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분께서 아버지를 계시하시려고 택하신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 11,27).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께서 하느님을 알려 주셨습니다”(요한 1,18).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여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골로 2,9-10).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구원에 관한 심오한 진리가 중개자이시며 동시에 모든 계시의 충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밝혀진다.”9) 더 나아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시며, ‘인간들에게 파견되신 인간’이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며’(요한 3,34 참조),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임무를 완수하신 분이시다(요한 5,36; 17,4 참조). 그래서 그분을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한 14,9 참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 현존과 출현으로, 말씀과 업적, 표징과 기적으로, 특별히 당신의 죽음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심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계시를 완성하시고 하느님의 증거로 확고하게 하셨으니…… 따라서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1디모 6,14; 디도 2,13 참조),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10)
또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도 진리의 충만인 복음을 선포하는 과제가 교회에 주어졌음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시의 결정적 말씀을 통하여 충만하게 당신을 보여 주셨고 당신이 누구이신지 인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확실히 결정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이 계시 때문에 교회는 본성적으로 선교적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신 충만한 진리이다.”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만이 “인간의 마음을 중단 없이 노력하도록 분발시키는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우리의 역사 안에 끌어들인다.”12)
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제한적이고 불충만하며 불완전한 성격을 갖기에 다른 종교들 안에 나타난 계시에 대하여 보완성을 갖는다는 이론은 교회의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본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어떤 역사적인 종교를 통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통해서도,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전적으로 충만하게 나타나지도 않으며 파악될 수도 없다고 하는 신념에 있다.
이러한 입장은 하느님의 구원 신비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다고 하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앞의 주장들을 근본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들, 행적들, 그리고 그분의 역사적 전 사건은 인간적 실재들로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13) 강생하신 말씀의 신적 위격을 그 주체로서 갖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것들은 그 자체 안에 하느님의 구원 방식들에 대한 계시의 결정성과 완전성을 갖는 것이며, 비록 하느님의 신비의 심오함이 그 자체 안에 초월적이며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러하다.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인간의 언어로 말하여진다 하여 없어지거나 축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유일하고 충만하며 완전하다. 왜냐하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의 강생하신 아드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우리가, 혈육을 취하신 말씀께서 강생에서 영광에 이르는 그분의 전체적 신비 안에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모든 구원적 계시의 완성이실 뿐만 아니라,14) 아버지의 구원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임무를 수행하셨지만 진정한 원천이 되신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이 “온전한 진리”(요한 16,13)를 가르치실 것이며, 또한 그들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 가르치신다는 것을 고백하도록 요구한다.
7.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적절한 응답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순종’(로마 16,26; 1,5; 2고린 10,5-6 참조)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15) 신앙은 은총의 선물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로써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 회개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여시며,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16)
신앙의 순종은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계시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한다.17)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그러한 사실과 불가분적으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하여서도 자유롭게 동의하는 것이다.”18) 그러므로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으로서,19) 이중의 충실성을 포함한다. 곧, 계시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진리에 대한 충실로서, 이것은 말씀하시는 그분께 대한 신뢰심에서 우러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 이외에 다른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20)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교 신앙(theological faith)과 타종교의 신념(belief)에 대한 구별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신앙은 “우리가 그 신비를 올바로 꿰뚫어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21) 계시된 진리의 은총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임에 반하여, 타종교의 신념은 인간이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하느님과 절대자와 맺는 관계에서 취하고 행동의 바탕으로 삼아 온 지혜와 종교적 열망이라는 인간적 보화를 이루는 경험과 사고의 요약인 것이다.22)
이러한 구별이 오늘날 신학적 숙고에서 언제나 고려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때때로 타종교의 신념과 동일시되고 있지만, 이 신념은 여전히 단지 절대적 진리를 찾고 있는 종교 경험인 것이며,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동의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에 있다. 이 점이 바로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들 사이의 구별점들이 때때로 사라지는 순간에 이르게 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8. 또한 타종교들의 경전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확실히 이러한 기록들 가운데에는, 수세기에 걸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과 하느님이 맺는 관계를 풍부하게 하고 유지하도록 하여 왔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 실제적으로 그러한 기능의 도구들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타종교들의 관습, 계율, 그리고 가르침들을 고려하면서, “그것이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고 하였다.23)
교회 전통은, 그럼에도 신구약 성서 정경들은 성령께 영감을 받은 것이므로 ‘영감을 받은 책’이라는 칭호를 그 책들에만 유보하고 있다.24) 이러한 전통에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사도의 신앙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을 그 각 부분과 함께 전체를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것이고(요한 20,31; 2디모 3,16; 2베드 1,19-21; 3,15-16 참조), 하느님께서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25) 이 책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서에 기록되기를 바라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 없이 가르치고 있다.”26)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께 부르시고, 당신의 계시와 사랑을 충만히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라시며, “비록 결함과 부족과 오류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들 종교가 증언하는 영적 풍요를 통하여 각 개인과 민족에게 당신의 현존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내신다.”27) 그러므로, 타종교들의 경전들은 그 신봉자들의 실존을 지도하고 양육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는 선과 은총의 요소들을 그리스도의 신비로부터 받는 것이다.
II. 구원 사업 안에서 강생하신 말씀과 성령
9. 현대의 신학적 사고에서는, 나자렛 예수님께서 그분의 신성을 배타적인 방법이 아니라 다른 계시적 인물이나 구원적 인물들과 보완 관계를 이루는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특별하고 한정적이며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여기는 접근법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신비는 인류에게 여러 가지 방식과 많은 역사적 인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께서 인류와 통교하시고자 구원적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 안에 나타났던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보편성을 정당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다원주의의 사실을 정당화하고자,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경륜 이외에도, 교회 밖에서도 유효하며 교회와는 무관한 영원한 말씀의 구원 경륜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이 영원한 말씀의 구원 경륜은, 비록 하느님의 현존이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경륜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강생하신 말씀보다 더 큰 보편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10. 이러한 이론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깊은 갈등 속에 있다. 신앙 교리는,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말씀이시라고 선포한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말씀께서는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요한 1,2), “사람이 되신”(요한 1,14) 분과 같은 분이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16)이신 예수님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여 있다”(골로 2,9).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이시다”(요한 1,18).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골로 1,14.19-20).
성서에 충실한 바탕을 두고, 그릇되고 환원주의적인 해석들을 반박하면서,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묘사하였다.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28)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칼케돈 공의회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신성에서나 인성에서나 완전하시고 한 분이시고 같은 아드님이시며, 같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나이다. 신성으로는 아버지와 일체이시고, 인성으로는 우리와 일체이시며, 신성으로는 시간 이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었으며, 인성으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나이다.”29)
이러한 이유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새 아담이시며……‘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골로 1,15)이신 그분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시며, 아담의 후손들에게 최초의 범죄 때부터 이지러졌던,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다.…… 무죄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유로이 흘리신 당신 피로 우리에게 생명을 얻어 주셨고, 또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셨으며, 악마와 죄의 종살이에서 우리를 구해내시어, 우리가 누구나 바오로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다?(갈라 2,20).’”30)
이에 대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식으로라도 분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됩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시고 하나이며 갈라질 수 없는 인격이시니.……나자렛 예수님이 아닌 그리스도는 있을 수 없고, 이분은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하느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주신 모든 종류의 선물, 특히 정신적 보화를 발견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31)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의 구원 행위와 사람이 되신 말씀의 구원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 강생과 더불어, 하느님 말씀의 모든 구원 행위는 언제나, 그분께서 모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취하신 인간 본성과 일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성과 신성, 이 두 본성 안에서 작용하는 한 분이신 주체는 말씀의 단일한 위격이시다.32)
그러므로 구원 활동의 특성이 신성 안에서만 작용하는 말씀의 활동에서 비롯하며, 강생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더 멀리 떨어진 상태로’ 그리고 ‘초월하여’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가톨릭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33)
11. 마찬가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경륜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 교리를 굳게 믿어야 한다. 이 구원 경륜의 원천과 중심에는, 창조와 구속을 위한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이시며(골로 1,15-20 참조), 모든 것을 총괄하시고(에페 1,10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지혜와 정의 그리고 거룩함과 해방이 되시게”(1고린 1,30 참조) 하신 말씀의 강생의 신비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실제로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선택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에페 1,4).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에페 1,11).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29-30).
하느님의 계시에 충실한 교회의 교도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개자이시며 보편적 구원자이심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이 생겨났고 그 말씀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우주를 새롭게 재창조하시려는 것이었다.……성부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고 들어 높이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히시고 산 이와 죽은 이의 심판관으로 세우셨다.”34) 이러한 구원의 중개성은 또한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희생의 유일성을 나타낸다(히브 6,20; 9,11; 10,12-14 참조).
12. 어떤 사람들은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말씀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 성격을 갖는 성령의 구원 경륜에 관한 가설을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또한, 그와는 반대로 말씀의 구원 강생을 삼위일체의 사건으로 여기는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 신약성서에서,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신비는 메시아 시대(사도 2,32-36; 요한 7,39; 20,22; 1고린 15,45 참조)뿐 아니라 역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 시기에도(1고린 10,4; 1베드 1,10-12 참조) 성령께서 인류에게 발출하신 원리와, 성령께서 현존하시는 자리를 이루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신앙 의식에 이러한 근본 진리를 상기시켰다. 전체 인류를 위한 성부의 구원 계획을 제시하면서, 공의회는 한처음부터 계셨던 그리스도의 신비를 성령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35)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를 건설하시는 모든 작업이 그분의 성령과 함께 친교 안에서 실현되는 행위로 묘사된다.36)
더 나아가, 그분의 성령과 함께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은 교회의 눈에 보이는 경계선들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펼쳐진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를 성령 안에서 살아 있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과 결합시키시며 그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파스카 신비에 대하여 말하면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은총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모든 선의의 사람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37)
그러므로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신비와 성령의 구원 신비의 연결점은 명확하다. 성령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살았던 사람들과 그분께서 역사 안에 오신 뒤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단 한 가지 목표로 하느님께 부름 받은 모든 민족의 삶 안에 사람이 되어 계시는 성자의 구원 효력을 현실화하신다. 성부의 영은 성자께서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으며, 모든 이를 고무시켜 주신다(요한 3,34 참조).
이리하여, 최근에 교회의 교도권은 단일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진리를 확고하고 명확하게 상기시켰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와 문화와 종교에도 도달합니다.……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들 마음 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십니다.’……또 같은 성령께서는 여러 가지 풍속과 문화에 내재하는 ‘말씀의 씨앗’을 뿌려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게 하십니다.”38) 우주 전체와 인류 역사 전체 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적이며 구원적인 역할을 인식하면서,39) 교도권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강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작용하시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 택일을 하여야 할 존재가 아니시고 또 그리스도와 말씀 사이에 있으리라고 상상되는 어떤 허공을 메우는 존재도 아니십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문화 안에, 종교 안에 이룩하신 모든 것은 다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만민을 구원하시고 만물을 완성하시고자’ 성령의 힘으로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관련되는 것입니다.”40)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 아들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령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으며, 인류 전체와 우주 전체에 그 구원 가치를 펼치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 경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령의 작용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41)
1.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Symbolum Constantinopolitanum): 「신앙, 도덕에 관한 선언, 규정, 신경 편람」(DS) 150.
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1항: 「사도좌 관보」(AAS) 83(1991), 249-340면 참조.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사도좌 관보」 68(1976), 5-76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 사명」 참조.
4.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5. 종교간대화평의회와 인류복음화성, 훈령 「대화와 선포」(Dialogue and Proclamation), 29항: 「사도좌 관보」 84(1992), 424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 참조.
6. 「교회의 선교 사명」, 55항: 「사도좌 관보」 83(1991), 302-304면 참조.
7. 「대화와 선포」, 9항: 「사도좌 관보」 84(1992), 417면 이하 참조.
8.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5항.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Dei Verbum), 2항.
10. 계시 헌장, 4항.
11. 「교회의 선교 사명」, 5항.
12. 「신앙과 이성」, 14항.
13. 칼케돈 공의회, ‘칼케돈 신경’(Symbolum Chalcedonense): 「신앙 규정 편람」 301;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 「육화론」(De Incarnatione), 54,3: 「그리스도교 원전」(SC) 199,458 참조.
14. 계시 헌장, 4항 참조.
15. 계시 헌장, 5항.
16. 계시 헌장, 5항.
17.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44항 참조.
1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0항.
19.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3항.
20.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8항.
21. 「신앙과 이성」, 13항.
22. 「신앙과 이성」, 31-32항 참조.
23.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선교 교령, 9항 참조: 여기에서는 ‘민족들의 고유한 관습들과 문화들 안에’ 현존하는 선의 요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16항 참조: 여기에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준비로 간주할 수 있는, 비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선과 진리의 요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24. 트리엔트 공의회, 「거룩한 책들과 물려받은 전통들에 대한 교령」(Decretum de libris sacris et de traditionibus recipiendis): 「신앙 규정 편람」 1501;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하느님의 아들」(Dei Filius), 제2장: 「신앙 규정 편람」 3006 참조.
25. 계시 헌장, 11항.
26. 위와 같음.
27. 「교회의 선교 사명」, 55.56항; 「현대의 복음 선교」, 53항 참조.
28.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니케아 신경’(Symbolum Nicaenum): 「신앙 규정 편람」 125.
29. ‘칼케돈 신경’: 「신앙 규정 편람」 301.
30. 사목 헌장, 22항.
31. 「교회의 선교 사명」, 6항.
32. 성 대 레오, Tomus ad Flavianum: 「신앙 규정 편람」 294 참조.
33. 성 대 레오, 「레오 1세 황제에게 보낸 편지」(Promisisse me memini): 「신앙 규정 편람」 318: “……in tantam unitatem ab ipso conceptu Virginis deitate et humanitate conserta, ut nec sine homine divina, nec sine Deo agerentur humana.”; 「신앙 규정 편람」 317 참조.
34. 사목 헌장, 45항;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원죄론」(De Peccato Originali), 3항: 「신앙 규정 편람」 1513 참조.
35. 교회 헌장, 3-4항 참조.
36. 교회 헌장, 7항; 성 이레네오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친교, 곧 성령께서 위탁되어 있다.” 하고 주장하였다(「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 III, 24,1: 「그리스도교 원전」 211, 472 참조).
37. 사목 헌장, 22항.
38.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 ‘말씀의 씨앗’에 대하여: 성 유스티노 순교자, 「호교론」(Apologiae), II, 8,1-2; 10,1-3; 13,3-6: E.J. Goodspeed 편, 84; 85; 88-89 참조.
39. 「교회의 선교 사명」, 28-29항 참조.
40. 「교회의 선교 사명」, 29항.
41. 「교회의 선교 사명」, 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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