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평신도 사도직 권리·소명 강조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이라는 제목으로 1965년 11월 18일 공포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이하 평신도 교령)은 평신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교령의 주춧돌은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2차 회기이던 1964년에 반포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평신도 교령은 서론에서 『날로 증가하는 인구, 과학 기술의 진보, 더욱 긴밀해지는 인간 관계 등은 평신도 사도직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그 영역의 대부분은 평신도들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평신도들의 깊은 관심과 연구가 요구되는 새로운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히는 등 평신도 사도직에 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공의회 전체가 평신도를 위해 있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인식을 낳기에 이른다.\
교령은 또 이전까지만 해도 성직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며 「듣고 따르는 교회」로 수동성이 부각되어온 평신도상을 극복하고 평신도의 특수사명이 지닌 의미를 밝힘으로써 평신도 사도직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사도직을 위한 소명이다』(2항) 『평신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자신의 결합에서 사도직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받는다』(3항)는 교령의 선언은 평신도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신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들의 사도적 투신이 전 교회의 생명력과 영적 성장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신도 사도직의 지평을 새롭게 한 평신도 교령은 이후 「평신도 그리스도인」 「가정공동체」 「여성의 존엄」 「가정교서」 등 평신도와 관련해 발표된 다양한 교회 가르침의 근간이 된다.
평신도 교령은 일관되게 교회 사명의 한 부분인 현세질서의 그리스도화에 있어서는 평신도가 앞장서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사목자가 주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권리를 알고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주체적인 모습의 평신도상을 제시하고 있다.
평신도 교령은 제1장 2항에서 『교회의 설립 목적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온 세상으로 넓히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시키며,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한 신비체의 모든 활동을 사도직이라 한다. 교회는 모든 지체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사도직을 실천한다』며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사도직을 위한 소명』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교회 안에는 다양한 봉사 직무가 있지만, 그 사명은 하나이다. …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여 실제로 사도직을 수행한다』라고 평신도 사도직을 정의하고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며 평신도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런 내용을 담아 40년 전 발표된 평신도 교령이 지금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문헌이 전하고자 했던 정신과 삶이 여전히 우리 교회에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역설일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에서 평신도의 고유한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평신도 사도직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소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결코 교회 안에 없을 수 없다』(서론)는 교령의 지적은 우리 시대 평신도들의 사도적 투신을 요청하는 주님의 목소리로 들린다.
“삶과 신앙 일치로 사명 완수”
오늘날 평신도 사도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진보와 이에 비견되는 급속한 세속화가 하느님과 세계에 대해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현실은 신앙과 과학적 지식, 인간과 과학기술간의 대결을 초래하며 탈종교적인 흐름마저 부추기고 있어 갈수록 힘겨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와 관련해서도 평신도 사도직은 갈수록 더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지역교회의 토착화 작업은 자치적 사목의 성숙과 아울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성숙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목 분야의 토착화는 교회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가정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하기에 다변화 사회의 흐름 속에 놓인 교회로서는 평신도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를 지닌 평신도 사도직은 교황 비오 10세(1903~1914년 재위)와 비오 11세(1922~1939년 재위)가 강조한 「가톨릭 운동」의 영향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평신도 교령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평신도와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들에서 눈여겨 볼 것은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을 「세속적인 성격」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평신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 참여에 대해서도 평신도가 갖는 세속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면서 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를 평신도 교령은 제5항에서 『평신도들은 교회의 이상을 수행하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영적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이행한다. 이 두 질서는 서로 구별되지만 하느님의 하나인 계획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세속과 평신도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평신도들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세상의 빛이 됨으로써,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한다』(13항)고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 교령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공의회의 인식을 상기시키면서 평신도 사도직의 활동 분야와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교령 15항에서는 평신도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다양한 공동체나 단체를 통해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개인적 또는 단체를 통한 활동 모두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 둘은 사도직의 목적을 이루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있다.
교령은 특히 개인 사도직의 중요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16항에서 개인 사도직을 『모든 평신도 사도직의 근원이고 조건이며 그 무엇이든 이를 대신할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아울러 개인 사도직을 믿음, 바람, 사랑 삼덕에 젖은 평신도들의 생활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며 이 방법을 현대적 표지라고 설명하면서 사도직에 투신하는 각자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신도 사도직 양성과 관련해서는 『각자의 재능과 환경에 맞는 전인 교육을 전제로 한다』면서 『인간은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고 여러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러한 양성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29항)며 양성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교령은 현세 사물의 질서를 그리스도교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평신도들은 무엇보다도 사회 교리의 원리와 그 결론들을 배워 익혀 자기 나름대로 교리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이를 개별 사안에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31항)고 평신도의 자발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일정한 인간 사회 안에 교회를 심는 일」(선교 교령 19항)에 있어 평신도에 의지하는 바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오늘날 평신도가 세상 속에서 올바른 몫과 역할을 찾아 적극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촉구를 담고 있는 평신도 교령은 세상을 성화하는 것이 평신도의 고유한 사명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
한홍순 교수(한국평신도협의회 회장, 한국외국어대 교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추구한 세 가지 목표는
△교회의 내적 쇄신
△그리스도교 일치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정립이다.
이 가운데 교회와 사회의 관계는 세상과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교회가 하느님 보기에 좋았던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세상 속으로 다가가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주체적 역할은 누가 해야 하나. 세상에 살고 있는 평신도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는 평신도 시대다"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공의회)는 종종 '평신도 공의회'로 불린다. 공의회 이전 오랜 세월 동안 평신도를 '목자를 따라가는 양순한 양떼'로 비유했다. 평신도는 기도하고 헌금하고 조용히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공의회 이전 20~30년간 평신도 역할에 대해 이와 다른 견해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6년 새 추기경들에게 한 담화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당시에는 혁명적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은 새로운 신학적 성찰과 문화적 변화가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신학 정립을 위해 노력해온 유럽 신학자들 가운데 공의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는 프랑스 도미니코회 이브 마리 콩가르 신부다.
콩가르 신부는 세례성사를 받은 평신도는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현장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각자 은사와 공동체 필요에 따라 봉사하고 증언하는 삶을 살도록 불리운 평신도는 교회 사명을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가 1950년대 초 펴낸 「교회 안의 평신도」는 평신도 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요한 23세 교황은 평신도 신학을 정립한 콩가르 신부를 공의회 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평신도 운동들도 나타났다. 벨기에 조셉 카르딘 신부가 세상 문제들에 대해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제시한 방법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젊은이들을 끌어당겼다. 이 방법을 대학, 직장, 가정 생활에 적용한 가톨릭 청년 학생회, 가톨릭 노동 청년회, 가톨릭 가정 운동 등 단체들이 조직돼 활동했다. 성직자의 지도를 따라 세상에서 교회를 대표해 활동하는 가톨릭 액션운동들도 있었다.
이같은 흐름에서 비오 12세 교황은 1951년 제1차 세계 평신도대회를 소집, 평신도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틀을 놓았다. 이 대회에서는 평신도 사도직 교리에 대해 상반된 발표가 나왔다. 교회 사명에 대한 평신도의 공동 책임과 평신도 사도직의 교계 종속이었다. 이 상반된 견해는 이후 공의회 토론에서도 제기됐다.
6년 뒤 제2차 세계 평신도대회는 '현대 세계의 위기:책임과 양성'을 주제로 열려 세상에 접근하려는 교회 의지를 나타냈다. 이 대회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각 대륙, 각 분야 저명 평신도 20명이 기고한 「세계 위기와 가톨릭」이라는 책자도 출판됐다. 당시 한국 부통령 장면 박사가 기고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평신도도 세계교회에 당당히 참여해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공의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귀결이다. 시대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 덕목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공의회에 평신도를 참관인으로 초대했다. 1963년 남성 평신도 13명이, 이듬해 수녀 10명과 여성 평신도 13명이 임명됐다. 여성 임명은 수에넨스 추기경 영향이 컸다. 수에넨스 추기경은 「교회헌장」 초안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참관인 역할은 토의 내용을 경청하는 일이었다. 제3회기 때 일부 남성 참관인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여성 참관인에게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 바바라 워드가 저개발국에 관해 작성한 원고를 남성 참관인이 대신 읽어야 했다. ▲「평신도 교령」은 평신도 역할이 생활의 증언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평신도 교령」 초안은 손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발언자들은 초안이 평신도 자문을 받지 않았고,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리터 추기경은 이 초안이 성직자 중심주의라고 비판하며 교회생활에서 사도직이 갖는 중요성을 다뤄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는 평신도 사도직을 교회 주변에서 중심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기에 중요했다. 또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을 구별해야 하지만 교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하지 말아야 하고, 평신도의 성덕과 영성도 다뤄야 한다고 제시했다.
인도의 데수자 대주교는 평신도를 성인(成人)으로 봐야 할 때가 됐다며 "성직자들은 평신도를 형제로 대해야 하며 더 이상 평신도 고유의 책임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왜 평신도가 교황청 각 기구에서 교회를 대표할 수 없으며 교황청 외교 부서에서 일할 수 없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20년 후 1987년 열린 평신도에 관한 주교 시노드에서도 평신도 신원에 대해 부정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교황은 평신도는 교회의 완전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은 교회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다"(9항).
「평신도 교령」의 몇 가지 주제는 공의회 이후 큰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소명'(성소)이다. 평신도는 진정한 성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 즉 평신도는 세상과 교회에서 하느님 나라를 촉진하도록 불렸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1장). 전에는 '성소'라는 말이 성직자와 수도자에게만 해당했다.
교령은 또 성령께서 평신도들이 자신의 소명과 책임을 더 깨닫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 소명이 사도직이며 이를 통해 평신도는 그리스도 구원사업에 참여한다. 평신도를 통해 온 세상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령은 "교회 안에는 다양한 봉사 직무가 있지만, 그 사명은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기본적인 것이다. 평신도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령은 「사목헌장」과 보조를 맞춰 교회와 세상을 적대 관계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교령은 과거 교회 문헌에서 흔히 쓰지 않던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4항). 「교회헌장」의 영향을 받아 평신도의 영성 생활은 생활 현장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또 평신도 생활과 평신도 사도직에서 우애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공의회 이후 시작된 여러 평신도 운동, 특히 꾸르실료와 ME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우애, 서로간의 우애가 중심을 차지한다.
평신도는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이다. 교회와 세상이 모두 중요하다. 따라서 평신도 역할은 생활의 증언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다. 복음은 현세 질서를 이루는 다양한 분야, 즉 가정, 문화, 경제, 예술과 직업, 국가 제도, 국제관계 등으로 파고들어 간다.
교령은 평신도들이 세상과 사회 개선이 자신의 고유 임무라는 점을 깨달아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의 주역이 되도록 권고한다(7항).
사회 개혁운동에서 애덕 실천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 차원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인격을 존중하며 도움을 줘야 한다고 교령은 역설한다. 오늘날 얘기하는 세계화에 대해 일종의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교령은 세상에 대한 사목은 평신도 고유 임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힌다. 특히 본당을 평신도가 자신의 재능과 세상 문제를 교회 중심부로 가져오도록 하는 대문으로 본다. 나아가 교구와 전국, 국제적 차원으로 평신도 경험과 능력은 확대된다.
공의회는 무엇보다 평신도가 부부와 가정 사도직의 주역임을 강조한다. 가정을 상호 사랑, 기도, 친절, 정의와 사랑 증진의 터전으로, 즉 '가정 성소'(11항)로 부른다.
교령은 또 청소년에게 초점을 두고 청소년들이 사도가 될 것을 권고하며 어른들에게 청소년과 그들 이상에 맞춰 진지한 대화를 나눌 것도 권한다. 아울러 사도직을 위한 평신도의 영적 양성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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