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인간은 '만남'을 통해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존재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8. 7. 30. 08:16

2018년 나해 연중 제17일


<인간은 ‘만남’을 통해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존재>

 
복음: 요한 6,1-15


사람이 신의 존재를 체험하게 되는 경우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실 생각을 미리 하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신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체계 안에 있는 필립보나 다른 제자들은 이들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해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200데나리온 어치를 사도 모자랄 것이고 게다가 그렇게 많은 빵을 살 곳도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그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음을 믿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자기를 초월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시기 전까지는 기적을 한 번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처럼 될 수 있음을 믿으셨고 그러니 하느님처럼 하실 수 있음을 믿으셨습니다. 이것이 만남을 통한 자기초월입니다.
 
이 믿음을 만난 제자들 역시 자신들도 빵을 떼어 나누어주며 기적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과 만난 이들은 이제 자신들도 한계를 초월하게 됩니다. 물 위를 걷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서야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초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게 될 때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원해야 합니다.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분명 하느님이 계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게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던 빌 포터는 어머니의 권유로 미국 생활용품 회사 왓킨스사에 면접을 봅니다. 그러나 말도 어눌하고 한 쪽 손과 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 누가 방문판매를 맡길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를 믿어주었고 그는 판매지역 중 가장 힘든 지역을 맡아보겠다는 조건으로 입사하게 됩니다.
매일 15km를 걸어 수많은 집을 방문하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구걸하러 오는 사람 취급을 하였습니다. 지쳐 포기할라치면 매일 어머니가 싸주는 샌드위치에 케첩으로 써 놓은 ‘인내하라, 끝까지 인내하라.’라는 글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자신을 지켜 줄 수 없을 때도 그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24년 동안 수백만 가구의 문을 두드린 결과 그의 꾸준함에 감동한 고객들은 그가 가져오는 물건은 무엇이든 믿고 구매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서부 지역 최고의 판매 왕 자리에 올랐고 그 기록은 30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힘을 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를 믿어주었던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이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의 마음 안에 참고 참고 또 참아야만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신 분이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가 빌 포터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준 것입니다.
 
빌 포터를 보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런 일을 이루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한계는 자신보다 먼저 그 한계를 극복한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서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계를 깨어주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이런저런 봉사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분과 함께 했더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분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게 되고 또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도 믿게 되고 이웃도 믿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냥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는 오천 명의 배고픈 사람들이 있고 주님은 그들에게 우리보고 양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높은 이상을 품지 않으면 한계의 극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무엇인들 할 수 없겠습니까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계산만 하고 있다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보다 더 큰 이상을 품어야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엔 주님께서 깨우시려고 하는 거인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 거인은 주님의 만짐으로 깨어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거인이 됩니다. 내가 거인이 되었다면 나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내가 더 잘 알기에 하느님께 대한 확신이 더해집니다. 그러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는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한계를 극복한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주실 분을 만났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전삼용요셉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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