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하느님의 뜻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8. 7. 29. 07:49

2018년 나해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수확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복음: 마태오 13,24-30

하느님의 뜻...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과 부딪힙니다.
특히 우리 삶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한 사제의 갑작스런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봅니다.

“죽음에는 모를 것 셋, 아는 것 셋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
첫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째,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셋째,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아는 것...
첫째, 반드시 한 번은 죽는 다. 둘째, 아무도 함께 가지 못한다. 셋째,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성경 안에서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밀과 가라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마침내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주인의 종들이 그 못된 가라지를 뽑겠다고 할 때, 주인은 “뽑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리지를 뽑다가 자칫 밀까지 다치고 상처를 주거나, 뽑아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라지를 다 뽑아버리더라도 멀쩡한 밀 하나가 다치거나 뽑히는 아픔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기다리는 수확 때가 오면, 하느님께서는 일꾼들을 시켜 추수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느님, 저렇게 악하게 사는 사람을 왜 그냥 두십니까?
그리고 내 삶이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일만 일어나서 기도의 응답이 없으니 하느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불평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가라지를 뽑지 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을 벌주다가 선한 고운님들이 다칠까? 배려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선한 영혼에게 있어서는 가라지가 함께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라지는 심판 때에 하느님께서 알아서 처리 할 것입니다. 미리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들 안에서...그리고 나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험담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고운님들을 더 강해지고 은혜롭게 만들기 위해서임을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즉, 악한 사람들을 그냥 두는 것은...선한 고운님들을 더 강하게, 더 은혜롭게, 더 행복하도록 배려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도 마지막에는 은혜롭게, 기쁘게, 강하게 이끌어준다고 믿는다면, 지금 고운님들에 생긴 어려움이나 문제를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과 문제마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밀과 같은 믿는 이들의 삶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왜냐면, 저와 고운님의 몸과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밀과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느님의 뜻”임을 묵상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오기 전에,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고운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조창현 클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