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7. 6. 27. 20:23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오  5,43-48

 
오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물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가리옷 유다를 끝까지 감싸주시고 사랑하셨고 또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모범에서 정말 원수를 사랑하시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라 그것이 가능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책과 영화로 유명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사형수들의 어머니 조성애 수녀님이 대법원에서 사형제도의 합헌이 결정되자,
사형수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가식’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똑같이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범죄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영철에게 4대 독자인 아들, 아내, 그리고 어머니까지 무참히 살해당한 고정원씨가 유영철을 용서한다고 할 때 같이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은 물론
그 분의 딸까지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서지 않으면 하느님께 칭찬받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넘어선다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가식으로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씨앗이 따스한 햇살과 수분이 있는 흙 안에 있어야 자신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새싹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자신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며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변화되면 될수록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그분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으로는 용서나 사랑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기도는 이미 감정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은총의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워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기 싫은 것입니다.
 
기도는 은총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고 그 초자연적 은총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저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술집 여자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남편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니 기적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와 다시 재시작하는 가정을 보았고,

또 바람피우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니 남편이 밉기보다는 불쌍해 보여 가끔 집에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잘 대해준다는 자매님도 만났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사적으로 따를 줄 알아야겠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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