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모든 법을 포함하는 법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7. 6. 27. 18:12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코 12,28ㄱㄷ-34


모든 법을 포함하는 법
 
 
차동엽 신부님의 강의 ‘팔자는 없다’에서 들은 일화입니다.
 
옛날에 점을 아주 잘 치는 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 명이 과거를 치르러 가다가 점을 보고 싶어서 이 도사를 찾았습니다.
 
그 도사는 이 세 명을 유심히 바라본 다음에 손가락 하나만 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그 뜻을 물어보았지만 도사는 차차 알게 될 것이라고만 하고는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던 하인이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도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손가락 하나는 한 명이 붙는다는 뜻이었습니까?”
“그렀느니라.”
 
“그러면 만약 둘이 합격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하나가 떨어진다는 뜻이니라.”
 
“만약 세 명이 다 합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니라.”
 
틀릴 수 없는 점괘입니다.
그래서 고수인가 봅니다.
 
고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성인들마다 주장하는 바들이 조금씩은 달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중요시했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육신을 괴롭혀야 영적인 사람이 된다고 가르쳤으며,
아빌라의 데레사는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했고,
소화 데레사는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을 강조했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만 잡고 그것만 정진하다보면 다른 모든 덕들도 따라옴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강조하십니다.
 613개의 많은 조항들을 이 두 사랑의 계명이 다 덮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에 율법학자도 예수님의 말씀에 수긍하여 수많은 희생제사의 예식보다는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여 예수님께 칭찬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내 삶을 이끌어주는 가장 중요한 율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말씀과 성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체’입니다.

성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또 이웃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내어주신 당신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을 포함하는 사랑의 계명이 그 성체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성체는 사랑의 법 자체입니다.
모세가 십계명 판을 들고 내려와 계약의 궤 안에 넣었을 때 이 십계명과 함께 넣었던 것이 만나가 든 항아리였습니다.
 
즉 성체가 곧 십계명 판이고 모든 법의 완성이란 뜻입니다.
성모님은 그 성체를 가장 귀한 것으로 모실 줄 아셨던 계약의 궤이십니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교리를 받고 계신 한 분의 이름이 ‘진상’이라고 하십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들 때문에 개명을 하려는 생각을 지니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성당에서 세례를 준비하며 제 이름을 듣고는 그래도 자신의 이름이
신부님의 이름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그 이름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였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 이름은 ‘삼용’입니다.
제 이름이 이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힘을 주는 이름인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이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은 다른 이름들이 힘을 얻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제 이름의 내공도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성체를 제 이름처럼 저에게 가장 큰 법으로 삼고 살 것입니다.
 성체에 대한 공경, 특별히 ‘성체조배’는 다른 모든 자잘한 법들을 채워주고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체는 사랑 자체이고
 모든 법의 완성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이것 하나만 잘하면 돼!”
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계명 한 가지씩 정해보도록 합시다.

그래야 모든 계명을 다 지키려고 하다가 결국 중요한 계명을 잊고 살았던
바리사이들처럼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수많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법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그 법은 ‘사랑’을 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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