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1/6 주님 공현 전 금요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7. 1. 7. 08:06

정지웅 요셉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1/6 주님 공현 전 금요일
http://cafe.daum.net/suwonmr/5Tg7/1926

씻고 또 씻으십시오.

인간의 모습을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신 하느님,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모습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의 덕입니다.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지속적인 자기 낮춤의 삶이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탄생, 더 이상 겸손할 수 없는 탄생이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이었습니다.
30년간의 나자렛 숨은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메시아로서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양부모에게 순종하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겸손의 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출가하신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사목활동에 앞서 겸손 하게도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적 사명을 시작하는 첫 순간,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니다.
성탄 때 보여주셨던 그 지극한 자기 낮춤을 공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겸손하게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말입니다.
원죄 없으신 분, 티 없이 깨끗하신 분이어서 세례가 전혀 필요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씻으시고자 예수님께서 먼저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향해 세례자 요한은 너무도 황송해서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아룁니다.
“제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주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이 말은 “어찌 피조물이 창조주께, 신하가 임금에게, 구원 대상자가 구원자에게, 종이 주인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참으로 지당한 세례자 요한의 반응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송구스럽게 생각했던 것처럼 의외의 일이자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 너무나 충격적인 자기 낮춤에 세상이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탄생 때부터 계속 되어온 예수님의 겸손은 이처럼 세례를 거쳐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겸손하게 죄로 오염된 강물을 정화 시키기 위한 ‘정화제’가 되십니다.
다시 한 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자기 낮춤, 당신의 뜻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응답한 아드님 예수 모습에 너무도 흡족해지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외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님 권고가 오늘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씻고 또 씻으십시오. 인간의 회개보다 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