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9월7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6. 9. 7. 08:22

<역설의 행복>

 
벌써 10년 넘게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조사가 있습니다.
바로 자살률입니다.
지구상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는 나라들을 회원국에 가입시키는 단체가 OECD인데, 현재 34개 나라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014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0만 명 당 12명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평균 두 배 이상인 29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석을 보면 ‘어떻게 이런 수가?’하는 탄식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연간 우리 이웃 가운데 약 만 오천 여명이 자살하고 있고, 하루 자살자 수가 평균 4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500만 명, 자살을 실제로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200만 명, 구체적으로 시도한 사람은 3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히 ‘자살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습니다.
 
자살의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느끼기에, 더 이상 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에, 스스로 철저하게 혼자라고 여기기에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동기로는 심한 우울증, 그리고 극단적 가난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가난은 이렇게 한 인간을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내 모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이해 못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루카 복음 6장 20~21절)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이 역설의 행복에 대해 오늘 이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웃들, 극단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예방할 수 있겠는지 길을 모색해봐야겠습니다.
 
전 세계 유래 없는 초고속 압축적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결실은 큰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가 너무 짙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에 도달해있습니다.

10%, 더 나아가서 1%의 소수가 전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멋진 TV 드라마 속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내 현실이 나를 좌절시킵니다.
소외감, 좌절감, 상실감으로 가득 찬 가난한 사람들의 극단적 선택이 줄을 잇습니다.
 
극단적으로 슬픈 현실 앞에서 필요한 것은 극단적 처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외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정책이 요구됩니다.
과감한 부의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가진 자들, 특히 모든 것을 움켜쥔 재벌들, 자산가들, 기업인들의 회심과 동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들이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큰마음을 먹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길에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 좀 꽤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없이 사는 사람들 무시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웃들이 차별대우를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보물이며 또 다른 그리스도임을 알고 섬겨야겠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말이나 영성으로서의 가난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난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와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참 가난을 살아야겠습니다.
가난해도 멋지고 당당하게 살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줘야겠습니다.
 
우리 역시 언젠가 더 나이 들고, 끔찍한 병고에 시달리고, 가까웠던 사람들 모두들 떠나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지독한 가난과 철저한 고독만이라면 똑같은 충동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세상 잠시라는 것, 인내하고 또 인내하다보면 이 세상 지나가고 모든 것이 뒤바뀔 불멸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맞서기 힘든 엄청난 시련의 폭풍이 다가오면 반복해서 되뇌어야겠습니다.
지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극단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은 이웃들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 업신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독거노인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가장 가련한 모습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등지려는 사람들에게 외쳐야겠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매몰차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잔인하지 않습니다.
제 코도 석자지만 돕겠습니다.
저도 힘들지만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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