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마르타 성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 성녀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다.
묵상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을 두고 ‘메시아’ 또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라고 물으시는 예수님께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뒤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것에 반박하다가 꾸지람을 듣습니다(마태 16,21-23 참조). 곧 그의 고백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마귀의 고백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과 마주치자 엎드려 절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마르 5,7) 하고 외칩니다. 이는 예수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대적하려고 한 고백이므로 신앙 고백의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마귀를 쫓아내십니다(마르 5,8-13 참조).
세 번째로는 한 백인대장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본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하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이 아니라, 패배와 죽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정한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난 마르타의 고백 또한 백인대장의 고백에 못지않습니다. 자신의 오빠가 죽어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타는 한없는 슬픔과 불행을 느끼면서도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는 가운데 그분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항구하게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