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문기사

2012년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기(2012,1,31~2,8)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2. 2. 15. 20:19

2012년 1월 30일(월) 오전 10시 30분

 

 성지순례단 전원 인천공항 A열 도착(서울, 제천, 부천, 안산, 일산, 분당, 안양에서 조금도 약속시간에 늦게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모두가 모범생 범생이들임에 틀림없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인사와 각자 자신 소개.

서로 처음보는 사람도 있고 하다보니 서먹서먹하기도 한 분위기가 역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라진 형제 두 부부도 함께 하였습니다. 목적이 같고 기도한 만큼 쉽게 마음을 여리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기원해 봅니다. 전체 인원은 신부님 한 분, 가톨릭 신자 25명(형제3명, 자매20명 개신교 형제2명, 자매2명 모두 29명) 어쩌면 가장 적절한 인원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싱글 방 신부님 외에는 룸메이트 걱정도 없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함께 가시겠다고 한 사람들은 38명 정도였으나 결국 임박해서 못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하느님의 뜻이 오묘하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꼭 갈 것 같은 사람들은 못가고 갑자기 30분만에 가시겠다고 결정하시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성지순례!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누구나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 아니구나! 정말 하느님의 섭리에 감탄하였습니다. 제가 여행사와 약속한 인원은 28명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가격도 결정하였던 것이고 25명에서 티켓팅 6일 남겨놓고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주님의 섭리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령대, 건강상태, 신앙관, 모두가 최상의 여행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성지순례단과 함께 했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심정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개인별 명찰 부착, 가방택 부착,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여행일정표, 매일미사,성가 수록) 책자 배부, 여권을 수거하여 수화물 먼저 처리를 하고 발권을 하였습니다. 여행사 직원과 이별을 하고 우리는 약간의 컵라면, 사탕, 껍,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면세점을 돌아 12시 45분 탑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항공 관제탑의 연락으로 20분 연착하여 비행기는 1시 40분쯤에 이륙하였습니다. 서로 약속한 자리도 아니지만 우리의 일행들은 서로 서로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긴 시간의 비행일정 속에 준비물은 알려 드렸지만 저는 수시로 일행들을 돌아보며 확인하였습니다. 더디어 타쉬켄트 도착 1시간 30분의 경유 시간으로 공항에서(좁은 공간) 휴식을 취하다 다시 동일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타쉬켄트 ‘돌의 도시’ 8시간을 달렸는데 현지시간 7시15분에 탑승 방송을 듣고 공항에 눈이 와서 질퍽거리는 눈길을 걸어서 공항내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6시간여의 비행 후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지시간 6시정도 였습니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느림)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2시쯤, 모두가 피곤한 기색도 잊고 입국 절차를 마치고 현지가이드를 만나고, 공항 밖에서 최순자 로사 가이드와 현지 가이드 그리고 버스기사를 만나 버스에 가방들을 싣고 호텔로 향하였다. 밤의 시간이지만 공항에서 40여분 거리를 달리는데 신도시 개발하는 모습이 보였고 사막을 연상하는 누런 빛의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달리다 보니 나일강의 모습 이 쭉 뻗어 있었다. 거기에 한국 삼성의 거리 태극기와 삼성마크가 거리에 펄럭이는 모습에 한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껴본다. 호텔로비에서 방 번호를 배정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사실은 시차로 인하여 모두 잠을 못 이루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순례 첫 날이 지나갔다.

 

 

 

 

 

2012년 1월 31일(화)

새벽 6시30분 조식을 위한 식당에는 모두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마쳤다. 풍부한 야채와 음식들은 조금도 불편함을 주지 않아 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서 나중에 커피를 마실 준비도 하였다. 8시 우리 모두는 버스를 타고 이집트 박물관을 들렸다. 이집트의 고대유물들, 그리고 미이라,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들(특히 파라오와 고관대작들)의 사후세계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엄청난 유물들을 보며 성경 속 아니면 역사속 이집트의 찬란했던 한 때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사정과 달리 현실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현실은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에 비하면 너무 낙후된 모습에 지도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름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산적해 있었고, 강 주변의 모습,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거리의 자동차들은 10대중 4대는 한국산 구형 차들이 줄을 이었다(물론 최신형도 있지만). 다시 한 번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중식은 나일강 변 현지식이었다. 가는 곳마다 물값은 장난이 아니었다. 식당에서는 1L짜리 한 병 무조건 3달러이다. 버스기사들이 판매하는 물값 소형 두 병에 1달러였다. 한국에서 쓰는 물의 소중함을 세삼 느끼게 된다. 아껴 써야지. 성경 속 신앙의 선조들이 왜 그 물 때문에 야단을 떨어야 했던가? 왜 물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하는 자인가! 오후에는 미이라! 석조 건축인 스핑크스(머리는 사람 몸통은 사자)! 그 옛날 과연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가이드가 계속 맨트를 하다. 이번에 오신 분들 모두 기도 많이 하고 오신 분들이라고! 왜냐하면 흙먼지 바람으로 인하여 고생한다고 하였는데 우리 순례단은 너무 쾌청하고 바람 한점 없고, 구름 한점 없는 날씨에 너무나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낙타를 타라고 강요하거나 1달러를 외치며 물건을 사게 강요하는 모습들은 조금은 언짢기도 하지만 세계 어느 곳이든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보아 넘기기로 하였다. 이어서 우리는 올드 카이로의 예수님의 거처했었다는 예수님의 피난 성당과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 중의 하나인 모세 기념 성당을 방문하였다. 옛날 회당에서 모세가 말씀을 선포하던 모습이 상상된다. 이어서 우리 순례단은 우리 교민들이 다닌다는 MAADI(성가정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이 본당 주임신부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님이셨는데 여진천(포시아노) 지도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우리 모두는 감사와 감사를 거듭하면서 고국에서 가져온 지향들을 향해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미사를 올렸다. 이어서 우리는 이곳 한인 식당(아리랑, 현지의 유일한 한인식당)에서 김치와 미역국 그리고 생선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였다.

김현욱(돈보스코) 박사님의 배려로 우리는 파티를 즐겼습니다. 포도주파, 소주파, 맥주파로 나뉘어 하루의 피로를 푸는 행사도 가졌다. 모두들 가슴벅찬 마음으로 LE MRLIDIEN PYRAMIDS HOTEL로 향하여 2일차 순례를 마쳤다.

 

 

 

 

 

2월 1일(수) - 3일차

아침7시30분 우리 모두는 가방을 챙겨 시나이산을 향하게 된 여정이었다. 호텔식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홍해를 건너(수에즈운하) 스르 광야의 우물(현지; 아이온 무사:모세의 샘)에서 야외 미사를 하였다. 그리고 현지 가이드가 준비한 도시락을 차에서 먹었다. 바람이 불고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유료, 물값 유료, 어린이들이 상품을 들고 1달러를 외치고 코리아 캔디를 외치는 모습은 안스러워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조금 도와 줄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시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유숙지였던 르피딤 광야를 지나 500km 대장정을 할려고 하였으나 현지 베두인들의 대치상황으로 순례객들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내용을 듣고 우리는 다시 파란 광야를 거쳐 돌아서 시나이산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간간히 보이는 사막의 풀, 나무 외에는 그저 험준한 절벽의 돌산 밖에는 보이지 않는 이 곳, 그러나 모세께서 60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그 길이라는 의미심장한 탈출의 경로이기에 우리 일행은 숙연해질수밖에 없었다. 정말 550KM의 대장정 엄청난 탈출 경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5시 30분쯤 우리가 묶을 호텔에 도착했다. 날씨가 깊은 산속이라 춥게 느껴졌다. 내일 새벽 시나이산 등정을 위해 복장과 02시30분 출발에 우리 일행은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산 위에서 영하15도의 추위도 이겨야하는 복장을 갖추어야 하는 것, 편도 3시간 정도의 산행, 그리고 추위를 이겨야 하는 것, 산 정상에서 먹을 컵라면과 커피도 준비하였다. 잠을 자는 둥 마는둥 설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2월 2일(목) - 4일차

드디어 새벽02시 우리 일행은 출발을 위해 모든 점검을 마쳤다. 우리 모두는 낙타를 타기로 하였다. 낙타비 20불, 협회회비 1불, 마부 팁 1불 준비는 끝났다. 주대용(스테파노)회장님은 1불에 지팡이를 대여 받았다. 걱정은 손용익(그레고리오)회장의 허리 문제다. 그러나 낙타를 타기로 하였다. 강신진(로사) 선교사만이 등정을 포기하고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9시경에 만나기로하였다. 우리 28명은 버스로 잠시 이동 후 걸어서 15분 거리까지 가서 드디어 낙타 정류장에 도착하여 몸집이 큰 사람부터 낙타를 탔다. 2M가 되는 낙타위에 몸을 맏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낙타를 순조롭게 타고 1시간여 늦게 오시는 순례객은 1시간 20분정도에 낙타 정유장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750계단을 향하였다. 모두 잘 가는 편이었다. 여기서(아브라함 찻집) 손용익(그레고리오)는 쉬게 하였다. 이제 27명, 잘 가는 듯 하였으나 문경화(에밀리아나)와 최미혜(헬레나)두명이 너무 힘들어하여 나와 신부님께서 두 사람을 부축하고 보호하며 정상까지 향하였다. 이제 여명의 시간 모두 카메라를 들고 동녘을 향하여 대기하였다. 더러는 찻집에서 2불을 지불하고 컵라면과 커피를 마시며 성경속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그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문은 잠겨 있지만 최정상(2285M)에 위치한 삼위일체성당(모세께서 십계명을 받은 장소)을 올랐다가 모두 하산하였다. 사실 이곳에서 아침 현지 미사를 준비하였으나 일행 중 조금 늦은 사람이 있어 아브라함 찾집에서 미사를 드렸다. 감격적이 순간이다. 호텔이 있는 곳은 이스라엘 60만 인구가 모세를 기다리는 장소요 우리가 있는 곳은 모세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한 로드맵(십계명)을 받는 장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다니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한라산에서, 울릉도 성인봉에서, 백두산에서 미사를 하였지만 이처럼 감격스럽고 의미심장한 미사, 눈물이 고인다. 감동의 물결이다. 우리 일행은 9시에 카타리나 수도원 개장과 더불어 7시50분쯤하산을 하여 9시15분에 모두 수도원 입구에서 만났다. 하산길에 우리는 중턱에서 엘리야의 기도처도 확인하였다. 하산길에도 강옥경(루시아), 손용익(그레고리오) 두 사람은 낙타를 이용하였다. 찬란한 태양과 더불어 하산하는 길은 많이 껴입고 같던 옷을 한겹 한겹 벗게 만들었다. 우리 일행은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하느님께서 부르셨던(탈출3,7)모세의 떨기나무와 다양한 이콘을 감상하고, 그리고 우물을 돌아 다시 호텔로 돌아와 이제 파란 광야를 거쳐(1시간30분정도)뉴웨바를 거쳐 이스라엘 입국 다시 요르단을 입국하여야 하는 오늘의 일정이다. 뉴 웨바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여기 뉴웨바는 한국인 식당이 두 군데 있다고 한다. 고향 냄새가 풍기는 된장과 상치 그리고 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식당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반건시 대추야자를 선물용으로 샀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홍해 바다의 길을 따라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를 바라보며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있는 아라바에서 로사 가이드와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총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가이드를 만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경험이 풍부하고 아는 것이 너무 많다 싶을 정도의 가이드였다. 이집트 출국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입국은 정말 까다로웠다. 리더였던 나부터 가방 전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대추야자가 문제였다. 대추야자를 구입한 모두 가방을 수색당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입국 심사는 까다롭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내부 버스를 타고 요르단 입국장 도착, 이미 시간은 3시30분이 지났다. 다시 요르단 입국장에서 개신교 신자라는 가이드 안주현을 만났다. 재치넘치고 유머스러한 가이드의 생김새와 말솜씨에 모두 즐거워하였다. 모든 입국 절차를 거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준비된 버스에 몸을 싣고 우리의 숙소인 KINGS WAY HOTEL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아라바에서 페트라 까지는 2시간 걸리는 시간인데도 다행이 1시간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인디아나존스 영화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서’ 촬영지로 유명하고 세계문화유산지인 페트라(성경속 지명‘셀라’)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이상은 형제(개신교)가 맥주를 선물하여 현지의 생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오늘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식사 후 10분 거리에 있는 모세의 우물을 보았다. 어디에선가 솟는 우물 여기는 800고지라고 한다. 아직도 이곳 사람들이 물을 길어 먹는다고 한다.

 

 

 

 

 

2012년 2월 3일(금요일) -5일차

호텔식으로 아침 식사

8시30분 차에 짐을 싣고 우리는 페트라를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페트라 길, 편도 1,2km 왕복 3km의 길이다. 감동에 감동을 거듭하면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걸었다. 모두 사진 촬영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엘카즈네 사원, 원형극장,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수로, 모세께서 탈출과정에서 이곳을 지나갔다는 와디무사(모세의 샘) 하나같이 감동 자체였습니다. 많은 동굴들, 그 옛날에는 고관대작들의 무덤인 곳이 지금은 말과 당나귀, 그리고 낙타들의 마굿간으로 사용되어 많은 냄새가 풍겼습니다. 원형극장에서의 하진숙(안나)선교사의 가곡을 부르며 공명을 확인하며 고대인들의 지혜를 확인합니다. 근처 현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 Kings Way(왕의 대로)를 따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향하는 길(3시간소요)에 끝없는 광야를 지나 요르단강을 조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나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던 구름기둥도 확인하였습니다. 갓지파의 땅이며(성경지명 ‘길하레셋성’) 해발 1000m의 고지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십자군 성채 ‘카락성’을 조망하고 다시 30분쯤 달려 중동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아르논 계곡을 조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댐을 지나 언덕 마다에 양과 염소를 치는 모습도 확인하였습니다. 드디어 6시쯤 요르단의 수도에 위치한 RAMADA Hotel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곳 호텔에는 시리아 부상병들이 치료차 와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동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며 우리는 포도주로 오늘의 일정을 만끽하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2012년 2월 4일(토요일) - 6일차

오늘은 모세께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 느보산을 향하는 날이다. 그리고 알렌비 국경을 통과하여 다시 이스라엘에 입국을 하여야 하는 여정이다. 7시 30분 모두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8시 40분 느보산에 도착, 프란치스코 수사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미사를 하였다. 감동의 드라마다. 엄청난 바람과 높은 산에서의 바람은 장난이 아니다. 모두 추위와 바람을 무릎쓰고 놋벰(구리뱀) 앞에서 모세께서도 그랬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문한 장소에서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우리는 이제 요르단을 뒤로 하고 알렌비 국경을 통과하여 이스라엘로 가야 하는 일정이다. 요르단 중문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로 알렌비 국경까지 향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또다시 인내심을 가지고 입국수속을 밟았다. 주님의 은총 속에 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게 입국을 할 수 있었다. 11시에 입국을 하여 정미라(가브리엘라) 가이드를 만났다. 준비된 버스에 몸을 싣고 달리다 가이드의 배려로 여정에 없던 예수님의 세레장소가 있는 요르단 강에 도착하였다. 비가 온 뒤라 물은 흙탕물이었다. 한참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식을 묵상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프란치스칸들의 세례장면(침수)도 목격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사해(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해수면보다 400M 아래에 위치해 있는 바다)로 향하여 달렸다. 사해에서 가이드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수영을 준비하였다. 모두 가지각색의 수영복 처음에는 추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춥지는 않았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영을 하였다. 아무리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순식간에 배영을 하며 물에 뜨는 신기한 체험을 하였다. 그리고 현장에서 머드맥도 하였다. 1시간여의 여정을 통해 마음껏 사해를 즐기는 행운을 누렸다. 모두 다시 복장을 갖추고 쿰란(에세네파의 공동체 생활 및 성경 사해 사본이 발견된 곳)을 방문하였다. 현대식 영상을 관람후 쿰란이 발견된 현장을 관광하고 11개의 굴 중 Q4굴 앞에서 우리는 기념 촬영을 하였다. 우리 일행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기념품 코너에 들려 사해 화장품과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선물을 사는 쇼핑의 즐거움도 누렸다. 이어서 우리는 2시간을 달려 갈릴래아 호수가에 예약된 EN GEV HOLIDAY RESORT HOTEL에 도착하였다. 여정을 풀고 포도주와 맛있는 호텔식을 하였다. 그리고 내일을 위하여 쉬었다.

 

 

 

 

2012년 2월 5일(일요일)-7일차

아침 일찍 모두 일어나 갈릴래아 호숫가를 산책하며 주님의 말씀 선포와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 거물을 치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 등등 성경속에서 갈릴래아와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묵상하며 한동안을 거닐다가 6시30분 조식을 마쳤다. 우리 일행은 이제 배를 타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갈릴래아 호수에서 배를 타고 카파르나움으로 건너가게 되어 있다.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부두에서 배를 탔다. 정말 우리를 위해 건조한 것처럼 배는 새로운 배였다. 그래서 1시간 운행이 1시간 20분으로 늘었다고 한다. 선상에서 우리는 신부님께서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읽고 묵상하며 그 옛날 예기가 아닌 현재 예수님과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더없이 호수는 잔잔했다. 언제 고물을 배고 주무시는 예수님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어제 밤 바람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어제 밤의 바람은 정말 대단했었다. 호수를 출발해 20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선주의 이밴트가 진행 되었다. 태극기 계양과 애국가 제창! 우리 모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며 찐한 감동을 느겼다. 그리고 경쾨한 이스라엘 음악을 틀고 손벽과 춤을 추면서 여흥은 우리 순례객들에게 엔돌핀을 돋게 하는 크나큰 이벤트였기에 더욱 더 행복한 기분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헤르몬산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흰백색이었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데카폴리스, 티베리아, 막달라마리아 고향, 카파르나움, 멀리 바라다보이는 진복팔단 성당의 모습 정말 말로 글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의 기분이다. 이윽고 카파르나움에 도착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우리 순례객은 10시에 베드로 수위권 성당에서 미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베드로 수위권성당 야외미사! 그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의 상이 있는 야외 원형 테이블에서 연중 5주일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이 어찌 보통일이겠는가? 특히 오늘은 아가다 성녀의 축일 우리 중에도 이공순(아가다)자매님이 있다. 우리는 야외의 엄숙하고도 감동적이 미사를 마치고 베드로 사도 기념 성당 앞 호수가에서 물장난, 사진촬영 만끼하였다.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 성당은 주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밖에서만 구경하였다. 이어서 도착한 곳 진복팔단 선언 성당! 아름답게 그리고 웅장하게 꾸며진 곳, 공명의 실험장소, 옛날에는 이 앞에 농사일이 없었는데 요즈음에는 농사일을 하는 바람에 공명 실험을 할수 없다고 한다. 오전에는 호수에서 언덕으로 바람이 불어 배를 타고 설교하시고, 오후에는 산에서 호수로 바람이 불어 산에서 설교를 하셨다는 가이드의 말에 지혜가 새롭다. 이어서 베드로 사도의 본가와 처가가 있었다는곳, 유적들을 돌아보며 다시한 번 베드로사도를 생각하게 된다. 이어서 우리는 바닷가에 준비된 베드로 고기로 중식을 마쳤다. 베드로 고기, 마치 베드로 사도가 갈릴래라 호수에서 잡은 고기를 맛있게 요리해 주는 느낌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이어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카나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골목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첫 번째 기적을 베푸신 카나안 혼인잔치 기념 성당이 나왔다. 그 옛날 물이 포도주로 변한 항아리들도 보았다. 이제 우리 일행은 예수님 공생활 이전 30년간을 보낸 나자렛으로 이동하였다. 40분 정도의 거리. 잠시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니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장소에 세워진 성모 영보 대성당의 웅장하미 드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요셉 기념 성당 1시간 30분 가량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예루살렘까지는 1시간 거리. 우리는 조금 일찍 Grand Court 호텔에 도착하였다. 저녁에 신부님께서 베푸시는 포도주와 함께 하루 피로를 풀었다.

 

 

 

 

 

2012년 2월 6일(월) 8일째

오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즐겨 찾으셨던 올리브 산, 그리고 겟세마니 성당(전세계 헌금으로 세워졌다)에서 09시에 미사가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의 고뇌를 생각하며 미사를 올렸다. 이어서 우리는 걸어서 엄청난 올리브나무(나무들의 수명 중 천년 이상 살 수 있는 나무는 올리브나무 뿐이라도 한다.)들을 보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바로 엄청난 고목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리브산 정상에서 승천성당(주님의 승천 장소)을 들러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는 주의 기도문 성당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셨던 예수님의 눈물의 성당. 그리고 중턱에서 키드론 골짜기를 바라보며 건너편 예루살렘 황금궁전과 유다인들의 무덤들, 시공을 초월하여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올리브산 정상에 있는 예수님 승천 성당,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는 주님의 기도 성당,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 눈물의 성당, 이어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다시 시온산을 향했다. 시온산 초입에 위치한 스테파노 기념성당을 돌아 예루살렘 성벽 시온문을 거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셨다는 다락방을 들러 다윗의 가묘가 있는 곳, 그리고 다윗 왕의 동상에서 하프를 들고 있는 동상, 다윗 가묘에 세겨진 하프모양, 하느님의 궤를 보고 벌거벗고 춤을 추었다는 다윗왕의 모습을 그리며 찬미와 찬양이 우리 신앙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성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어 베드로 회개를 기념하여 세워진 통곡의 성당을 둘러보고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히브리어로 빵의 집, 아랍어로 고기의 집, 예루살렘 남쪽 8km 떨어진 해발780m 언덕, 성경상 지명 에브랏(창세35,17-20)(룻1,19-22). 룻은 다윗의 증조모이고 이로서 베들레헴은 다윗 가족의 본적이다)으로 향했다. 베들레헴은 아랍인들의 통치아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못 볼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우리 일행은 기도를 하며 1시간여를 달렸다. 다행이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게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예수님 탄생 성당, 엄청난 내부의 모습에 경직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의 별자리에 침구를 하기 위하여 한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군대 군대 남아 있는 비잔티움 시대의 모자이크는 경관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성물을 판매하는 선물코너를 돌아 예루살렘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이영희(아네스) 자매님께서 쏘시는 포도주로 우리 일행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식사를 하며 마음 뿌듯함과 저려옴과 서로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2012년 2월 7일(화) -9일째

오늘은 예루살렘 마지막 일정, 골고타 언덕을 오르며 십자가의 길 기도(어디인지도 잘 모를 지금은 골목시장통을 돌고 돌아 가는 길목)를 바치고, 골고타 언덕을 돌아 예수님의 무덤 성당에서 10시에 미사를 올렸다. 엄청나다는 생각 밖에 없다. 갈바리아(지면에서 13.5m 솟아있는 바위덩어리로 해골산이라는 뜻) 정상에는 두 개의 경당이 지어져 있고 한 곳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터 이고 한 곳은 예수님이 옷벗김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린 터로 추정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그 자리를 무릎으로 기어가서 침구하고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린 터라는 곳에서도 침구하였다. 우리 일행 중 이 자리를 지나면서 하나같이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베짜다 연못을 돌아 성 안나 기념 성당을 돌아 그리고 우리는 헤로데 대왕 시대의 마지막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쪽 벽이자 유다인들의 성전을 잃은 슬픔과 나라 잏ㄹ은 비통함을 달랜 통곡의 벽을 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벽을 향해 호소하는 모습들이다. 남자들이 들어가는 문과 여자들이 들어가는 문이 달라 우리 남자들은 입구에 준비된 모자를 쓰고 들어갔다. 많은어린 유다인들이 성년식을 준비하는라고 바쁘게 움직이고 견학하는 모습도 눈에 뛰었다. 소위 말하는 정통 유다인이라는 것이다. 유다 인구의 10%정도라고 한다. 밖에서 우리 일행은 유다 군인들과 함께 촬영도 하고 유다인들의 정신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이제 오전 순례를 마치고 어제 점심을 먹었던 예루살렘 유일의 한국인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작별을 아쉬워 하는 주인 아주머니,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아 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눈가는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우리는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버스에 몸을 싣고 아인 카렘으로 이동한다.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성당과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이 있는 곳이다. 오후 2시에 오픈을 하는 줄 알고 왔는데 오픈 시간이 2시30분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밖에서 관련 성경 구절들을 묵상하고 몸을 풀기 위하여 가이드의 시범에 따라 운동을 하고 있는데 수사 신부님이 우리 일행을 보고 일찍 문을 열어 주셨다. 한글로 된 마니피캇, 우물, 정교한 모자이크 이콘들 감동의 물결들이다. 한 참 묵상을 하고 건너편에 있는 세레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을 들렀다. 이어서 예루살렘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요파(요나,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 피장이 시몬의 집)로 향하였다.

 

너무 행복했던 이유

1. 말씀 안에서 전례 안에서 만나 주시던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

2.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 생활(복음선포, 치유, 기적의 장소)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만져보고, 들어보고,.....

3. 함께 한 일행들의 건강상 아무 이상이 없었다.

4. 하루하루의 행보에 아무런어려움이 없었다.

5. 날씨가 쾌청하였다.(시나이산 광경, 직접 찾지 못하는곳 도 훤히 볼 수 있을 정도의 날씨).

6. 까다로운 이스라엘 입국 과정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족했던 점

1. 조금 더 자세하게 성경 공부 필요하다. 특히 구약 탈출의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