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년 중국 장춘소팔가자 성역화 사업 선교회 선교 일정을 마치고
2011년 8월 22일 05시 기상, 마지막 여행점검을 마치고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덕원 성당에서 6명, 청계성당1명, 관악성당 2명 함께 동승한 사람은 모두 9명이다.
우리 일행은 09:40분 비행기이기 때문에 07:40분까지 인천 국제공항 14번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미리 가서 준비도하고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저는 07:00경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한사람 한사람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이번 선교단 일행은 인덕원 성당 6명 저와 저의 아내 정성숙(요안나) 곽일영(도미니코)와 아내 안선희(바사) 그리고 오송현(레미지오)와 이공순(아가다), 청계성당 이순희 (아네스) 관악성당 김종주(프란치스코)와 아내 박경옥(호로리나)그리고 대전교구 계롱대 삼위일체성당 김민규(바오로), 당진에서 한양수(티토)형제 그리고 춘천 우도성당 김찬수(알렉산델)형제, 성남 단대동성당 이재영(루시아)와 분당 마르코성당 임언빈(효주아네스), 수원 손용익(그레고리오), 서울 풍남동성당 최미혜(헬레나) 서판교성당 배정자(율리안나), 서울 삼성동성당 김태남(토마스 아퀴나스), 능평성당 김봉선(리디아), 중국 장춘 소팔가자 출신 유학생 왕르(마리아), 지도신부 베론 성지 여진천(폰시아노) 신부님 전체를 대표하는 김현욱(돈보스코) 회장님 모두 26명이었다.
그러나 서루시아 자매는 여권 불소지로 함께하지 못하였고, 당진 김문수 하상 바오로 형제는 개인 사정상 불참이며 이상인 달시시오 형제는 어렵게 출국하였으나 중국 현지에서 여권이 습기로 인하여 훼손 되었다는 이유로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되돌아오는 아픔도 있었다. 왕르 마리아는 준비관계로 지난 11일 현지에 도착하여 성령학습 준비와 청소년 영어성경학교 준비를 하였다. 김현욱 돈보스코 회장님도 국가 업무 수행상 해외 순방길이 길어 여정을 하루 미루어 23일 출국을 맞추었다. 7시 40분 우리 모두는 모여 서로 낮선 사람끼리 안사를 나누고 얼굴도 익히고 출발전 기도를 바치고 입국 수속을 마쳤다. 그러나 하나 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권 미소지자 1명, 여권 훼손으로 1명, 그리고 개인사정으로 시작도 못한 김문수(하상 바오로)형제 그러나 하는 수 없이 21명이 출발하였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 여권훼손 문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사정도 해 보고 한국 현지로 연락을 해 보았지만 현지 공항소장의 불허락으로 이상인(달시시오) 형제는 되돌아오는 아픔도 있었다. 중국 공항에서 마중나온 소팔가자 팡희봉 신부님과 왕르 마리아 큰 기쁨을 나누며 버스에 몸을 실고 목적지 소팔가자로 향하였다.
소팔가자 입구 김대건로를 달리며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김대건로 아스팔트가 너무나 훼손되어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이 많이 흔들렸다. 김대건로라는 도로 표지 비석 앞에서 우리 일행은 한참 기도를 바치고 김대건 성인의 이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여 다시 이 포장도로를 복구하리라고 다짐해 봅니다. 한국의 많은 은인들의 지원으로 더욱 빛나는 도로를 만들어 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소팔가자 성당으로 향합니다. 마을 입구에서 함께한 우리 일행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 100여m에 늘어선 환영인파 300여명과 환잉!환잉!을 외치며 함께 터지는 폭죽소리! 정말 장관이며 기적이었습니다. 3300여명의 소팔가자 주민 대부분이 한국과 중국 종교 교류를 환영하고 동네에서 마련한 부라스 밴드와 어린이들의 열렬한 환잉!환잉! 소리는 지난 18년간 성역화 사업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과 한국의 본당들의 감사함과 소팔가자 김국련신부, 주장우 신부, 팡희봉 신부님들의 열정으로 이루어 내신 90%신자화는 하느님의 역사요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님의 영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하느님의 영광임을 쉽게 알수 있는 장관이었습니다. 이어서 성당안에서 환영식 행사가 이루어지고 중국 현지식 식사를 하였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 음식에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어서 계획대로 동북 삼성 교회의 조선족 지도자들과 약속된 성령학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나 오프닝 멘트를 하시는 김박사님의 부재로 저는 인사와 더불어 모든 프로그램을 알려 드리고 기도를 시작으로 참가하신 분들의 지역교회를 확인하였습니다. 길림, 반석, 장춘, 심양, 흑룡성에서 4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7살 데레사 꼬마아이가 참석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간 선교단 20명과 함께 성령학습 소개와 1강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쉽게! 쉽게! ..........
김태남(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님의 기타반주와 박경옥(호로리나)자매와 정성숙(요안나)자매의 음악소리는 열악한 음향장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감동적이 시간이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이어지는 조선족 자매들의 율동은 항상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누군가 스승도 없이 비디오를 보고 배운 율동 동작인데도 너무나 감동적이고 가슴 찡하고 분위기를 업시키는데는 더 이상 없을 한편의 드라마임에 틀리없다.
저녁 식사 후 김민규 바오로 형제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 강의가 시작 되었다. 이어서 임언빈 효주 아네스 선교사의 ‘성령 안의 새 생활’ 강의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다.
8월 23일 화요일
오전 9시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의 ‘하느님의 선물을 받으려면’ 주제 강의와 김찬수 알렉산델 회장님의 하느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 체험담 이야기로 오전일과를 마쳤다.
23일 오후 2시부터 여진천 신부님 방에서는 고해성사가 진행되고 준비해간 메히틸다 수녀님의 웃음치료 강의를 빔프로잭트 화면을 통해 감상하고 함께 웃는 시간과 찬미찬양 그리고 율동으로 오후 나른한 시간을 기쁨과 웃음으로 준비해 보았다. 이어서 이재영 루시아 회장님의 화해와 용서에 관한 체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오후 4시 30분쯤 김현욱 돈보스코 회장님의 도착으로 우리는 마중을 나갔고 함께 모두 축제의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오후 5시 팡희봉 주임신부, 김국련신부 주장우 신부, 여진천 신부 공동으로 집전하는 선교단 방문 환영미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김박사님의 인시와 김대건로 보수공사를 위한 금일봉과 김대건 성인 동상 주변 확장을 위한 토지 매입금을 전달하고 본당 팡신부님의 기념품전달 그리고 10여가지 환영행사가 한 시간여 동안 진행 되었다. 오늘을 위해 약 45일간 연습을 했다고 한다. 정말 감동이었다. 중국의 모든 것을 다 보는 순간이었다. 김현욱 돈보스코 회장의 18년 발자취와 장춘 소팔가자 3,300여명의 주민과 신자들 모두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이어서 현공산당 간부와 당 서기 그리고 과거부터 함께 했던 당 간부들도 함께 친교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행사가 길어짐에 따라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녁 일과를 시작했다.
저녁시간 20:00 모든 조선족 교우들의 고해성사와 안수식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김국련 신부님, 주장우 신부님, 여진천 신부님 함께 하시는 안수식과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영가와 이성 통성의 기도는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순교자의 혼이 살아 숨쉬며 전구하는 시공을 초월하는 장엄한 장관이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성모님 감사합니다! 아멘!
김대건 성인님 감사합니다! 아멘!
최양업 순교자시여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와 열정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 속에 주님의 은사와 축복과 치유가 함께하는 시간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감지하는 현장이었습니다.
마지막 한서린 조선족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과 뱃노래를 부르며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나누고 한 사람 한 사람 포옹하며 해어짐의 아쉬움과 내년을 기약하는 우리 모습에는 모두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4일 아침
오전 07:00 조식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기념관과 김대건 성인 동상 앞에서 그리고 팡신부님, 김국련 신부님 수녀님들 함께 작별을 고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연길에서 온 김송란이라는 조선족 동포의 안내양과 장춘에 거주하는 조씨(조따꺼) 성을 가진 기사와 함께 7시간정도의 소요를 요하는 길을 달렸습니다. 이 길은 김대건 신부님께서 150년전 조선 입국을 위해 노력하던 길이기에 더욱 우리는 숙연해졌습니다. 오후 2시30분 연길 버스터미널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연변과학기술대학 양대언(토마스 아퀴나스) 교수님을 만나 우리는 개산툰 공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개산툰 공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중국의 엄청난 변화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중국 총리의 연길 방문으로 연길시가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사실, 곳곳에 건설 현장과 도로 확장 공사 그리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조선족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는 경이로운 현실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18년 전 개척한 공소로 한 때는 많은 신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지금을 객지로 돈벌이를 위해 다 떠나고 박 벨라뎃다 회장님과 몇분의 나이 많은 신자들이 공소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라는 소리에 우리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20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하였던 기억을 떠올리며 벨라뎃다 회장님의 긴 세월 헌신의 노력에 마음이 저려 옵니다. 벨라뎃다 회장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중국이 얼마나 개혁의 물결이 일고 있는지를 또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로 새견진 개산툰 천주교회 간판이 철판으로 되어 있었고 교회 건물의 창틀이 나무로 되어 있어 비바람에 훼손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알류미늄 삿슈로 다 바뀌어 있었던 것은 공산당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개 보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이런 시골의 교회건물에까지 미치는 엄청난 중국의 변화의 물결에 감사와 함께 북한의 문제도 조심스럽게 전망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 다른 일정에 밀려 개산툰 공소 벨라뎃다 회장님을 비롯 신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공소 신자들의 삶의 모습에 처음 방문한 선교단 일행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오후 5시 용정성당에서 본당 신부님과 여진천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를 마치고 양로원 현황과 용정성당의 설명을 듣고 연길로 돌아오는 길에 석양에 보이는 일송정을 바라보며 이일송정 푸른 솔은 넑어넑어 갔어도...... 일제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을 생각하며 힘껏 불러 보았습니다. 양교수님과 함께 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일 일정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찬미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8월25일(목)
07:30분 오늘의 공식 일정을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잠시 후 우리는 연길 성당을 둘러보기 위하여 들렀다. 염 필립보 신부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침 오늘 연길 교구 신부님들의 피정이 이곳에서 열리고 잠시 후 08:00에는 장례미사가 있다고 하여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였다. 곧바로 우리들은 도문시에 있는 훈춘 성당을 향했다. 훈춘 성당 신부님도 이곳 연길 성당에서 있는 피정 관계로 모든 것을 수녀님들에게 일임하고 부재중이었다. 10시쯤 훈춘성당에 도착하였다. 훈춘 성당 앞길은 김대건 성인께서 한구에 입국을 위하여 다니셨던 길이라는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꼭 들리는 곳이다. 이곳 신부님은 또 한국인 최초 조선족 사제이시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여진천 신부님의 집전하에 본당 수녀님들과 미사를 하고 경춘 공소를 향했다. 참 세상은 넓으나 좁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님의 8촌 누이를 만났습니다. 한국 땅에서도 만나기 어렵던 누이 수녀님을 여기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한 동안우리는 기념 촬영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압록강 최고 가까이에 있는 경신 공소를 향했습니다. 20년간 경신공소 회장을 맡고 계시는 염상호(요셉) 공소회장님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는지라 더욱 그랬습니다. 한 때는 두만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으며 40대에 풍을 맞아 주님의 축복속에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말이 좀 어눌하기는 하지만 경신 공소를 소개하는 말씀 속에는 산 역사가 묻어 있었다. 한 때는 2000여명의 신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한국과 객지로 다 돈벌이를 떠나고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신앙생활을 못한다고 하면서 지금은 20여명의 신자, 그것도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공소를 지키고 있다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5년 2006년 방문 때 허물어져 가는 공소의 모습이 새롭게 단장된 것도 중국 정부에서 지원해 준 것이라고 하니 개산툰의 모습과 같이 중국 정부의 엄청난 개혁 개방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염 요셉 회장님은 개신교의 물질적인 공새를 통한 선교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도 많이 방문해 주시라는 말씀과 활성화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도 계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별을 하였습니다. 수녀님들과 함께 도문시에 있는 전주 비빔밥집으로 향했습니다. 도문시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조중 경계선에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을 바라보며 통일의 염원을 기도합니다. 두만강 상류를 거슬러 국도를 따라 북녘땅을 바라보며 한참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듯 용정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제 항거 시인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들러 영암동 천주교회를 향했습니다. 김박사님과 양 교수님의 땀과 눈물로 개척된 공소가 패허처럼 되어 있는 이곳 한 10여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때는 신자들이 함께 모여 찬미와 찬양을 드리던 이곳이 폐가로 되어있는 모습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함께 찬미와 찬양을 드립니다. 언젠가는 또다시 이곳 영암동 성당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또다시 찬미와 찬양의 노래 소리 울려퍼질 것을 희망하며 무거은 발길을 돌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근황을 조금 알고 싶어 물어 보았으나 얼른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양교수님은 이곳 영암동 공소를 금년에 다시 정비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영암동 공소의 활성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교를 방문하고 용정시의 역사가 있는 용두레 우물을 둘러보고 숙소를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농협 공판장을 둘러 연길의 농산물도 구경하였습니다.
영암촌 공소 옆 윤동주 생가에서 선교단 일행
8월 26일(금)
아침5시 모두 일어나 연길 새벽 시장을 향했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다. 정말 1960년대 말을 회상하게 만드는 시골 5일장의 풍습니다. 떡매로 찰떡을 치고 다듬어지지 않은 물고기 개고기 그리고 잘 정리정돈되어 판매되는 수많은 야채와 과일들 그리고 한끼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빵과 꽈배기 순두부 책들까지 그리고 건강을 위해 혈압을 측정해주고 안마를 해주는 곳곳의 진풍경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약간의 먹거리들을 준비하고 개천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였다. 아침 식사를 모두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이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향하는 일정에 모두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연길시를 벗어나며 가이드의 맨트가 있었다. 이 정도 날씨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번의 일기 변화가 일어나는 백두산 날씨라 많은 기도를 해야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1시경 이도백화 고려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백두산 등정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더디어 30분 정도 달리니 백두산 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백두산 서파,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잠시 걷다보니 장백산이라는 표지판를 확인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달리니 백두산 2700고지까지 간다는 짚차를 타는 곳까지 왔다. 7명 내지 11명이 나누어 타고 10여분을 돌로 포장되고 한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여기가 천지를 가기 위한 마지막 주차장, 어떤 자매님은 멀미를 했음에도 천지를 볼 희망과 기대로 걸음이 분주하다. 드디어 150m정도 올라가니 환하게 열려있는 천지를 보게 되었다. 모두 하나같이 환호성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도 7번의 등정 중에 2005년과 2006년 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맑게 백두산 전경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벅차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도록 열려 있다는 자체가 감개무량하였다. 여기서 잠시 백두산 천지를 못보고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지었다는 이 생진 선생님의 시가 생각난다.
백두산 정상 대피소 앞 선교단 일행
장백폭포 앞에서 선교단 일행
백두산 입구에서 선교단 일행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어
나라고 네 얼굴 보고 가라 하겠네만
널 보고픈 마음 장백송 가지에
새소리로 두고 간다.
그래도 다시 올 기회 있으랴만
또 와서 네 앞에 선들
그때라도 네 얼굴 보여주겠니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북경 천진 장춘으로 온 것이
너의 비위 거슬렸다면 이 다음엔
개성 원산 청진으로 돌아오마
그때는 맑은 물 고운 몸매 바라보고
언덕길을 뛰어내려 얼싸 안고 울리라
아니면 너 혼자 외로운 날
새 한 마리 날아와 네 몸 스쳐가거든
그게 님이라고 꽃처럼 반겨라
그게 님이라고 꽃처럼 반겨라.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천지를 몇 번씩이나 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인가?
감사와 찬미 영광 우리 모두의 마음은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어서 장백폭포의 장관을 구경하였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지만 침시으로 인하여 골이 메이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70m정도의 장관을 이루던 폭포 줄기가 많이 짧아진 듯한 느낌이다. 오르는 길목에 김이 올라오는 온천의 장관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곳에서 옥수수를 삶고, 개란을 삶아 판매하는 관경 또한 이색적이다. 폭포를 다녀와 우리는 온천수에 삶은 개란과 옥수수를 먹으며 시원한 개곡의 물소리와 함께 관상의 상태에 있는 일행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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