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방선교 이야기/대한민국 1호 사건,사고

[대한민국 제1호] 1961년 16개 대학에 학도군사훈련단 설치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0. 10. 29. 15:47

 

학군사관(ROTC) 제도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독립 직후인 1819년 버몬트주에 있는 한 대학에 군사학이 정규교과목으로 설치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 예비역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였다.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를 직역하면 '예비역 장교 훈련단'이란 뜻이 된다. 즉, 예비역 장교를 육성한 뒤 곧바로 소집·해제해 민간인으로 생활하도록 하다가 유사시에 동원해 군사 작전에 투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1916년 윌슨 대통령이 국가방위법에 서명함으로써 정식으로 ROTC 제도가 출범했고, 1948년엔 정규 현역 장교 양성 제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4월 제58차 국무회의가 '학도군사훈련단(학훈단)' 설치안을 의결함에 따라 그해 5월 1일부로 ROTC 제도가 시행됐다.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경희대·중앙대·동국대·한양대·건국대·경북대·부산대·동아대·전남대·전북대·조선대·충남대 등 전국 16개 종합대학에 학훈단이 창설됐다.

대학별로 대학성적과 체력·면접·신원조회 등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3175명을 후보생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그해 6월 1일 각 대학 학훈단 창단과 함께 대한민국의 첫 ROTC 후보생이 됐다.


후보생들은 대학 3~4학년 2년 동안 총 702시간의 교육·훈련을 받았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350시간, 여름방학 때 4주간에 걸친 입영훈련이 352시간이었다.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서울지역 ROTC 1기 후보생 1500명이 행진에 참여해 ROTC의 존재를 알렸다.<사진>

1963년 2월 서울 육군본부 광장에서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ROTC 1기 임관식이 열렸다. 이때 임관한 ROTC 1기생은 2642명이었다. 1기 중에서 장군까지 진급한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은 ROTC로서는 처음으로 대장까지 진급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박재윤 전 아주대총장, 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박규직 경기학원 이사장,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 등이 ROTC 1기 출신들이다. 학도군사훈련단이란 이름은 1971년 학생군사교육단으로 바뀌었다.
 

한영실 숙대총장 "ROTC 함성이 캠퍼스 확 바꿀것"



"여대 ROTC 설립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은 20일 임기 2년을 맞아 마련한 간담회에서 숙명여대 학군사관후보생(ROTC) 시범대학 선정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예전엔 6ㆍ25를 겪은 부모 밑에서 자라 다들 자연스레 안보 교육을 받았어요. 저희 할아버지도 6ㆍ25때 전사하셨고 어머니도 따로 저희들을 불러다 안보 의식을 강조하셨죠. 어머니가 어릴 때 아이들에게 안보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참 중요한데 요샌 그런 교육이 약해져 있어요."

한 총장은 숙명여대가 다른 여대를 제치고 국내 1호 ROTC 시범대학으로 선정된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이 군대를 통해 정신무장을 하고 국가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 캠퍼스 분위기도 쇄신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개인 학생들이 똑똑해서 노벨상을 타면 뭐하나요. 나라를 위한 마음이 없다면 의미가 없죠"라고 말했다.

현재 숙명여대엔 지난해 여름 여군장교 동아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벌써부터 교내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한 총장의 얘기다.

그는 "체육관에 모여서 제식훈련을 한다고 해서 가서 봤는데 너무 잘하더라고요. 저한테 인사를 할 때도 늠름하게 '충성'하면서 지나가고, 밥을 사주는데 후식으로 냉면을 시켜먹어요. 군에 계신 분들하고 얘기를 나눠봤는데 여군이 남자 못지않게 잘한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한 총장은 이어 "맹자가 자주국방에 대해 '죽기살기로 무장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했다는데 요새는 안보 의식이 많이 부족하다"면서 "이번에 30명 숙대 학생들이 ROTC가 되는 건 안보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4년 임기 가운데 딱 절반을 마친 한 총장의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한 총장은 숙대의 국제교류를 첫 손에 꼽았다. 그는 "40년 뒤 우리 학생들이 무엇을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총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숙명여대는 베트남 하롱베이에 한국문화원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베트남 자매학교 학생들을 초청하고 내년에 교육할 20명의 현지 여학생을 숙명여대 정식 학생으로 선발했다.

직접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한 한 총장은 "이들과 직접 만나서 교류하고 한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한다면 우리 학생들이 40년 뒤 아시아에서 리더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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