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방선교 이야기/해외선교(중국)

중국 당산교구, 한단교구 선교 일지(2010년1월15~22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0. 2. 12. 16:36

구 

2010년 1월 15일(금) 오전 9시 선교단 일행 인천국제공항 13번 출구 집결

 

 

지난 1월 7일 북방 선교모임에서 잠깐 얼굴은 모았지만 각 교구에서 모인 사람들이라 모르는 사람도 있고 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주모경을 바치고 금학 항공 여행사 박종훈 사장님의 안내에 따라 출굴 수속을 마쳤다. 항상 그랬지만 또 기타는 특수 화물로 부칠 수 밖에 없었다. 면세점에서 구경을 하고 우리 일행은 커피와 라면, 사탕 그리고 중국 주교님과 신부님들께 드릴 홍삼차와 간단한 선물들을 구입한 후 10:50분 탑승을 마치고 중국 천진을 향했다. 천진 도착 11시55분(사실 중국과 1시간 시차 때문)에 천진항에 도착을 했다.입국 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염신부님께서는 전화를 주셨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우리 일행은 입국 수속을 마치고 환영나오신 염신부님과 중국 윤 신부님, 그리고 묘 수녀님과 평신도 회장님의 환여을 받으며 천진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선교단 일행은 승용차 세 대에 나누어 타고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당산을 향했다. 나느 처음이 아니지만 다른 일행들은 모두 처음인지라 거리감각이 없는 듯 했다. 중간 휴계소에서 점식 식사를 하고 다시 안사르 나누었다.

 

 

 

 맛있는 휴게소 점심과 함께 당산을 향해서 달렸다. 당산 여옥호텔에 5시가 넘어서 도착을 했다. 여장을 풀고 주교좌 성당을 들러 류경화 주교님을 방문하였다. 90세의 연세에도 지난번 방문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한국 교회에 관하여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와 古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연세에 비하면 너무나 기억력이 좋으시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신다. 구면이지만 하나하나 기억하시는 주교님의 맑은 눈빛에 주님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당산 교구 방건평 주교님이 회의에 참석하시어 내일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오늘 저녁은 중국 공산당 종교국 국장을 모시고 우리가 한턱 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선교단 일행은 석식을 위해 중국의 풍습대로 초청자의 만찬을 위해 안내에 따라 정통 요리집을 행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많은 음식 때문에 항상 주문은 내가하는 편이다, 그동안 조금 많이 다녔다고 대충 한국 사람들의 입에 맞는 음식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다른 중국 신부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술도 한 잔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염신부

과 함께 내일의 일정을 이야기 하고 숫소로 돌아와 주님께 감사와 우리 모드를 봉헌하는 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하였다.   

 

1월 16일(토)

 

   우리 선교단 일행은 호텔의 조식을 마치고 승요차편으로 주교좌 성당에 도착 10:00 백승애 베로니카의 찬미를 시작으로 이틀 동안의 피정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도착할 때 이미 좁은 공간속에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 주교님이 계시지 않기에 류 주교님께서 직접 강복으로 시작을 해 주시고 나는 감박사님을 대신하여 나는 인사를 올리고 선교단 일해을 한 사람 한사람  그리고 모든 일정을 소개하였다. 처음 시작으로 백승애 베로니카의만국 언어인  웃음치료와 성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하였다.  사실 이곳은 추운 겨울철인데도 온도를 올릴 수 있는 난방 기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령에 감도되어 초롱초롱한 누빛은 물론 신부님, 수녀님까지도 열심이었다. 첫 강의로 백승애 베로니카 선교사가 '세미나 소개' 이어서 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주제로 오전 일정을 마쳤다. 나는 지난해에도 강의를 한 바가 있어 한국 교회의 성장 배경 속에는 중국 신앙선조들의 지대한 선교 열정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있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 보람으로 이제는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를 위해 내어 줄려고 왔다고 주국 교회와 신부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학습 일정이 시작 되었다. 오후에는 정말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힘께하였다. 우리가 탔던 차량 접촉 사고로 조금 늦게 시작되었는데도 한 사람도 동요없이 기다리는 교우님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노래와 율동 우리모두는 합창단과 율동 봉사자가 되었거 특히 성령쇄신 봉사회 오랬동안 봉사해 오신 김인선 소화 데레사님의 율동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염신부님의 통역 강의에 메모를 열심히 하는 신자들도 많았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많은 사람들이 개인별로 질문을 해 오고 신앙삼담을 하는 모습 정말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오후 시간 백승애 베로니카 선교사의 '구원자 하느님 강의' 이어서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의 '성령안의 새로운 삶'이란 주제 많은 강의 경험과 풍부한 처험으로 살아있는 강의를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 방 주교님께서 돌아 오셔서 우리 선교단 일행은 김박사님의 친서를 전달하고 함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방 주교님께서 감사드리고 많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면서 주교로서 너무 감사드리고 행복하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주님, 당신의 영광이 중국 당산 까지 우리 선교단의 힘으로 미치니 주님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우리 일행은 성당에서 마련하신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가까운 백화전 구경도 하고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감사드리며 내일을 준비하였다. 내일은 주일이다. 오전 미사를 시작으로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1월 17일(주일)

   08:00 방 주교님의 미사 집전으로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넓은 성당 내부 난방 기구 하나없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의 온기로 미사는 시작되었다. 정말 추웠다. 온도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모르지만 영하 10도는 넘을 것 같은데 참 많은 사람들이 동요없이 어린이들까지 모두 정성들여 미사에 참여하는 모습 과연 대단하다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모두 덜덜 떨고 있는 기색이다. 영성체 후 백승애 베로니카 선교사님의 묵상곡 노래가 걱정이다, 손이 얼어붙어 기타는 가능한지 노래가 나올련지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는 또다시 추운 날씨와 관계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는 순간이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미사를 마치고 또다시 강의실로 향했다. 2일차 오전시간 많은 사람들이 가득 채웠다. 청주교구 김민규 바오로 형제님의 강의, 감전 사고로 엄청난 시련을 겪고 다시 태어난 바오로 선교사님의 강의와 치유 기도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실제로 치유받았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안수 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면서 이를 토대로 중국의 교회가 부흥할 수 있고 열정이 넘치기를 다시 기도해 봅니다. '주님 이런 열정이 지속되는 중국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식을 마치고 다시 오후 학습시간

 

 

이제는 백승에 베로니카 선교사님의 웃으치료시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노래와 율동 좁은 공간이지만 정말 성령충만, 은혜충만, 감사충만, 주님! 감사합니다.

 

 

이어서 김인선 소화 데레사님의 인생 이야기와 하느님의 역사, 김인선 소화 데리사님은 지금도 당뇨로 인하여 눈과 귀 모두가 정상이 아니고 누군가 다시 통역헤 주어야 하는 그런 븐이다. 오랬동안 성령쇄신 종사회를 통하여 많은 하느님 체험 이야기 그리고 주님의 치유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였다.

 

 

이어 정신화 라파엘라 선교사님, 현제 신학원 1학년에 제학중이며 오랬동안 교직 생활을 해 오시면서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파 이번 합류하신 이야기, 친정 어머니, 시어머님 이야기로 많은 감동을 주셨다.

 

 

끝으로 고은상 로베르또 형제님의 익살스런 강의와 중국 사람들에게 노자 이야기를 하는 모습 그리고 '두메꽃'을 부르며 감동을 고조시키는 익살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하였습니다.

 

 

끝으로 주교님과 윤 신부님 염신부님의 안수로 모든 학습 일정을 마쳤다.

 

 

'주님께서는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 선교단 일행은 마침 예식으로 방 신부님을 모시고 인사말씀을 듣고 우리 일행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중국 머그컵을 선물하셨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선교단 일행 대표로서 김박사님을 대신하여 준비하여 온 선물을 드리고 김박사님께서 한국에서 중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고 여러분들께 많은 성원을 보내고 계신다는 말씀과 그동안 많은 협조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류주교님, 방주교님, 그리고 본당 동신부님께 감사드리고 함께하신 교구청 많은 신부님들께 감사드리며 한국 교회 곳곳에 많은 열성적인 중국 교우님들을 전할 것이며 기도속에서 만나고 다시 좋은 프로그렘으로 찾아뵙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쳤다. 저녁에는 방 주교님의 초대와 교우님의 초청으로 맛나는 중국 전통 요리로 식사를 하고 그간의 일정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소개를 올리고 작별을 고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내일 한단으로 떠날 체비를 차리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설레임과 주신부님을 만날 기대감으로 기도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1월 18일(월) 

아침 7시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염신부님께서 마련하신 승용차 편으로 버스터미날을 향햐 달렸다.  고속 버스도 아니것이 직행버스도 아닌 것이 8시간을 달려야 한다고 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달릴 거리가 없다. 8시간을 달리는데 산 하나를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중국 대륙, 고속버스에는 기사가 3명이 타고 교대로 운전하는 모습, 모두가 생소하고 고속도 중간에서 사람을 태우기도하고 내리기도 하는 이해안 되는 모습, 후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또 다시 달린다. 휴게소에서 염신부님께서 준비한 음식을 먹다가, 졸다가, 깨다가  하면서 안개인지, 황사인지 햇볓도 볼 수 없고 끝이 없는 중국 대륙이었다. 나는 처음이 아니니 그렇다 치교 다른 일행들은 그저 말이 없었다. 오후 5시쯤 한단 고속도로 톨 게이트 입구에서 내려 주 신부님께서 준비해둔 승용차로 우리는 갈아타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신부님과 교우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식사를 위하여 밖으로 나갔다. 한국식 샤브샤브요리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주신부님 염신부님과 함께 내일 일정을 위해 논의하였다. 우리가 외국인으로 처음이기 때문에 공산치하에서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것이 사실이다. 주신부님과 염신부님, 그리고 형제님들은 우리 방에 모여 주신부님께서 준비하신 술을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한단 교구는 인구 700만, 천주교 신자 15만명, 사제 67명이라고 한다. 

주신부님은 2007년 중국 한중 교구 주교좌 성당 주임신부님으로 계실 때 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어 너무 친근하고 인품이 너무 대단하시고 영성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2008년 당신의 교향인 한단으로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2007년 한중 교구에서 만나 너무 행복한 시간이어서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하신다. 주 신부님은 참으로 조용하고 몸으로 행하시는 신앙인이며 감박사님을 너무 존경한다고 하시면서 감박사님의 함께오시지 못한 것을 뭇내 아쉬워하셨다. 이렇게 한단의 첫날밤은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청하였다.

 

1월 19일(화)

우리 선교단 일행은 조심스럽게 주 신부님의 일정에 맞추어 행동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2시간 정도 달려서 구세주 성당이라는 곳에 들렸다. 그곳에서는 40여명이 혼인강좌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러 주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그곳은 그래도 컴퓨터로 빔을 통해서 강의를 하고 계신것을 볼 수 있었다.

 

 

이어 우리는 2시간 정도 더 달려 대명 주교좌 성당을 행했다. 그곳은 100년이 넘은 성당이며 예유물들도 있었다. 옆에는 소싱학교가 있어서 방문하였다.

 

 

호점민 원장 신부님, 꼭 젊은 청년 같았다. 많은 어린이들(대신학교 가기전 13세18~9세) 정도 어린이들이 80여명 생활 한다고 한다. 원장실에 들러 담소를 나누고 신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빵 한덩어리, 우리로 치면 된장국 한 그릇 이것이 전부다. 한창 때인 청소년들의 건강이 우려된다. 원장신부님의 말을 빌리면 한사람 교육하는데 드는 비용은 년 중국 돈3,000위엔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집에서 조달되는 돈은 년 1,300위엔 정도, 때로는 한 푼도 못내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곳을 다니며 모금 운동을 해서 운영해 간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예정에 없던 기부금을 드리고 학생들과 함께 성당에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훌륭한 사제들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현제 83명이 있지만 대신학교까지 가기는 30여명이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선생님들을 초빙히여 모든 교과 과정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탁구도 쳐 보고, 농구도 해 보고 한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연로하셔서 양로원(교구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계시는 양 샹하이 한단교구 주교님을 방문하였습니다. 김박사님께 주신 친서를 전달하였는데 88세의 연세에도 안경도 없이 다 읽으시는 모습,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 "한국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한국 교회, 나라는 작지만 교회는 너 무 큰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중국 교회는 정부의 관할에 있어 아직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없지만 이곳은 중국에서 비교적 좋은 교구에 속합니다. 남방에 비해 가톨릭이 강하고 각 교구마다 정황이 다르지만 교회에서 학교를 차리려면 정부에서 막고 있으며 유치원만 가능하며, 이곳 병원은 한단 교구 병원인데 큰 병원에 속한다고 하셨다. 전 교구를 대표해서 여러분에게 감사하며 4년 전(2007년) 중국 공산당 후계자를 배양하는 학교에서 당원들도 종교에 입회 할 수 있다는 결정이 나고 지금은 공산 당원도 신앙을 가져도 좋다고 천주교회 입회를 허가한다는 건이 내려와 있으나  아직 발표는 안 했다고 하셨다." 이곳 대명의원 원장은 장 신부님이시며 전 중국 교회 병원에서 가장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서 바라보는 천주교회 많은 말씀들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간 홍삼차와 금일봉을 드리고 기념 촬여을 하고 쾌차를 기원하면서 기도를 바치고 강복을 받고 나왔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주신부님의 본당 신부님으로 계시는 손 신부님을 만나러 갔다. 예수 성심 성당 이곳에서 우리는 4월에 주교품을 받으신다는 손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손신부님께서는 "본당 신부로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구속 스럽게 하지 마시고 자유스럽게 얘기하자며 말씀하셨다. 이미 손 신부님께서는 신자 3만명 정도에 공소 200개를 7며의 신부님들이 관리하고 계신다고 하시며 한국에서 시행하는 소공동체 운동을 철저히 시행하시면서 권한 위임도 철저히 하신닥 말씀하신다. 1978년 부터 정부 종교국의 허락을 받고 선굘르 시작하여 선교사, 선생님, , 각 회장들을 탄생시켜 미사 중심으로 시작하여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 본당 신부님께서 사목 계획을 잡으시면 회장단 그리고 각 지역 회장단이 신부님의 뜻을 받들어 잘 이행한다고 합니다. 이 본당 출신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열심이고 잘 사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없이 기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특히 자랑스러운 것은 성경 공부를 통해 신앙을 다지고 주님 사랑을 몸에 담는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초대 신부님이신 손문원 신부님의 유지를 빋들오 더욱 열심히 하시려고 노력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주제로 선교 대회도 열고 길거리 선교를 통해 지난 2년동안 80여번의 선교활동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도 받으시고  교구의 수녀님 몇 분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이 지역만 해도 년 500여명의 새신자를 교회로 모셔왔다고 자랑이십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선교 이야기와 소공동체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한국으로 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씀히시며 꼭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우리는 길을 달려 주신부님의 본당으로 행했습니다. 이미 캄캄한 밤이라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지만 잘도 달립니다. 오후 7시 이미 주신부님의 본다에는 많은 신자들이함께 하며 미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 신부님, 염 신부님 공동 집전으로 미사를 마치고 주신부님의 소개로 신앙 학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날씨는 무척 추운데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추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어찌 현지 사람들은 꼼짜도 않고 눈망울이 너무 초롱초롱하였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어른,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는 인사말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과 주신부님을 만난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신 주님의 체험을 이야기 하고 백승애 베로니카의 찬미를 함께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김민규 바오로 형제님의 체험담 그리고 본당 청년들의 환영 퍼레이드겸 길거리 선교단의 춤과 노래솜씨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사실 녹음기나 음반기기가 없어 헨드폰의 음악을 마이크에 맞추어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현지 젊은이들의 열정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무튼 많은 아쉬움 속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우리는 모두

마무리를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정말 중국 어디를 가더라도 난방기구 하나 없이 열성적인 중국 교우들을 만날 때 우리는 너무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한번 주님께 감사드리며 중국 교우들에게도 편리함을 위해 기도해 봅니다. 우리는 늦게 돌아와 내일 마지막 일정을 주님께 맞기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1월 20일(수)

 

 

 

 

 

   오늘 우리는 주신부님의 고향 주씨 집성촌을 향했다. 주신부님의 고모 아들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우리는 22세,23세 신랑 신부의 중국 전통 혼례를 참가할 수 있었고 축가도 불러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잔찻상으로 점심을 먹고 주 신부님의 형제들과 어머님을 방문하여 인사드렸다. 고향 공소를 들려 기도를 하고 금일봉도 전달했다. 주님의 신비로운 손길이 정말 옹기장이임을 실감하며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마련하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1월 21일(목) 

 

 

 

 

  오늘은 한단을 떠나 북경을 향하는 날이다. 아침 5시 우리 일행은 주신부님께서 마련하신 승용차 편으로 한단 역 7시 북경행 기차를 타기 위하여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는 2층 기차(우리는 2층 좌석)를 타고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기차였다.  12시50분 북경 서역에 도착하여 가이드를 만났다.가이드와 만나 오랬만에 한국 김치를 먹어볼 수 있는 식당에서 배불리 맛있게 먹고 자금성과 천안문 관광을 하였다. 2008년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는 노란색 택시가 많은데 이는 손님을 황제처럼 모신다라는 의미란다. 관관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향했는데 정말 호텔이 너무 멋있었다. 우리 모두는 한 자리에 모여 기도를 바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혹 서로 미흡한 점이 있으면 용서하고 이해하기로 하고 해어져 염신부님과 남자들은 술을 한 잔 하였다.

 

1월 22일(금)

 

 

 

오늘은 선교 마지막 날, 만리장성 관광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뿔싸 웬 바람이, 호텔에서 우리는 염신부님과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동안 통역과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신 염신부님께 감사드리며 정말 건강하고 훌륭한 사제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 많은 선교 횔동은 물론 조선족으로 사제로서 교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람에서입니다. 어제 과음한 탓에 조금 늦기도 하였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만리장성 케이블카도 뜨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수확여행 코스를 따라 아래에서만 구경을 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2008년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게 인천국제 공항에 오후 6시4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성공적 선교를 위해 기도해 주신 김현욱 요한 보스코 회장님께 감사드리며 17년의 선교 여정 속에서 몸이 불편하여 함께하시지는 못하였지만 모든 것 덕분입니다.  하루 빨리 쾌차히시어 많은 중국인들이 기다리는 중국에 하느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10년 1월 28일

김종두 스테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