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샘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1964 ~ )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21. 1. 2. 21:41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1964 ~ )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 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서로 견주면서 순위를 매기는 버릇이 ‘동물의 왕국’까지 전염됐나 보다. 모든 경주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니 낙오하지 않도록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데 이 경주에 어찌된 영문인지 자격 미달로 보이는 바위까지 당당히 출전을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바위가 경주를 하다니?
그렇다. 바위는 자기 식으로 가만히 앉은 채로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황새가 날고, 말이 뛰고, 달팽이가 기고, 굼벵이가 구르며 저마다의 몸짓으로 있듯이 바위 역시 자신의 몸짓으로 그 자신이 되어 해를 맞는다.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점에서 이 경주에선 그 누구도 낙오하지 않았다. 모두가 우승컵을 들었으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니 황새나 말처럼 날고 뛰는 재주를 가져서 빠르다고 자랑할 이유도 없고, 달팽이나 굼벵이처럼 느리다고 한탄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 있을 때 누구나 새해 첫 날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