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님
대림 제2주간 수요일
<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복음: 마태오 11,28-30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정착해 사시는 많은 한국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이 분들은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고, 혹은 두려워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외국에 머무르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들이,
자녀의 교육, 지나친 경쟁주의에서 벗어남,
여성의 경우는 시댁과 먼 것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여기서 살면 그나마 비교당하지 않아서 좋아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 보면 길거리에서 자신만 유행에 뒤쳐진 옷을 입고 있어
사람들이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또 남들보다 못한 직업이나 재산 등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엄청나게 비교를 당한다고 느낍니다.
외국에 살면 그나마 그런 비교를 당하지 않는 것이 참 편하다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를 당한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욕에 많이 들어가는 동물이 당연이 ‘개’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개 같이’ 취급하는 것이 가장 큰 모욕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동물과 같은 급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같은 수준으로 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보다 낫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모욕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온전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보다도 못하게 취급당하시고
그렇게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모욕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느님께는 커다란 모욕입니다.
사람이 개가 되는 것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이 훨씬 낮아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개는 만들 수 없지만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실 수 있는 사람이
이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입니다.
인간이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그 장난감이 사랑스러워 자신도 장난감이 되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인간과 비교당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을 예수님을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한 사람 취급을 하였고
급기야는 이 세상에 있는 재물보다도 더 못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부자는 예수님께서 완전해지려거든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지만
이 예수님의 말씀을 썩어 없어질 재물보다도 못하게 여겨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당신이 돈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게 될 것임을
‘못된 포도원 소작인들의 비유’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와 돈을 비교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더 좋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캐오처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이 세상 모든 영화는 쓰레기처럼 여겨져야 합니다.
태양이 뜨면 별들은 사라집니다.
빛 자체이신 하느님이 어떻게 생명도 없는 피조물들과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비교당하는 것이 괴롭다면 하느님께서야 당신이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사랑한
인간들이 당신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마치 밭에 묻힌 보물을 얻기 위해 가진 재산을
다 팔아야하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하나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분을 그나마 조금이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분이 주시는 십자가와 이 세상이 주는 영화를 비교하고
저울질 하며 살았다면 마지막 날 당신을 사랑했다고 어떻게 고백하며
하늘나라에 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독서에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란 뜻의 이름의 천사가 ‘미카엘’입니다.
그래서 미카엘은 사탄을 칼로 쳐 이기는 갑옷을 입은 힘센 천사로 그려집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이들을 미카엘 천사를 보내어 이겨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합니다.
절대 주님과 비교대상이 되는 것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이 세상에서 그 뜻을 따르는데 거스를 유혹거리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이 세상의 금송아지와 비교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그분으로부터 나온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더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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