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7/28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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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깊어질수록 버려야 하는 것.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사귀어도, 오랜 시간 함께 살아도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부부로 평생 살아도 남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짧게 사귀었어도 그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엔 많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관계란 수수께끼는 참으로 풀기 어렵고 신비롭기만 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의 깊이에 관한 비유말씀입니다.
하느님이신 농부가 말씀의 씨를 뿌렸는데 어떤 사람은 길과 같아서 아예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돌밭과 같아서
처음엔 뜨겁게 받아들이지만 이내 식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잘 받아들이다가도 세상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의 욕망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관계의 깊이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그분과의 관계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인 것입니다.
반면 말씀의 열매가 맺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같은 수준으로 맺는 거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삼십 배, 어떤 사람은 육십 배, 어떤 사람은 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수준차이가 있을 텐데 이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관계의 깊이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관계에서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야할까요? 관계의 깊이에는 단순한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관계는 마치 소금인형이 바다 깊숙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인형은 바다 속 깊이 들어갈수록 자신이 녹아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지구인이 우주로 나가려면 최소한의 몸통만 남겨놓고는 다 떨어뜨려 가볍게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농부가 뿌린 씨가 땅 속에서 죽어 그 땅과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타인만 자신에게 맞춰달라고 하면 관계는 그 거리에서 멈추게 됩니다.
관계는 아버지가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서로’ 상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명만 자신을 버린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는 쌍방의 옷 벗음이요 쌍방의 죽음입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는 그분께서 이미 하느님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벗어던져야합니다.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복어를 먹을 때 복어가 그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독이 든 부분을 빼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가진 채 그분 안에 들어가면 그분이 위험하게 되시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가진 채 그분과 친밀해지겠다고 하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분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지만 그 죄를 계속 품고 있다면 그 죄까지 당신 품안에 받아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삼구(三仇)’, 즉 세속-육신-마귀(교만)를 끊지 않으면 당신과의 어떤 친밀한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벗어야 할 옷이고 죽여야 할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건 이웃에게 다가가건 자신을 십자가에 버리지 않으면 친밀한 관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관계의 친밀함은 나를 벗어던진 만큼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주 만난다고 관계가 깊어지지 않고
내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얼마나 벗어던졌느냐에 따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런 관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맺히는 열매들입니다.
어떤 신부님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인데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구타했다고 합니다.
임신한 아내를 구타하여 아기까지 뱃속에서 검게 죽었고 유리창으로 내려쳐서 수십 바늘을 꿰매야 했다고 합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참았는데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 자매님은 자신이 이혼하는 것이 이젠 절대적으로 남편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혼 전 마지막으로 해외에 있는 성모님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고행의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신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힘을 얻고 공항에 도착할 때 남편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술과 도박을 끊고 며칠 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두 분은 아주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미국에서 뇌종양인 아기에게 입을 맞추었는데 암 세포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관계 맺을 준비가 안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벗어던지지 못해서 상대도 움츠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내 자아를 먼저 벗어던져야합니다.
먼저 내가 좋은 땅이 되어야 관계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친밀함은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내 자신을 온전히 깨어버린 얼마나 비옥한 땅인지의 의해 결정됩니다.
나는 하느님에게나 이웃에게나 깊이 들어가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진 소금인형과 같습니다.
소금인형만이 바다와 하나가 됩니다. 바다는 소금인형을 품고 소금인형은 바다가 됩니다.
이런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많으면 세상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주님이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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