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6/9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7. 6. 10. 07:41

정지웅 요셉 신부님 강론 글입니다.
6/9 연중 제9주간 금요일
http://cafe.daum.net/suwonmr/5Tg7/2083

       겸손한자가 잘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정말 성경에서도 다윗의 별이라든가 다윗의 왕좌를 영원히 이을 메시아가 예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까지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 세 사람에게 율법학자들이 메시아가 날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일러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런 믿음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마태오는 그의 복음에 처음부터 예수님의 족보를 쓰며 다윗의 후손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없음을
다윗 스스로가 쓴 시편을 근거로 들면서 증명합니다.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메시아는 겉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이렇듯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는 이들도 찾아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분을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여 성경을 적용시켜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모자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한 부분을 떼어내서 전부인양 말한다면 오류에 빠져 이단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더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 참된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장기나 바둑을 직접 두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제 삼자가 되어 훈수를 두면 잘 보이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더 잘 보이게 마련입니다. 산 속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정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파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욥은 아무 죄도 없지만 수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당시의 믿음으로 보면 의인이 고통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까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욥을 나무랍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뜻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완전한 진리는 오직 하느님 한 분입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나와 또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하느님의 절대적 진리 앞에서는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한 마음으로
삶과 사람을 보고 이해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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