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6. 10. 1. 14:58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작아짐이 갖는 힘
 
 작아야 강하다는 이 신비를 설명해 주기 위해 성녀 소화 데레사는 이런 예화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한 왕이 사냥을 나가서 하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냥개가 그 토끼를 잡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미 희망을 잃은 작은 토끼는 갑자기 뒤 돌아서서 왕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왕은 자신에게 뛰어든 그 토끼의 커다란 신뢰를 보고
그 작은 토끼를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토끼를 잡지 못하게 명하고 자신이 직접 토끼를 보살피기로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이 사냥개처럼 우리에게 닥쳐올 때,
우리가 심판관의 품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다면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보셨습니까? 당연히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성체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보셨습니까?
당연히 보셨을 것입니다.
 
“나를 본 것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하셨기에,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아버지를 보지 못했고,
또 많은 이들이 성체를 보면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위대한 분은 더 커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클수록 좋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작을수록 더 위대한 것이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작아졌기에 큰 분에게 안길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영성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이와 비슷한 비유를 하나 더 들어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생각하면 상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서서 엄마에게 가려고 계단을 오르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린아이는 몇 번이고 작은 발을 계단 위에 올려놓아 보지만 그때마다 비틀거리며 넘어집니다.
이 어린아이처럼 해보십시오.
한 계단도 혼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의지만을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다리 꼭대기에서 사랑스레 내려다보시고는
 당신의 노력에 감동하여 당장 팔에 안고 그분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첫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땅 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작아짐의 영성은 작아지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아져야만 받을 수 있는 가장 크신 분의 사랑을 받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 아기를 먼저 챙기듯이, 하느님도 작은이부터 먼저 챙기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작아지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서 큰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빵조각 안에 들어오실 만큼 작아지실 줄 아시기 때문에
가장 크신 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당신 품에 안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작기 때문에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있지, 크면 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과 함께 전교의 수호성인입니다.
단 한 명에게도 세례를 베푼 일이 없고 전교를 할 수도 없었으나,
그녀는 작은 희생의 꽃들을 선교를 위해 바쳤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나 미사 할 때 등을 의자에 붙이지 않고 앉는 희생을 바치는가 하면
기침을 많이 하는 수녀님 옆에 앉아 그것을 잘 참았고
빨래할 때 자신에게 물이 튀어도 그저 희생으로 맞고 있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아프단 소리를 안 하고 참고 그것을 전교를 위해 바쳤습니다.
 
세상 근심 걱정에 쌓여있던 어른들도 아기가 웃는 것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 미소 하나로 부모로부터 받는 수많은 희생의 값을 치룹니다.
 
이렇게 부모 품에 안긴 아기는 작지만 엄청난 힘을 지녔습니다.
사실 작아지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힘이 있는데,
그 방법을 소화 데레사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아기의 미소를 수없이 보낼 때
그것을 보는 부모는 아기에게 생명이라도 바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성녀가 수많은 영혼을 건져 낸 것이 바로 작은 희생들을 바치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작은 아기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 큰일을 이루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모든 일들을 돌덩이 하나로도 다 이룰 수 있으신 분입니다.
 
다만 그분 품 안에서 더 작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예수님의 그 작은 몸짓이 세상을 구원하였고,
소화 데레사의 그 작은 미소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처럼 작아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