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DIE MIHI CRAS TIBI'
대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내 성직자묘역 입구에 쓰여 있는 라틴어 글귀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짧은 글귀지만 묵상하면 할수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1월 위령성월이기 때문일까.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본부장 김용태 신부)가 펼치고 있는 사업들 가운데 위령성월을 맞아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유산기부와 천사보험, 그리고 장기기증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우리는 '사랑'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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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위령성월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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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고통받는 후손을 위한 유산기부 지난 5월 본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한 이는 부산여상 이광종(펠릭스, 58, 부산교구 성지본당) 교사. 이 교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버님께서 남기신 유산 2000만 원 중 1000만 원을 외국 빈곤 청소년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본당에서 빈첸시오회 회장으로 봉사한다는 그는 "평소 아버지는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본부가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 연락했다"며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나머지도 국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
2009년에는 김 아무개(55)씨가 자신의 펜션 등 부동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혀오기도 했다. 2008년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는 그는 평소 남편과 함께 몸이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해왔는데 이번에 남편 뜻을 따라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이다. 최근에는 자녀가 없는 한 부부가 유산을 미리 기부하고 싶다고 전화해오는 등 유산 기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본부는 유산 기부자와 후원자, 선종한 후원자들을 위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5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후원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 영적 선물로 보답하고 있다.
본부 홍보담당 류정희(에밀리아나) 간사는 "유산기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언을 남기는 일이자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생명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집과 먹을거리가 돼 주는 일"이라며 위령성월을 맞아 아름다운 사랑나눔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적은 돈으로 큰 기부를, 천사보험 지금 당장 재산이 없더라도 사후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기부보험'이다. 본부는 2008년 3월 메트라이프와 협약식을 갖고 가입자가 정한 일정금액을 기부할 수 있는 천사보험을 선보인 바 있다.
30대 여성 가입자가 본부에 1000만 원을 기부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20년간 매월 1만 2400원만 내면 된다. 20년 동안 원금은 297만 6000원이지만 보험회사는 (가입자 사망 후) 본부에 1000만 원을 가입자 명의로 기부하게 된다. 자산가가 아닌 이상 1000만 원이 넘는 목돈을 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천사보험은 매월 적은 돈으로 원금의 3배가 넘는 성금을 본인 명의로 기부해준다.
천사보험 상품은 기본적으로 1000만 원짜리와 2000만 원짜리가 있지만, 가입자가 원하면 최소 500만 원에서 100만 원 단위로 얼마든지 금액을 조정할 수 있어 젊은 층에서 인기다. 천사보험은 나이가 적을수록, 남성보다는 여성 가입자일수록 월별 납입금액이 적다.
천사보험은 또 가입시점부터 보험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가입 후 1년만 보험금을 내고 사망하더라도 기부금은 전달된다. 매달 기부금을 내야 하기에 나눔을 삶의 일부처럼 만들 수 있고, 유산 상속 등에서 상속인과 법적 문제가 생길 우려도 없어 가장 간편하게 유산을 기부할 수 있다.
기부보험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지만, 우리나라에는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사회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신자들의 적극적 관심과 가입이 필요하다.
2008년 천사보험에 가입한 우재홍(요셉, 37)씨는 "만약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또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다 천사보험에 가입했다"며 "월 1~3만 정도 금액으로 목돈을 기부할 수 있기에 젊은 직장인들이 많은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메트라이프 도갑승(미카엘, 서울 도봉동본당) FSR(재무상담사)은 "지난 3년여 동안 제가 모집한 천사보험 가입자는 52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가입자들이 한결같이 '정말 보람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이어 "천사보험을 통해 부담 없이 사랑을 나누면서 더욱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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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지난 2월 개최한 '희망의 씨앗 선포식'에서 한 신청인이 장기기증 희망 신청서를 작성한 뒤 선물로 휴대전화 고리를 받고 웃음을 짓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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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식 사랑표현법, 장기기증
2009년 2월 16일 하느님 곁으로 돌아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앞을 못 보는 두 명의 환자에게 '빛'을 선물했다. 이후 장기기증 희망 신청이 크게 늘면서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 장기기증에 대한 큰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한국장기기증네트워크 자료에 따르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2000년 4만 7769명에서 2010년 72만 2731명으로 무려 15배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김 추기경 등 종교인들의 헌신적 장기기증이 모범사례가 돼 우리 사회 장기기증 등록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장기기증네트워크는 서울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불교의 생명나눔실천본부, 장기이식 의료전문단체 '생명잇기'가 뜻을 모아 2010년 출범한 단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한 번에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한 기증사례가 눈에 띈다. 중장비 기사로 일하던 권세영(미카엘)씨는 2009년 7월 20일 아침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지주막하출혈 뇌동맥류 파열'이란 진단을 받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아직 숨을 쉬는 권씨를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기도에 매달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권씨의 한 친지는 평소 나눔의 삶을 살던 그를 기억하고 장기기증을 하도록 가족들을 조심스럽게 설득했고, 그의 간과 신장, 혈관, 뼈 등이 6명에게 전해져 새 생명을 선물했다.
권씨 부인 반희숙(루치아)씨는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지만 매일 아침 이웃을 위해 연립주택 마당을 쓸던 사람이었다"며 "성실하고 정이 많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많은 생명을 살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