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책 소개)

"박완서 선생… 법정 스님… 당신들을 사랑했다…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1. 3. 30. 08:54

암투병 이해인 수녀, 5년 만에 산문집

"아직은 눈물 없이 당신을 기억할 수가 없네요. 재능이 많아 나눌 것은 넘치고 하루를 일생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고 이태석 신부 선종 100일 때)

직장암이 전이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이해인 수녀가 긴 세월 우정을 나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계한 지인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편지를 썼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 법정 스님, 화가 김점선씨 등 고인이 된 문화계의 거인들과 자신의 인연을 되짚어보고, 그들 각자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당신을 사랑했다.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고 속삭이는 편지다. 이 수녀는 다음 달 1일 편지와 일기, 시와 산문을 묶은 책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를 낸다.

이해인 수녀. /전기병 기자

1988년 박완서 선생이 아들을 잃었을 때, 아들을 잃은 어미는 아들 사진이 가득 담긴 앨범을 보여주며 말했다. "수녀님, 제가 젊으면 이런 아들 또 하나 다시 낳고 싶어요." 이젠 고인이 된 박 선생을 향해 이 수녀는 "언젠가는 저도 가야 할 영원의 그 나라에서 부디 편히 쉬시라"고 썼다.

이 수녀는 난소암으로 별세한 김점선 화백을 그리며 "내 치맛자락 꼭 붙들고 천당 가겠다더니 그렇게 먼저 가면 어떡하느냐"면서 "하늘나라에서도 꼭 한 반 하자 했으니 내가 도착할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라"고 썼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병실 인연'도 적었다. 2008년 두 사람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 중일 때 추기경이 병실로 수녀를 불러 "수녀도 항암(抗癌)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었다. 수녀는 명랑하게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했다. 추기경은 '고통을 참아라', '기도하라'고 하는 대신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간결하게 위로했다. "대단하다, 수녀."

이 수녀의 산문집은 2006년 이후 5년 만이다. 부산 성베네딕트수녀원에서 전화를 받은 이 수녀는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 등이 다들 책 쓰고 떠났으니까, 사람들이 나에게도 '저러고 나면 가는 것 아니냐'고 할 것 같다"면서 웃었다.

"수도자도 사람이니까 '가까운 사람을 다 데려가시면 나는 어떡하나.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 싶을 때가 있지요. 잠이 안 오고 더러 울기도 해요. 그러나 기도하면 평정심을 찾지요. 사람은 모두 죽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영영 살 것처럼 남을 미워하고 사소한 일에 흥분해요. 그런 마음을 내려놓자고 얘기하고 싶어 책을 냈어요. 묶어놓고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이별을 앞당겨 하는 느낌'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