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글

종교가 정치와 만났을 때, 민주자유는 후퇴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2011. 3. 5. 14:12




리비아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아랍, 나아가 전 세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도 이미 중동발 유가 비상, 물가 비상으로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제180호 이집트 편을 시작으로,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인문한국 지원사업(HK) 해외지역 선정 연구소)와 함께 '성난 아랍, 어디로 가나' 시리즈를 연재 중인 < 시사IN > 은 이번 호 약속된 이란 편 외에 리비아 편을 특별 게재한다.





이란어(페르시아어)를 쓰는 비아랍 중동 이슬람 국가. 한반도 면적의 8배, 인구 7000만명, 석유 매장량 세계 3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자원 대국. 기원전 538년 유태인을 바빌론 유배(流配)에서 해방시켜 구약성서(이사야 45:1)가 메시아로 부르는 고레스(Cyrus) 대왕의 후손들이 사는 나라. 유구한 역사, 찬란한 문화, 모두가 부러워하는 석유 자원을 지닌 이란에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운동의 진동이 울리고 있다. 약자를 해방시킨 위대한 왕의 후손들이 자유를 갈구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무장경찰의 강력 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의 장본인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퇴진과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반미 이슬람의 승리로 규정하며 독려하던 이란 지도자들은 막상 자국 내 반대 세력의 이집트 민주화 옹호 시위를 강력 저지하고 무력 진압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그뿐 아니라 의회 및 친정부 시위대는 야당 지도자 무사비와 카루비의 처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란은 사바크(비밀경찰)를 내세워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며 1979년 이슬람 문화권 최초로 시민혁명을 이룬 나라이다. 당시 이란의 정치 변동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던 인근 아랍 지도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은 혹여라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심의 동요를 막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런데 32년 만에 처지가 바뀌어 이란이 아랍 민주화 열기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Xinhua 2월14일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왕정 종식시킨 뒤 32년간 무슨 일이…

이슬람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랍인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져왔고, 터키인들은 무력으로 이슬람 세계를 확대했으며, 이란 사람들은 빼어난 문화로 무슬림들을 사로잡았다. 이란인들은 642년 아랍 무슬림에 정복되어 이슬람화 과정을 겪었지만 정복자 아랍인들을 문화로 재정복했다. 현대 이란인들은 자신을 아랍인과 비교하면 손사래를 치고 인상을 찡그리며 거부할 정도로 우월 의식이 높다. 이란인의 농담을 빌려 말하자면, 이란인과 아랍인의 차이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아랍인은 섹스만 좋아하지만, 이란인은 문화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게 콧대 높은 이란인들이 '문화적으로 열등한' 아랍인들의 영향을 받아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 32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비민주적 왕정을 종식시킨 이란 국민이 다시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것일까?

현재 벌어지는 이란의 민주화 시위는 2009년 6월 대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의 연장선상에 있다. 18개월 전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선거를 두고 야당 및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들이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며 거리에 나섰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실패했다. 부정이 없었더라도 아마디네자드가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진단하는 중동 전문가들도 적지는 않다. 그런데도 정권 교체 요구를 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아랍에서 불어온 민주화 열기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위대는 이슬람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르는 세속적 종교인 및 이들과 손잡은 정치인들의 전횡을 고발하고 있다.

1979년 혁명의 주역이 팔레비 왕정의 근대화와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이었다면, 요즘 시위의 구심점은 이슬람 문화는 존중하지만 종교를 앞세운 독재와 압제는 참을 수 없는 젊은이들이다.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 여자들의 자유스러운 옷차림을 핵폭탄보다 더 무서워하고 단속하며, 여성을 차별하고, 록과 헤비메탈을 듣는 이들을 사탄 숭배자로 체포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언론은 폐간하며, 관련 언론인을 구속하면서 비판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현 정부의 폭정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엄밀히 분석하면, 이들의 분노와 절망은 이란의 정식 국호 '이란 이슬람공화국'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교과서적 정의에 따르면 공화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다. 여기에 덧붙은 이슬람이라는 말은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와 시아파 12이맘의 언행인 '순나'에 바탕을 둔 이슬람법에 의한 통치다. 둘을 합하면 종교와 정치를 일체화한, 이른바 정교일치의 정치체제가 된다.





ⓒXinhua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이란 총리 지지자들이 2009년 6월15일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호메이니의 '이슬람법학자 통치' 이론에 근간을 둔 정교일치의 이란 이슬람공화국 체제에서 국가 원수는 이슬람법 전문가 종교인, 즉 성직자이다. 그는 9세기에 사라져 지금도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으며, 정의를 세우기 위해 돌아올 시대의 주(主)인 12번째 이맘을 대신해 시아 무슬림 공동체를 이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현재 최고 지도자는 대(大)아야톨라 하메네이다.

실질적 권력이 성직자인 최고 지도자에게 있는 이 같은 정교일치 체제 아래에서 대통령직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다고 해도, 제한적인 행정력밖에 지닐 수 없기에 '바지 사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옷차림을 비롯해 일상의 삶을 이슬람법이라는 명목으로 옥죄는, 숨 막히도록 '경건한' 나라에 조금이라도 숨통 트일 변화의 공간을 창출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정책 성향에 맞는 사람들을 22개 행정부처 장관으로 임명해 헌법 테두리 안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1997년 69%, 2001년 77.88%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8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개혁파 기수 호자톨레슬람 하타미가 "헌법 수행이라는 가장 큰 책무를 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이 저에게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란, 출세 지향 종교인으로 가득해

현재 이란은 정교일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신과 이슬람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 고문·구금·투옥·연금·처형 등 종교인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비인도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2002년 "성직자들은 이란을 다스릴 신적(神的)인 권리가 없다"라고 한 역사학 교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을 정도다. 비극적이지만, 1979년 혁명은 결국 팔레비 대신 자신들만의 이슬람을 강요하며 반대자를 죽음과 공포로 다스리는 성직자들을 정치 무대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끝나버린 셈이다. 팔레비 왕가를 축출하며 기대했던 자유와 민주는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





ⓒAP Photo 32년 전인 1979년 12월10일, 이란 시민들이 시위 현장에 몰려 있다. 이들 덕에 호메이니는 신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이슬람 역사에서 수니파나 시아파 가릴 것 없이 이란처럼 이슬람법학자가 정권 전면에 나선 일은 유례가 없다. 근대 이전 이슬람법학자들은 세속 정권에 참여하면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어렵다는 두려움 때문에 늘 재야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날 이란은 출세 지향의 종교인으로 가득하다. 더 나아가 정치·출세·압제의 수단이 되어버린 이슬람이 아니라, 신앙의 양심과 종교 전통을 따라 종교인이 정치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성직자들은 모두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가택 연금, 투옥의 고초를 당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호메이니가 '내 삶의 열매'라고 극찬한 혁명 동지이자 2인자인 대(大)아야톨라 몬타제리는 오랜 세월 연금당하다 병으로 잠시 자유를 얻었으나 세상을 떠났다.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 성직자 권력층에 반대해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 신앙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다 체포된 아야톨라 보루제르디는 투옥되어 지금도 인간 이하 처우를 받고 있다.

꽤 양심적인 이들 종교인과 같은 성직자이지만, 생각이 다른 현 정권의 실세이자 최고 지도자를 뽑는 전문가회의 구성원인 메스바흐 야즈디의 강경한 발언을 보면 이란의 앞날은 우울하다. "이슬람 국가는 신이 직접 관장하는 정부이기에 민주주의적 장치가 불필요하다.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이슬람법 전문가 성직자들이 지도자를 임명하는 나라에서 선거를 치러야 할 이유가 없다."

성직자들, 반대파 물리력 제압에 동조

시위대와 생각이 너무 다른 아야톨라 메스바흐 야즈디는 바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영적 스승으로 모시는 인물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하카니 학교 출신 졸업생으로 구성된 하카니파가 현 정권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하타미 같은 개혁파들이 엉망으로 만든 이란 사회를 혁명 정신에 맞게 다시 개조하기 위해 성직자들이 사회를 통제하고 반대파들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이쯤 되면 이란 정부가 무력을 써서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이 그다지 고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민주화 시위가 성공할 가능성은 다소 비관적이다.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아직은 중산층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유국이지만 폐쇄적이고, 혁명수비대 출신들이 주요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가난하고 종교적이며 의식 수준이 낮다. 따라서 부자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주겠다고 약속한 아마디네자드의 '이란식 로빈 후드' 대중 선동정치는 가난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약 20만에 달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체제 수호적인 설교의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학사 출신 노점상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무바라크를 몰아낼 줄 그 누구도 몰랐듯, 지금은 아주 멀게 있는 듯한 테헤란의 봄도 찰나의 순간에 다가올지 모른다. 알라후 아을람(오로지 신만이 아신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